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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은 계곡을 따라 내려오고 안개는 계곡을 따라 피어오른다. 지금 내장산에는 단풍불이 훨훨 춤을 춘다.
단풍은 계곡을 따라 내려오고 안개는 계곡을 따라 피어오른다. 지금 내장산에는 단풍불이 훨훨 춤을 춘다. ⓒ 최종수
인간은 누구나 평생을 갚아도 갚을 수 없는 빚이 하나 있다. 못 다한 효도의 빚이 그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초여름에 아버지를,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가을에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려야만 했던 나는 한참 지나서야 불효자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부모님과의 추억들이 가물가물 물안개로 번져올 즈음이었다.

저 세상에는 전화가 없다. 그러므로 효도는 살아계실 때만 가능하다. 못 다한 효도를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는 길은 아마도 내가 만나는 모든 어버이를 내 부모님처럼 사랑하려고 애쓰는 일일 것이다.

오늘(11월 6일)은 목숨 다하는 날까지도 다 갚지 못할 ‘평생의 빚’을 조금은 갚을 수 있는 날이다. 호사다마일까. 잔뜩 심술을 부리는 날씨를 걱정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데, 그래도 단풍구경 가나요?”

“어제 밤 소풍가는 손자처럼 잠이 오지 않았어요.” “아침 비에 서울 가라는 말이 있잖아요? 내장산에 가면 비가 그칠 거예요.” 오전 9시, 회색구름이 가득한 남쪽 하늘을 향해 버스에 올랐다.

시내를 빠져나가는 동안 어른들에게 마이크를 드렸다. 감사하는 마음을 모아 출발기도를 바쳤다. 효도 단풍구경 버스는 김제를 지나고 있었다. “자, 지금부터 날씨도 묻지 마, 나이도 묻지 마, 노래만 신나게 불러, 신바람 노래방을 시작하겠습니다.” “짝- 짝- 짝…….”

“좋기도 좋을시고 아기자기한 지고 형제들이 오순도순 한데 모여 단풍구경 가는 것” 즉흥 노래를 시작으로 생음악 노래방이 막을 올렸다.

최고령 할아버지(85세)의 시조 한 가락. “봄은 가고 여름도 가고, 붙잡을 수 없는 세월이 가는구나. 늙어지면 못 노나니……” 비 내리는 고모령, 신라의 달밤, 노새노새 젊어서 놀아…… 모두가 박수치며 신바람이 났다. 손자의 재롱을 보는 것도 흥겨운데, 성직자의 재롱을 보고들 있으니 어찌 즐겁지 아니하랴.

맨 앞좌석에 앉아 있는 할머니 한 분. 1988년 5월 명동성당에서 올림픽 남북공동개최를 외치며 할복투신한 조성만 열사의 고모가 마음 한켠을 어둡게 했다.

“우리 어머니 노래 한 자리 하셔야지요.”
“귀가 먹어서 무슨 노래를 하는지도 모르는 병신이 뭔 노래를 헌다요. 다른 사람 시키세요.”
“어머니~이, 어머니께서는 귀가 먹어서 다른 사람의 노래를 들을 수 없지만 다른 분들은 다 들을 수 있잖아요. 그러니 어머니께서 노래를 부른다면 여기 있는 어르신들이 얼마나 기쁘고 즐겁겠어요. 안 그래요? 그러니까 자, 한 곡만 하세요~ 이~잉, 하셔이~잉!”

조성만 열사의 고모가 열창을 하고 있다. 91세 최고령 윤뭉치 할머니가 박수를 치고 있다.
조성만 열사의 고모가 열창을 하고 있다. 91세 최고령 윤뭉치 할머니가 박수를 치고 있다. ⓒ 최종수
마음과 마음이 통한 것일까. 자신의 열창을 자신이 들을 수는 없지만 할머니는 구성지게 한 곡조를 뽑으셨다. 효도관광 버스 안이 환해지는 순간이었다. 어두운 마음들을 날려 보내기라도 하려는 듯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차창에 부딪쳐 내리는 빗방울까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다음은 최고령 할머니(91세)의 노래가 이어졌다. ‘사랑 철철! 행복 만점!’ 노래방은 절정에 다다랐다. 어느새 버스는 색동옷으로 갈아입고 있는 가로수를 따라 단풍불이 붙기 시작한 내장산 입구에 도착했다. 아침부터 내린 비는 붉은 감들과 단풍잎들을 적시고 있었다. 어머니를 위해 휠체어까지 빌려온 한 형제의 눈망울도 서운함으로 젖어갔다.

