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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6년동안 큰소리를 낼 만큼 변변한 부부싸움 한번 못해 보고 살아 온 우리 부부가 중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는 딸아이의 고등학교 진학문제로 요즘 은근하게 소리없는 전쟁을 치루고 있습니다.

평소 저는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의 적성과 재능에 맞는 일, 아이가 진정으로 하고 싶어하는 일, 그런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요.

어쩌면 저를 보고 환상에 사로잡혀 이상만 좇아 꿈을 꾸는, 현실도 제대로 모르는 아줌마라고 흉을 본대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제까지 그 누군가가 저에게 우리 아이들이 장래에 어떤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냐고 물어온다면 저는 단 한번도 망설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을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한빛 고등학교 이야기를 듣다

▲ 한빛고등학교 교문과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체육관
ⓒ 한명라
지난 10월초, 우연하게 어느 지인으로부터 담양에 있다는 '한빛고등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인 자신의 아들을 꼭 그 학교에 입학시키고 싶다는 말을 듣고, 저는 인터넷을 검색하여 한빛고등학교에 대하여 자세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올해로 9기 신입생을 모집한다는 그 학교는 특성화학교라고 하여, 일반 인문계고등학교와는 다른 교육방침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크고, 작은 문제점 때문에 폐교 위기까지도 갔었고, 그때의 사건들로 하여금 현재는 3학년이 없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학생들 스스로 재능을 찾을 수 있도록 하고, 본인 스스로 주도적인 생활을 하게끔 하는 교육시스템이 무척 좋아 보였습니다.

전국에서 입학하는 학생들 때문에 학생 대부분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방과후에는 자신들이 가입하고 있는 동아리활동을 하거나,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도록 하는 학교였습니다.

어쩌면 일반적인 인문계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대학진학을 위해서 내신성적 올리기에 급급해 하여 학원과 개인과외를 전전하며 수많은 사교육비를 쏟아부어야 하는 학교와는 전혀 다른 학교였습니다.

생태학습이라고 하여 1학년들은 텃밭을 가꾸기도 하고, 매년 5월 18일에는 광주 5.18민주 묘역까지 도보로 행진하여 행사에 참여하기도 하고, 자연 체험학습으로 1학년은 3박4일 동안 지리산 등반과 2학년은 동학유적지 답사를 하는 그 학교에 저는 금방 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 운동장에서 바라 본 한빛고등학교
ⓒ 한명라
때맞추어 10월 25일까지 2007년도 신입생 원서접수 기간중이었기에, 저는 딸아이에게 인터넷을 통하여 담양의 '한빛고등학교'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아보고 그곳에 입학원서를 제출하면 어떻겠냐고 물었습니다.

딸아이는 처음에는 시큰둥한 태도였지만, 나름대로 그 학교를 알아 본 후에는 원서를 넣어보겠다고 했습니다.

전남지역에서는 신입생의 60%를, 전남지역 외에서는 신입생의 40%를 선발한다는 그 학교에 서울, 경기도를 비롯하여 제주도에서까지 신입생 입학원서가 접수되었고, 75명 신입생 선발에 200명도 훨씬 넘은 학생들이 원서를 제출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입학원서 제출시에 함께 보내야 하는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느라 며칠동안 진지하게 고민하던 딸아이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 보면서, 저는 그런 딸의 모습이 대견하게 느껴져서 살며시 웃음을 지어보기도 했었습니다.

그후 입학원서를 등기로 보냈고, 10월 30일 1차서류심사에서 합격한 115명의 명단속에는 딸아이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틀에 거쳐 치루는 2차 시험인 면접을 보기위해서 토요일인 지난 11월 4일, 우리 부부는 딸아이와 함께 담양으로 향했습니다.

면접을 보러 전남 담양으로...

▲ 면접을 보고 돌아오는 길, 메타쉐콰이어가 끝없이 서 있습니다.
ⓒ 한명라
2차시험인 면접을 치루기 위해서는 학부모소개서도 제출해야 한다기에, 저 또한 학부모소개서를 작성하는 며칠동안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하기도했습니다.

3명중에 1명은 탈락한다는 사실에, 딸아이는 자신이 그 1명에 포함되면 어떻게 하느냐고 면접을 치루기위해 기다리는 동안 내내 불안해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가족이 탄 차가 담양 IC를 지나고, 장성 백양사를 가는 국도로 접어 들었을 때, 끝없이 이어진 메타쉐콰이어길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비록 창원에서 3시간에 걸쳐 가야만 하는 멀리 떨어져 있는 학교이지만, 딸아이가 자연과 함께 자연을 느끼며 학교생활을 한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독특하게 피로티구조로 된 한빛고등학교.
ⓒ 한명라
학교 교문에 도착했을 때, 여러명의 재학생들이 우리 가족을 정중한 인사로 맞아주었습니다. 운동장 한켠에 자동차를 주차했을 때, 또 한명의 재학생이 다가와서 딸의 면접시간을 확인하고는, 아직 1시간 30분이 남아 있음을 알고 기숙사를 비롯하여, 교실과 급식소, 매점과 1학년이 가꾸었다는 텃밭까지도 안내를 해 주었습니다.

