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위성에 바라본 북한 영변 핵 시설단지.
위성에 바라본 북한 영변 핵 시설단지. ⓒ 2003 몬테레리 연구소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살얼음판을 걷듯 아슬아슬한 시기에, 미국 국방부가 북한의 핵실험 이후 대북 공격 계획을 가속화·구체화해온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의 의도에 대한 북한의 불신을 또 다시 자극해, 6자회담 재개의 암초로 작용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부시 행정부가 한편으로는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줄곧 말해오면서 다른 한편으로 북한을 공격할 계획을 구체화한 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어렵게 6자회담 재개를 합의한 민감한 '시점'에 왜 민감한 '정보'가 흘러나왔느냐는 것이다. 이는 미국 강경파가 북한을 자극해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유도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미국이 대북 군사 행동 계획을 구체화해왔다는 것은 북한 내 강경파의 반발과 맞물려, 북한 내에서 '6자회담 무용론'과 '핵무장론'을 부채질할 수 있는 성격을 갖고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북한이 미국의 군사 계획을 문제삼으면서 6자회담 복귀를 거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북강경책을 주도해온 미국 국방부 관리들이 군사기밀을 언론에 흘린 것도 이러한 노림수에서 나온 것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경계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 점이다.

북한 핵실험 이후 군사 계획 가속화

11월 3일 <워싱턴타임즈>가 미국 국방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북한이 10월 9일 핵실험을 강행한 이후 영변 등 핵시설 공격을 위한 비상계획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강경분위기를 주도하는 국방부가 북한 핵시설 공격 계획을 가속화하고 있고, 아시아에 핵전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미 워싱턴 타임스의 3일자 보도(화면 캡처)
미국의 강경분위기를 주도하는 국방부가 북한 핵시설 공격 계획을 가속화하고 있고, 아시아에 핵전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미 워싱턴 타임스의 3일자 보도(화면 캡처) ⓒ 워싱턴 타임스 홈페이지
특히 부시 행정부는 중국이 북한의 핵실험을 비난하고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에 찬성한 것을 "청신호"(green light)라고 판단하고 비상계획을 가속화해왔다. 미국 국방부의 선제공격 대상에는 영변의 원자로와 재처리 시설 그리고 핵실험 장소 등이 올라있고, 공격 작전에는 특수부대나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 등을 동원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보도가 나오자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미국의 라디오 방송인 'Laura Ingraham Show'와의 인터뷰에서 "군대는 항상 계획을 짜기 마련이다. 그것은 그들의 일이다"며, 사실상 이러한 공격 계획이 있다는 것을 시인했다.

다만, 라이스는 "우리는 지금 외교적 해결 과정에 있다"며, "북한을 공격하거나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외교적 해결을 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군사 행동을 구체화하는 미국의 '양면 전략'(hedging strategy)은 북한으로 하여금 외교의 실패에 대비한 '핵 억제력' 추구를 부채질해왔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9·11 테러 직후인 2002년 1월,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다음달 한국 방문 중에 찾은 도라산역에서 "북한을 공격하거나 침공할 의도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 해 9월 채택한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서 북한을 선제공격 대상에 포함시킴으로써 이러한 약속을 뒤집은 바 있다.

또한 작년 9·19 공동성명에서도 부시 행정부는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11월에 북한을 상정한 가상 핵공격 훈련을 벌여,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야기한 바 있다.

미국 강경파의 '재 뿌리기'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부 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부 장관. ⓒ 미 국무부(State Department photo by Michael Gross)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의 군사 계획과 관련해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민감한 시기에 군사기밀을 언론에 흘린 미국 국방부 관리들의 의도이다.

기실 미국 강경파들은 6자회담을 앞두고 북한을 자극할 정보를 흘림으로써 여러 차례에 걸쳐 '재뿌리기'를 시도한 바 있다. 2004년 5월 3차 6자회담을 앞두고는 이렇다할 증거도 없이 북한이 리비아에 핵물질을 수출했다는 정보를 흘린 바 있고, 2005년 1월 말과 2월 초 4차 6자회담을 모색하던 시기에도 이와 같은 정보를 또 다시 언론에 흘려 북한의 반발을 야기한 바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이번 비밀 군사계획의 언론 유출도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의 의도적인 '정보 정치'일 가능성이 높다. 한 명도 아닌 여러 명의 관리들이, 그것도 대단히 구체적인 내용을 언론에 흘린 것은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실제로 지난 10월 31일 북-미-중 베이징 3자회동에서 6자회담을 조만간 재개하기로 합의한 이후, 네오콘을 중심으로 한 미국 내 강경파들의 불만이 노골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주도한 대북 다자간 외교에서 소외된 것으로 알려진 부시 행정부 내 대북강경파들은 또 다시 북한의 시간끌기 전술에 넘어가 북한을 응징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뉴욕타임즈의 1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북한이 핵실험을 통해 협상력을 제고한 것을 제외하곤 미국은 북한이 회담을 거부했던 1년 전 제자리로 돌아오고 말았다"고 한다. 특히 한 관료는 "채찍은 어디 갔느냐?"며, "우리는 6자회담 재개를 축하하고 있지만, 우리가 돌아간 곳은 끝없는 수다 자리에 불과하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이 신문은 2일자에서도 6자회담 재개를 "환영한다"는 부시 행정부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달리, 회담 재개로 인해 북한을 고립시키고 응징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아니냐는 강경파들의 불만을 상세히 보도하기도 했다.

북한, 미국 강경파의 의도에 넘어가서는 안 돼

또 하나의 관심과 우려의 초점은 대북 비밀 군사 행동 계획을 비롯한 미국 내 강경론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다. 북한이 미국의 군사 훈련이나 계획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는 점에서, 북한이 "미국 국방부가 북한의 핵시설 공격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는 '위협적인 보도'를 그냥 넘길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특히 미국 내에도 '6자회담 무용론'과 군사적·비군사적 수단을 통한 북한 정권 제거를 선호하는 강경파가 있듯이, 북한 내에도 '핵 억제력' 강화를 선호하는 집단이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 워싱턴타임즈의 보도는 북한 내 강경파의 입지를 강화시켜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미국 강경파의 의도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현명한 대응이 요구된다. 북한이 미국의 비밀 군사계획을 문제삼으면서 6자회담 재개 약속을 뒤집는 것이야말로 미국 강경파들이 가장 원하는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