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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19일 중국 댜오위타이에서 2단계 제4차 6자회담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는 모습.
지난해 9월 19일 중국 댜오위타이에서 2단계 제4차 6자회담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성연재

한국과 미국 정부가 6자회담 재개 시점을 11월 하순 이후로 늦춘다는 데 합의했다. 시간을 갖고 회담에 임하는 전략을 보다 철저히 세우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이같은 합의는 7일 유명환 외교부 제1차관과 방한 중인 니콜라스 번즈 미 국무부 정무차관을 각각의 수석대표로 한 '한·미 차관급 전략대화'에서 이뤄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회담을 위한 회담이 되지 않고,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주도 면밀한 전략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양국이 인식을 같이했다"면서 "회담을 빨리 시작하는 것보다 어떤 전략을 가지고 회담에 임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당국자는 "6자회담의 목적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인데 이 목적에 어긋나는 회담이 되면 6자회담에 대한 지지가 없어질 것"이라며 "그런 일이 없도록 한·미간에 치밀한 전략을 짜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미의 전략 "북한 '핵군축 회담'을 막아라"

한·미는 이날 4시간에 걸친 전략대화에서 북한이 '핵 보유국'이란 입장에 서서 6자회담을 '핵군축 회담'으로 규정짓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한·미간 6자회담 전략 마련을 위한 협의는 북한이 이같은 주장을 초장에 원천 봉쇄하는 방안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양국은 전략대화 후 내놓은 '공동언론발표문'을 통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또 "6자회담을 통해 조속한 시일 내에 9·19 공동성명 이행방안이 합의되고 북한의 핵무기 및 핵 프로그램 포기가 실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6자회담 재개 시점을 늦추자는 주장은 미국측이 먼저 제의했으며, 한국도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오는 18~19일 베트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전에는 물리적으로 어렵다"고 말해 재개 시점은 빨라도 11월 하순, 경우에 따라서는 12월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음을 시사했다.

유엔안보리 제재결의는 계속 이행해 대북 압박

한·미는 또 이날 전략대화를 통해 6자회담 재개 합의에도 불구하고 대북 제재 결의는 계속 이행해 나간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양측은 '공동언론발표문'에서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의 완전하고 효과적인 이행을 통한 국제사회의 일치된 목소리를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대북 제재의 이행방안에 관한 논의는 번즈 차관과 함께 방한한 로버트 조지프 군축담당 차관이 주로 맡았다. 그러나 조지프 차관은 당초 예상과 달리 한국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에 대해 그다지 강하게 압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이 주목된다.

외교부의 다른 당국자는 이날 조지프 차관과 박인국 외교부 외교정책실장간 회담에서 PSI 문제가 아예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오늘은 11월13일이 시한인 유엔안보리 결의 1718호의 이행보고서 제출과 관련 한·미가 현재 진행 중인 상황과 계획을 논의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면서 "PSI 문제는 미국측도 제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이 당국자는 "남북해운합의서의 내용과 거기에 규정된 화물 검색 절차에 대해 미국측에 자세히 설명했다"고 소개해, PSI에 참여하기보다는 기존 남북해운합의서를 적용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수송을 차단하겠다는 지금까지의 정부 입장을 고수했음을 시사했다.

이 당국자는 "안보리 결의 1718호가 요구하는 화물 검색의 경우 남북해운합의서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우리 입장은 미국측에 이미 전달된 것"이라며 "오늘은 그 구체적 내용과 절차를 설명하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지프 차관은 "잘 알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이 당국자는 덧붙였다.

한국 PSI 참여문제는 거론하지 않은 속내는?

북핵 관련 미국 대표단이 방한중인 가운데 지난 7일 오전 외교부앞에서는 통일연대 회원들이 대북제재와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북핵 관련 미국 대표단이 방한중인 가운데 지난 7일 오전 외교부앞에서는 통일연대 회원들이 대북제재와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러나 이것이 한국측 입장을 이해하고 수긍하겠다는 의사표시인지, 아니면 또 다른 방식의 PSI 참여 압박인지는 시간이 좀 더 지나야 정확히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미국의 자세로 볼 때 한국을 PSI에 참여시키려는 노력을 그렇게 쉽게 단념할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미국이 지난 2003년부터 추진해온 PSI는 이번에 채택된 안보리 결의 1718호로 중요한 국제법적 근거를 확보했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을 표적으로 삼아 PSI 참여국들의 결속을 다지고 싶을 것이다. 여기에 한쪽 당사자인 한국의 참여는 실질적 효과에 앞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조지프 차관이 이번 방한에서 보인 자세는 PSI 참여 문제가 한국 내의 첨예한 정치쟁점으로 부상한 상황에서 미국이 강하게 압박하는 모습이 오히려 반발 등 부작용만 부를 수 있다는 계산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직접적 언급은 피하고 우회적으로 미국의 '희망'과 '기대'를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조지프 차관이 앞서 일본을 방문했을 때 가진 일본·호주 정부와의 고위급협의에서는 북한 선박을 해상에서는 검색하지 않고 항구에 정박했을 때만 검색한다는 원칙을 확인했다는 현지언론의 보도도 있었다.

6자회담 재개 결정을 계기로 국무부 차관 2명이 짝을 이뤄 방한한 이 이례적 형식의 한·미 협의를 통해 미국은 북한을 포위하는 국제공조를 더욱 강화하는 성과를 올렸다고 평가할 것으로 보인다.

PSI 문제 등에서 한국 여론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런 행보는 이같은 목적 달성을 위한 치밀한 계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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