학교 뒷편에 자리한 텃밭에는 벌써 고구마는 수확이 끝났고, 많은 김장배추들의 싱싱하고 보기 좋게 잘 자라 있었으며 누런 콩들이 추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면접시간이 길어져서 3시에 예정되어 있는 딸의 면접시간이 조금 늦어지겠다는 설명과 긴장 속에서 떨고 있는 딸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재학생들의 거침없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서 딸아이는 꼭 한빛고등학교에 합격을 했으면 좋겠고, 입학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 화단에 자리잡은 여러개의 솟대.
ⓒ 한명라
딸과 함께 면접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남편은 학교 곳곳을 다니면서 여러 재학생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어 보고, 선후배가 함께 생활한다는 기숙사 내부를 둘러봤던 남편은 딸이 한빛고등학교에 합격을 하여도 보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듯 했습니다.

면접을 마치고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딸아이는 꼭 합격했으면 좋겠다고, 한빛학교에 입학하면 지금과는 다르게 자신의 일은 자기 스스로 해결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재학생들이 보여주었던 자신감 넘치는 모습과 밝은 얼굴들이 무척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머리에 염색을 하고, 퍼머를 한 여학생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에서, 한빛고등학교에는 교복이 없다는 사실에서, 부모 곁을 떠나 굳이 이 멀리까지 딸아이를 보내야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동안 딸아이가 학교생활을 하면서 특별한 문제점 없이 무난하게 잘 지내왔고, 그냥 보통의 아이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딸아이도 집 근처의 일반 인문계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대학교에 진학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꿈을 찾는 것도 그때가서 찾아도 늦지 않다고도 했습니다.

11월 10일에 발표한다던 최종합격자발표가 하루를 앞당겨서 11월 9일 오전에 있었습니다. 78명의 합격자 명단에 딸아이의 이름도 있었고, 추가합격자 10명도 발표되었습니다.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딸아이 또한 뛸듯이 기뻐했고 입학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면접을 치루고 최종합격자 발표가 있기까지 잠시 보류해 두었던 딸의 한빛고등학교 입학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가 이제 다시 불거졌습니다.

보내고 싶지 않은 아빠와 가고 싶어하는 딸

▲ 재학생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여 주는 듯한 신발장
ⓒ 한명라
여전히 한빛고등학교에 보내고 싶어하지 않는 남편과 자신이 가고자 하면 보내고 싶은 저, 그리고 입학하고 싶어하는 딸.

남편의 부탁으로 금요일인 어제(10일) 오후, 담임선생님과 진학상담을 한 딸아이는 담임선생님께서 '여러 선생님들이 은빈이의 한빛고등학교 진학을 의외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너라면 어디를 가도 잘 해 낼 것'이라고 했다면서, 선생님과의 상담후에도 한빛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제 저녁, 무려 3시간 가까이 아빠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딸은 그 밑바닥에는 한빛고등학교 입학을 포기하길 바라는 마음이 깔려 있기에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아빠 알았어요. 한빛고등학교에 안 갈께요."

그런 딸아이의 말에 남편은 집에 가서 엄마와 함께 신중하게 이야기를 나누어보라고 했다지만, 이미 한빛고등학교 입학을 바라지 않는 남편의 마음을 알고 있는데, 더 이상 무슨 신중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한치의 눈 앞의 일도 예측할 수 없기에, 저 또한 한빛고등학교 입학을 완강하게 주장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루 하루가 무서운 속도로 변해가는 요즘 세상에 우리 기성세대들이 자라왔던 방식만을 고집하는 것도 정확한 답은 아닌 것 같습니다.

▲ 우리집 베란다의 민들레 홀씨. 민들레 홀씨가 떠나듯 언젠가는 아이들도 우리 부부의 곁을 떠나겠지요?
ⓒ 한명라
저는 지금도 딸아이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 주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네 스스로 알아서 잘 할 것이라고 엄마는 믿는단다. 한빛고등학교에 입학해서 네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열심히 고민하고, 또 그 길을 찾아서 열심히 잘해봐라."

이제 11월 15일까지 합격생 신고를 마쳐야만이 딸아이는 한빛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습니다.

며칠 남아있는 시간동안, 진정 어떤 결정이 딸아이에게 가장 효과적인지 그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우리 가족은 많이 고민하고 열심히 대화를 나누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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