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잘 마른 고운 풀을 깔아주었더니 이렇게 동그랗고 옴팍하게 알 낳을 자리를 만들었네요. 초란이 세 개나 들어 있었어요.
잘 마른 고운 풀을 깔아주었더니 이렇게 동그랗고 옴팍하게 알 낳을 자리를 만들었네요. 초란이 세 개나 들어 있었어요. ⓒ 이승숙
유정란을 보니 딸 생각이 났다. 딸아이는 유난스레 계란찜을 좋아했다. 사기그릇에 계란 세 알을 깨트려 넣고 물을 조금 따라 넣은 다음에 까나리 액젓으로 간을 한다. 그 다음에 계란을 풀어서 물과 잘 섞이게 한 다음에 들기름을 한 방울 톡 떨어뜨려서 은근한 불에 쪄낸 계란찜을 딸아이는 무척 좋아했다.

친정 엄마가 병환으로 일찍 돌아가시자 나는 늘 내 건강을 염려했다. 엄마를 많이 닮은 나는 건강과 명(命)도 엄마를 닮을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나도 엄마를 닮아서 일찍 죽으면 어떡하나 하는 조바심을 늘 냈다. 아이들을 두고 먼저 가면 안 된다는 그 일념에 내 인생 최대 목표는 무조건 오래 사는 거, 그거 하나였다. 무조건 오래 사는 게 내 인생 최고의 목표였다.

생태김치로 남아있는 우리 엄마

엄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있었다. 비린 것을 싫어하는 우리 아버지를 위해서 엄마는 생태김치를 담그시곤 했다.

생태 몸통은 찌개로 해먹고 나머지 부산물들로 엄마는 김치를 담갔다. 생태 대가리를 으깨다시피 토막 내서 나박나박 자잘하게 썬 무와 함께 양념을 해서 버무렸다. 들어가는 재료는 생태 대가리와 무, 그리고 마늘과 파 약간 고춧가루 정도밖에 없었다. 그렇게 양념한 것을 작은 항아리에 담아서 정지(부엌)간의 실겅(설거지한 그릇을 얹어두던 곳) 밑에 놔두었다.

생태 김치는 찬 바람이 불면 하기 시작해서 이듬해 봄까지 자주 해먹던 음식이었다. 아버지는 그 김치를 아주 좋아하셨지만 엄마 돌아가시고 두 번 다시 그 맛을 볼 수 없었다.

어쩌다가 한 번씩 내가 만들어서 아버지께 보내 드려볼까 생각해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리 효심이 깊지 못한 딸인지 마음으로만 생각했지 실행해 본 적이 없었다.

계란찜은 부드러워서 그냥 술술 넘어가지요.
계란찜은 부드러워서 그냥 술술 넘어가지요. ⓒ 이승숙
한때 나는 내 아이들에게 음식으로 기억되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엄마를 생각하면 엄마가 해주던 음식이 떠오르고 또 그 음식을 먹을 때면 생각나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 때 나는 내 건강에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늘 그렇게 기억에 남길 무엇을 찾아 헤매었던 거 같다.

아침밥을 먹으면서 아들아이에게 물어봤다.

"아들아, 엄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뭐지?"

아들은 생뚱맞은 엄마의 질문에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음… 굴김치가 제일 맛있었어요. 싱싱한 생굴을 듬뿍 넣고 해준 그 김치 참 맛있었는데 왜 요즘은 안 해요?"
"그래? 그랬냐? 또 뭐가 있어?"

엄마의 반강제성 질문에 아들은 또 머리를 굴려본다.

"예전엔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들 다 맛있었는데 지금은 별로예요. 그땐 멸치조림 하나도 얼마나 맛있었는데… 감자탕도 맛있었고 다 맛있었어요."

애들에게 음식으로 기억나고자 했던 그 시절은 내 나이가 팔팔한 삼십대 중반일 때였다. 그때는 온 가족이 삼시 세 끼를 거의 같이 먹었으니 음식을 해도 재미가 있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침 한 끼만 식구들이 같이 먹는다. 그러니 음식을 해도 줄지 않고 또 느긋하게 둘러앉아서 음식 먹을 시간적 여유도 없다. 식구들 모두가 다 나름으로 바쁘다.

그리고 또 그때와 달리 나는 집과 가족 이외에 생각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여기저기에 힘을 분산하다 보니 자연스레 집안일에 등한시했던 거도 같다. 그래서 음식도 대충 하다 보니 입에 쏙 맞는 음식을 못 만들게 되었던 거 같다. 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핑계 아닌 핑계를 대었다.

이번 주말에는 생태김치를 담가봐야겠다. 그 옛날, 엄마 살아 계실 적의 그 시절로 돌아가서 나박하게 무도 썰고 생태 머리도 쪼아서 버무려 봐야겠다. 작은 김치통에 담아서 친정아버지께 보내 드려야겠다. 늘 마음으로만 하던 생각들을 실천으로 옮겨봐야겠다.

생태김치를 만들어서 아버지께 보내 드리면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하실까. 애살 많고 잔정 많았던 엄마를 떠올리실까. 엄마 손맛 비슷하게 해낸 딸 솜씨를 보면서 엄마를 생각하실까. 눈물을 속으로 삼키시며 밥을 잡수시지는 않으실까.

생태김치로 남아있는 우리 엄마를 이번 주말에는 만나야겠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