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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롱가 동물원 선착장
ⓒ 이현상

타롱가 동물원은 1916년 문을 연 30ha의 방대한 동물원이다. 타롱가는 호주 원주민 언어인 애버리진어로 '아름다운 물을 바라보다'라는 뜻이다. 그만큼 타롱가에서 내려다보는 바다풍경은 장관이다. 실제 타롱가는 시드니 북쪽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어 시드니 하버와 고층 건물이 파노라마처럼 내려다보인다.

기자는 동물원 반대론자에 가깝다. 대자연에서 자신의 습성대로 살아가야 할 동물들을 자신의 고약한 분비물 냄새가 진동하는 답답한 우리에 가두어 놓는 것은 잘하는 짓이 아니다. 종일 하품을 해대며 늘어져 있다가 사육사가 주는 생닭을 받아먹는 호랑이에게서 그 무슨 위엄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썩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타롱가 동물원으로 옮긴 것은 계속되는 바람과 비 때문에 예약했던 고래 투어가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꿩 대신 닭이 아니라 고래 대신 동물원이 된 셈이다. 날씨는 우중충했지만 휴일의 서큘러 키는 활기가 넘쳤다. 자선냄비를 앞에 두고 행위 예술을 벌이는 사람들도 여전했고, 호주 원주민 악기 디저리두를 연주하는 애버리진도 여전했다. 서큘러 키 2번 부두에서 동물원 입장권이 포함된 표를 끊었다. $39, 그러니까 한국 돈으로 3만 원 정도가 된다. 4시간 짜리 고래 투어도 $80인데……. 비싸다. 투덜거려봤자 소용없다.

▲ 타롱가 가는 페리에서 바라본 시드니 전경
ⓒ 이현상

정해진 시간이 되자 페리는 정확하게 출발한다. 오페라하우스 앞을 지나자 시드니의 도심 전경과 하버 브리지를 새로운 각도에서 볼 수 있다. 어느새 동물원을 향하는 내키지 않는 마음이 조금 풀린다. 갑판에 나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멀어져 가는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 시드니의 빌딩 숲을 보는 맛이 괜찮다.

▲ 우스꽝스럽게 생긴 펠리컨
ⓒ 이현상

사진 몇 컷 찍고 나니 바로 타롱가 선착장이다. 여기서 잠깐 버스를 타고 동물원 입구로 이동한다. 오르막이니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좋다. 동물원이 워낙 넓어 미리 체력을 소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문을 들어서자 작은 개울이 흐르고 다양한 새들이 놀고 있다. 만화 캐릭터처럼 생긴 펠리컨도 그 틈에 끼어 유유히 헤엄친다. 울타리를 쳐놓지 않아 숲 속이나 바닷가에서 새를 만나는 느낌이다. 몽고 텐트처럼 생긴 거대한 새장에 새를 집어넣고 바깥에서 구경하는 동물원과는 달랐다.

▲ 호주 특산 에뮤. 현생종으로는 1종뿐인 대형조류로서 타조 다음으로 크다.
ⓒ 이현상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동물들은 우리 안에서 생활하지만 탐방객들에게 위험한 동물들을 제외한다면 대부분 자유롭게 우리 안으로 들어가서 동물들을 볼 수 있다. 우리에는 출입문이 있어 동물들은 빠져나가지 못한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동물들도 움츠린 모습으로 바위나 나무 밑에서 비를 긋고 있다. 고슴도치란 녀석만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부산하다. 부지런히 땅을 파고 속이 빈 나무 등걸을 드나들며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 늘 부산한 호주 고슴도치
ⓒ 이현상

호주를 대표하는 동물은 캥거루, 오리너구리, 에뮤 등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동물은 코알라이다. 역시 코알라 우리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다. 코알라는 유순한 겉모습과는 달리 성질이 괴팍하다고 한다. 유칼립투스 나뭇잎만을 먹는 코알라는 하루 20시간을 잠으로 보낸다. 유칼립투스 나뭇잎이 함유한 알코올 성분 때문에 술에 취해 늘 잠만 잔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유칼립투스 나뭇잎이 워낙 칼로리가 낮아 잠으로 에너지 소모량을 줄이기 위한 나름대로의 생존 방식인 것이다.

