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미국 생활을 계획하면서 처음엔 아이를 데리고 올 생각이 별로 없었다. 아이도 이제 막 들어간 고등학교에서 새로이 사귄 친구들과 정을 붙이기 시작한 참이라 처음엔 관심이 없다고 했다.
주변 사람 중 일부는 아이가 영어를 아예 못하는 것도 아니고,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1학년생을 데리고 미국에서 1년 동안 체류한다는 것은 잘하는 일이 아니라고 만류했다. 하지만 별도로 유학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고, 약간의 생활비를 보태면 아이가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얘기도 들었다.
아이가 4년 만에 맛본 해방감
그런데 아이도 무슨 생각에선지 뒤늦게 가겠다고 했다. 집사람도 모자라는 비용을 좀 충당하겠다고 나서서 결국, 함께 오게 되었다. 돌아가면 다시 고1로 편입해야 하지만 밤 10시, 12시까지 자율학습을 하면서 짜증만 늘어가고 있는 아이가 1년 동안 다른 경험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결국 데리고 왔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한국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아이 학교도 화이트가 40%, 히스패닉이 20% 이상이고, 블랙은 10% 미만이다. 나머지 30% 가까운 아이들이 아시안이고 그 대다수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아이가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물론 영어를 배우는 데는 그다지 도움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아이는 처음 한 달 정도, 오후 3시에 끝나는 학교 수업 마치고 나면 집에 와서 숙제하고 남는 많은 시간을 인터넷으로 때웠다. 그런데 친구들이 생기고 학교 풍물패(한국 아이들이 많다 보니 풍물 동아리가 있다)에 들더니 생활이 달라졌다.
풍물 연습을 하거나, 학교 미식축구 시합이 있으면 응원단으로 참석하고, 오후 시간에도 스타벅스나 보더스에 몰려 앉아 숙제를 하거나 수다를 떨다가 저녁 늦게 들어오는 일이 잦아졌다.
아이로서는 중학교 입학 이후에 4년 만에 맛보는 해방감이었을 것이다. 주말이면 매번 게임이 있다면서 밤 12시가 넘어서 들어오는 일도 많아졌다. 지난 일요일엔 각 학교의 응원단 경연이 있다면서 펜실베니아까지 가서 월요일 새벽녘에나 돌아왔다.
학교 미식축구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본 풍경
지난 금요일은 아이 학교 미식축구 시즌 마지막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구경 한 번 간다간다 하면서 못갔는데 마침 그날 경기는 홈경기라 동네에서 열렸다. 일찌감치 저녁을 챙겨먹고 나섰다. 쌀쌀한 날씨에 어두워지기 시작해서인지 더 춥게 느껴진다. 아이는 경기가 있는 날이면 응원단으로 매번 참여한다.
중학교 옆의 운동장에 도착했을 때 경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입구에선 입장료를 받고 있다. 3불. 관중석이 꽉 찼다. 학교 아이들, 부모들, 동네 사람들이 어우려져 앉아 있고, 장내 아나운서가 경기 상황을 알려줬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방문팀이 터치다운을 성공시켜서 6대0으로 홈팀이 지고 있었다.
날은 춥지만 여러모로 재미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동네 도서관이나 동네 문화 체육시설인 커뮤니티 센터 같은 것은 턱없이 부족해도 이제 변화하기 시작하고 있고,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있어 그리 부럽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날 이 곳 아이들이 구김살 없이 노는 걸 보니 그것만큼은 부러웠다.
학교 수업이 다 끝나고 벌어지는 미식축구경기. 좋은 잔디구장에서 라이트를 환하게 켜고 야간경기가 벌어진다. 학교 밴드와 치어리더들이 나와서 응원을 펼친다. 동네 경찰들이 안전을 위해 경비를 서준다. 부모, 친구,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응원을 해준다.
이런 가운데 시즌 마지막 경기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10개 팀 정도가 매주 주말이면 이렇게 리그전을 벌인다. 여기서 우승하는 팀은 각 카운티의 우승팀들이 경쟁하는 대회에 나서게 된다. 지역케이블 방송에서는 저녁 뉴스에서 상세히 그 날의 각 경기 소식을 전해준다.
아이들-부모-경찰-동네사람들의 어우러짐
하프타임은 졸업반 학생들의 소개시간. 이번이 마지막 경기이기 때문에 마련한 특별한 행사이다. 부모나 형제, 자매와 함께 입장하는 그들을 향해 관중석에선 환호성이 퍼진다. 일일이 한 명 한 명 소개하고 인사를 하게 한 다음 응원전이 펼쳐진다.
응원단의 지휘자 연단에 성조기와 태극기가 함께 걸려 있다. 아마도 한국 아이들이 많으니 함께 걸어 놓았다 보다 싶었다. 그런데 다른 쪽에는 태극문양과 함께 인천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플래카드도 하나 걸렸다. 누군가 옆에서 저 사인이 뭐냐고 내게 묻는다.
난들 알 수 있겠는가.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고, 글자는 인천이라고 한국의 도시라고 말해주니 마침 장내 아나운서가 설명한다. 응원에 사용하는 음악이 인천 아리랑이라나 뭐라나. 그러고 보니 운동장을 가득 채운 응원단, 치어리더, 마칭밴드, 풍물패 이 전부를 지휘하는 친구가 한국 아이다.
짧은 영어라 설명을 미처 다 알아 듣지 못했는데, 나중에 아이한테 물으니 자기 학교 올해의 응원 테마가 한국이란다. 인천을 택한 이유는 아이도 잘은 모르는 모양이다. 혹 인천상륙작전 생각한 건가?
화려한 응원이 끝나고 경기가 이어졌다. 실력차가 적지 않은지 점수가 계속 벌어진다. 경기를 끝까지 보고 오지는 못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했다.
오후 3시면 끝나는 수업, 주말이면 다른 학교 아이들과 멋진 시합, 시합에 나선 친구들을 응원하며 춤추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그 시합을 위한 괜찮은 운동장과 어른들의 세심한 지원, 강제동원이 아닌 자발적 응원이지만 마칭밴드를 비롯한 응원단에 대한 지원과 배려(특별활동으로 보고 그만큼 별도의 학점을 부여해 준다)도 있다.
우리 아이들은 어떤가
입시에 찌든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런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주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보다 훨씬 덜 하다고는 하지만 여기도 아이비리그의 대학을 가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데도, 학교생활이 이렇게 다르다. 전교조나 학부모단체들이 학생들을 위해 이런 시간과 공간을 만드는 일로 싸우면 어떨까?
아이는 너무 좋아해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 듯하다. 유학을 시킬 경제적 형편은 전혀 아니기 때문에 결국 아이는 내가 돌아가는 내년에 함께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잘 데려온 것 같다. 다만 1년이라도 아이답게 자라는 1년이 아닐까 싶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