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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천하>는 <주몽>이라는 강적에 밀려 결국 조기종영했다. 한편으로는 현실성이 떨어져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는 데도 실패했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독신천하>는 <주몽>이라는 강적에 밀려 결국 조기종영했다. 한편으로는 현실성이 떨어져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는 데도 실패했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 SBS
SBS 월화드라마 <독신천하>가 지난 7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조용히 종영했다. 한국시리즈 중계관계로 한 회 결방되었던 분량을 더해 2회 연속 편성된 마지막 방영분은 각각 5.0%과 9.6%(TNS미디어리서치)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당초 16부작으로 예정되었던 <독신천하>는 14회로 조기종영했다. MBC <주몽>의 장기집권에 희생된 '비운의 드라마 목록'에 이름을 추가한 것이다. 사실 <독신천하>의 성적부진은 시작부터 평균 40%가 넘는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대하사극 <주몽>과 동시간대 편성되면서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소수 시청자의 볼 권리는 어디로

비단 <독신천하>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기간동안 <주몽>의 경쟁한 타 방송사의 월화드라마들은 모두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SBS의 경우, <천국보다 낯선>이 미니시리즈 역대 최저인 3% 이하라는 시청률을 기록했고 <백한번째 프로포즈>와 <독신천하>는 조기종영의 수모까지 당했다. <독신천하>와 같은 주 종영한 KBS <구름계단>은 마지막회 4.9%의 성적을 기록했다.

경쟁이 치열한 드라마 시장에서 성적이 엇갈리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특정 드라마의 지나친 장기 독과점으로 소수 시청자들의 볼 권리가 침해된다는 점이다.

<독신천하>에 출연했던 배우 윤상현은 종영을 앞두고 드라마 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 "강적 <주몽>에 맞서 열심히 전투적인(?) 자세로 찍었고, 저뿐만 아니라 다른 출연진들이나 감독님 역시 적잖이 맘 고생을 한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간 <주몽>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고충과 배우들 및 제작진이 모두 시청률로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았음을 드러내는 글이었다.

윤상현은 "시청률이 생각만큼 많이 나오지 않았어도 소수의 시청자들이 계셨기 때문에 큰 힘이 됐지만 시청률을 이유로 소수의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선택권마저 무시한 처사에 마음이 무겁다"며 착잡한 속내를 내비쳤다.

배우 윤상현 "강적 <주몽> 만나 적잖이 맘고생"

<독신천하>는 완성도 면에서도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독신천하>는 방영 초기, 우리 시대 '싱글족'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담아낸다는 기획의도를 표방했다. 78년생 동갑내기 세 친구인 정완(김유미), 영은(유선), 혜진(문정희)을 중심으로, 20~30대 독신남녀들의 일과 사랑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드라마로 호평받으며 시청률을 떠나 소수 시청자들의 꾸준한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독신 여성들의 서로 다른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아기자기하게 그려내던 초반부에 비해 후반부로 갈수록 뒷심 부족을 드러내며 맥빠진 멜로드라마로 선회했다. <독신천하>와 비슷한 소재를 다루었던 MBC <결혼하고 싶은 여자>(2004)나 KBS <올드미스 다이어리>(2005)가 일과 사랑의 경계선에 놓인 현대여성들의 일상적인 고민을 끝까지 잘 살려낸 데 비하여 <독신천하>의 주인공들은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유발하는 데 실패했다.

드라마 작가, 전직 교사출신의 백수, 커플 매니저로 설정된 여주인공들은 처음부터 모두 보편적인 대한민국 직장 여성들의 가치관을 대변하기에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엮기 위해서 어느 순간 '일과 생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사라지고, 연애와 결혼문제가 복잡하게 얽히는 진부한 삼각·사각관계의 사랑놀이만 남았다. 어떤 배경과 직업군을 소재로 하든, 뒤로 가면 사랑이야기만 남는 한국드라마의 고질적인 병폐가 어김없이 나타난 것이다.

오랜 연인인 현수(이현우)와 매력적인 바람둥이 지헌(윤상현) 사이를 우유부단하게 넘나드는 정완의 캐릭터는 설득력이 떨어졌고, 완벽한 결혼을 꿈꾸던 철저한 현실주의자 혜진은 어느샌가 주인공 캐릭터들 사이를 이리저리 오락가락하며 변죽만 울리는 '중매쟁이'로 전락하면서 드라마 중심에서 밀려났다.

여기에 방송사의 조기종영이라는 악수까지 이어졌고 <독신천하>는 엉성하게 급조된 결말로 치달아야했다. 내내 미온적이던 현수과 영은의 관계가 갑작스런 해피엔딩으로 치닫는가 하면, 지헌과 정완은 사소한 오해로 인하여 별다른 대화도 없이 석연치않은 이별을 맞는다.

스토리는 용두사미, 시청자와의 약속도 못 지키고

얽히고 설킨 애정관계가 모두 드러났음에도 정작 세 친구의 관계에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독신천하>는 코믹발랄한 분위기를 유지하던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로 갈수록 결말에 쫓겨 길을 잃고 방황하는 모습을 노출하며 용두사미로 마감하고 말았다.

도도하고 차가운 이미지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김유미와 유선, <연애시대>의 요조숙녀로 스타덤에 올랐던 문정희 등 개성있는 여배우들이 각각 기존과 다른 이미지로의 변신을 시도한 점은 돋보였지만, 진부한 멜로드라마의 관습에 묶여 배우들의 매력을 부각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이현우와 윤상현은 안정된 연기를 선보였으나, 각각 세련된 독신남과 바람둥이 전문이라는 전작의 이미지를 복제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무엇보다 방송은 성적을 떠나 시청자와의 약속이다. 시청률 40%를 기록하는 작품이나, 4%를 기록하는 작품이나 시청자의 존재가치는 동일하다. 그러나 시청률에 따라 연장방영 혹은 조기종영이라는 '고무줄 편성'을 전가의 보도처럼 남발하며 드라마의 완성도까지 무너뜨리는 방송사의 무책임한 행태는 여전히 국내 드라마의 제작관행의 후진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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