▲ 가장 인기있는 동물 코알라
ⓒ 이현상

호주 대륙에는 뱀이 많기로 유명하다. 얼마 전에도 시드니 북서부 스코필즈에서 탐방객이 뱀에게 물려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신문 보도가 있었다. 뱀과 파충류를 전시하는 곳에는 '친절하게도' 세계에서 가장 독성이 강한 뱀 열 다섯 종류 중에서 호주의 뱀이 11종을 차지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호주 북부 지역과 뉴기니의 우림 지역에 서식한다는 녹색 구렁이(Green Pythons)는 특이한 자세로 똬리를 틀고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 호주산 뱀 녹색 구렁이
ⓒ 이현상

침팬지 우리는 넓고 쾌적해 보였다. 줄을 타거나 나무를 기어오르거나, 혹은 뛰어 놀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었다. 침팬지 우리 앞에 있는 침팬지에 대한 설명문은 탐방객들의 흥미를 끌만하다. 침팬지와 가장 비슷한 동물이 흔히 고릴라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인간과 가장 비슷하며, 단지 유전자의 2%만이 틀리다는 내용이다.

▲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침팬지 가족
ⓒ 이현상

비가 오자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새끼를 껴안고 처마 밑에서 비를 긋고 있는 모습이나 빗방울이 굵어지자 새끼를 업고 우리 안으로 뛰어가는 모습에서 왜 그들이 인간과 98%가 같은지 알 수 있었다. 우리 앞에는 침팬지의 표정에 따라 심리 상태를 알 수 있는 안내 삽화도 비치되어 있다.

▲ 빗방울이 굵어지자 새끼를 업고 달리는 침팬지
ⓒ 이현상

타롱가 동물원은 전체적으로 인공 구조물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엿보였다. 동물들을 좁고 더러운 우리에 가두어 놓고 사람들은 수용능력 이상 입장시켜 갖가지 음식물을 독점적으로 판매하는 한국의 동물원에서 느꼈던 불쾌감도 느낄 수 없었다. 아이를 둔 부모로서 동심을 미끼로 조잡한 장난감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술에 짜증났던 기억들은 누구나 한번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 시드니가 내려도 보이는 산기슭에 동물원이 있다.
ⓒ 이현상

산 위에서부터 동물들을 관찰하고 내려오면 자연스럽게 페리 선착장 방향으로 발길이 이어진다. 멀리 시드니 타워, 오페라하우스, 하버 브리지가 가는 빗줄기 너머로 내려다보인다. 나무숲으로 둘러싸인 산기슭, 동물들과 탐방객을 동시에 배려하는 탐방로 배치, 시멘트 건조물의 배제 등이 돋보이는 타롱가 동물원은 비록 인간들에 의해 강제로 동물들을 가두어 놓는 또 하나의 '동물원'에 불과하지만 쉽게 동물을 접할 수 없는 현대 사회에서 동물보호에 대한 학습장,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차선책으로서 의미가 있어 보였다.

타롱가 동물원 가는 길

▲ 서큘러 키 2번 부두
ⓒ이현상

버스, 택시, 페리 등 다양한 교통수단으로 접근할 수 있지만 이왕이면 서큘러 키에서 페리를 타고 가는 것이 좋다. 서큘러 키를 떠난 페리는 오페라하우스 앞을 지나 타롱가를 향하는데 이때 보이는 시드니 전경이 색다르다. 타롱가 동물원 가는 페리는 서큘러 키 2번 부두에서 출발하며 약 12분 정도 소요된다. 동물원 입장권 포함 $39. 타롱가 동물원 선착장에서 동물원행 버스를 갈아타면 동물원 입구에 내려준다. 관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다. / 이현상

덧붙이는 글 | 원본 사진은 호주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 호주114(http://www.hoju114.com)에서 볼 수 있으며, 기사도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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