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동안 대구 계명대학교 교수로서 8년 6개월간 재직하다 작년 9월 1일 동국대학교로 옮기게 되었다. 지방에서 생활하다가 서울로 옮기면서 가장 신경을 써야 했던 일은 집 문제였다.
발령을 받은 날짜가 마침 정부의 8·31 부동산대책을 발표한 직후인 9월 1일이라서,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장만해야 하는지 아니면 내 집 마련의 기회를 미루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부동산에 문외한이었던 나로서는 정부를 믿고 부동산중개사와 주위분들의 권유를 종합하여 1년간 전세를 살다가 집값이 안정기에 접어든 올해 집을 장만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결정을 하고 전세집을 마련할 동안 아내는 대구에 있게 하고, 아들 둘과 협소한 원룸에서 2개월여 동안 생활해야 하는 불편까지 감수하였다.
그러나 어렵게 내린 결론은 1년 후인 올해 결국 참담한 실패작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이 올라버린 집값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나는 아무런 대책을 세울 수가 없었다. 나의 미숙한 판단을 탓하려니 울화가 치밀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 체면이라도 세우기 위해서 남들처럼 정부라도 비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려웠던 전세살이, 그러나 참담한 실패
서울 생활 1년 사이에 8·31대책, 3·30대책, 11·3대책 등 세 번씩이나 정부가 부동산대책을 내놓았으나 한번도 약효가 듣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해 8·31 대책을 내놓고는 "이제 부동산 투기는 끝났다"며 대책을 만든 공무원들에 대한 훈·포장 잔치를 벌였다. 대통령은 세금폭탄 운운하며 지난 5월 "종합부동산세 한번 내보라"고 국민을 겁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부동산대책을 발표하기만 하면 집값은 다락같이 오르기만 하니 부동산대책 발표가 서민들에게 '지금 바로 집을 사지 않으면 낭패를 본다'는 암시 같기만 하다. 도대체 참여정부의 정책 입안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정책을 수립하는지 참으로 알 수가 없다.
모름지기 정책이란 '문제해결 및 변화유도를 위한 활동' 또는 '정책기관에 의하여 결정된 미래의 행동지침'이라고 정의되고 있다. 그리고 정책결정이란 '설정된 국가목표나 공익을 달성하기 위하여 복잡하고 동태적인 과정을 거쳐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정부의 장래 대안을 선택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개념정의에 비추어 볼 때, 부동산가격 폭등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는 정책결정은 부동산가격 안정이라는 문제해결을 위해 가장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대안을 선택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집값 안정대책이 오히려 집값 폭등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이를 악화시켜 놓고 있으니 이론적으론 정책결정으로 보기도 힘들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부동산정책의 실패를 호되게 질타하는 국회의원들에게 건설교통부장관은 국정감사장에서 "8·31대책은 성공했다고 본다, 점수로 치면 80점 정도는 된다"며 맞받아쳤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정부의 부동산대책은 '지금 집사라'는 암시?
현재 집값의 이상 폭등현상은 "조만간 집값이 떨어진다"는 식의 헛공약 남발로 정부정책의 신뢰를 떨어뜨린 것이 중요한 원인이라고 본다.
정책결정을 잘못하면 이를 거울삼아 더 좋은 정책결정을 하면 되지만, 국민이 정부에 대하여 신뢰하지 않으면 정부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을 수립하여 집행하려고 하더라도 국민들이 믿지 않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제발 기원하오니 하루빨리 정부가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어 서민들이 정부를 믿고 편안하게 살 수 있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최응렬 교수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