노점상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비닐천막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튀밥 기계는 잠시 멈추었는데 비는 쉬지 않고 내린다.
노점상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비닐천막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튀밥 기계는 잠시 멈추었는데 비는 쉬지 않고 내린다. ⓒ 최종수
쑥절편과 귤로 간식을 챙긴 뒤 희망자에 한해서 산행을 하기로 했다. 40명 중 12명이 비옷차림을 하고 나섰다. 단풍 보러 가는 길목에는 감을 깎고 있는 할머니, 비옷을 입고 풋고추를 바구니에 담는 할머니, 비닐천막에서는 대여섯의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둘러앉아 점심을 먹고 있는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을전어를 굽는 곳마다 어김없이 ‘식사하고 가세요’ 빙글빙글 돌아가는 튀밥기계처럼 70년대 장터를 연상케 하는 풍경들이 발걸음을 붙잡았다. 삶의 현장처럼 아름다운 단풍이 또 어디 있으며, 내장산 단풍이 아름답다 하나 어디 삶의 단풍과 비길 수 있으랴.

단풍터널로 이어진 길을 따라 오르다 발길이 멈추었다. 마지막 잎새를 떠올리게 하는 붉은 잎들 가지 끝에 수정처럼 빗방울이 맺혔다. 수정 열매들이 매달린 가지와 단풍잎들 사이로 노랗게 물들어가는 산, 모로 누워있는 가지들 위에는 푸른 이끼들도 단풍이 들고 있었다.

단풍 터널을 걷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우산도 단풍이 들었다.
단풍 터널을 걷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우산도 단풍이 들었다. ⓒ 최종수
산행을 멈추고 발길을 돌린 건 점심도 먹지 못한 채 기다리고 있을 어르신들 때문이었다. 준비해 온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정읍 시내 성당에 연락을 했다. 휴일인 월요일인데도 선배 신부님과 연락이 되었다. 성당 회합실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곳으로 이동해 점심상이 차려졌다. 상추에 싸서 찰밥을 얹고 고기 한 점을 올린 뒤 눈을 부라리며 드시는 어르신들. “삥아리 눈물만큼만 드릴게요. 워매 어쩐대요. 고래 눈물만큼 따랐네요.”

정확히 서른여덟 분에게 술잔을 권하고 나니 시장기가 돌았다. “쌈 한 번 싸주면 안 잡아먹지” 상추에 쑥갓을 얹고 밥과 고기를 얹어 넣어준 쌈이 어찌나 큰지 입이 수난을 맞고 있었다. “어머니 입 찢어지겠어요” “내 입 찢어지나요” “하-하-하”.

어르신들이 싸주는 쌈을 십여 차례 받아먹었을까. 금세 배가 남산처럼 불렀다. 야간 경비근무를 가셔야 하는 분들이 계셔서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비온 뒤 산과 하늘은 이제 막 세수를 한 아이처럼 맑아보였다.

돌아오는 길,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장군 전봉준 기념관에 들렀다. 그러나 ‘월요일은 쉽니다’ 라는 작은 표지판이 입구를 가로막고 있었다. 다행히도 구 기념관에는 문이 열려 있었다. 녹두장군 영정이 모셔져 있는 전시관으로 가 보았다. 그곳에는 제폭구민과 보국안민 동학사상이 영정의 좌우를 지키고 있었다. 대다수 백성이 사람대접 받는 세상, 그 어떤 강대국에게도 예속되지 않는 나라. 백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동학혁명의 꿈은 먼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녹두장군 동상의 횃불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전시관을 돌아 나오는 길에 동학혁명 기념비를 둘러보았다. 뒤편에 새겨진 비문은 친일을 찬양했던 예술인들처럼 군사독재를 찬양하는 비문을 보는 것 같았다.

'제폭구민' '보국안민'의 동학사상은 지금 우리 시대는 물론이고 영원한 혁명의 과제일 것이다.
'제폭구민' '보국안민'의 동학사상은 지금 우리 시대는 물론이고 영원한 혁명의 과제일 것이다. ⓒ 최종수
녹두장군의 기운을 담아 다시 버스에 올랐다. 마이크를 돌리자, 소주와 포도주로 달아오른 열기가 노래와 박수로 이어졌다. 남은 소주병을 들고 뒷좌석부터 ‘삥아리 눈물만큼 만요. 워매 고래 눈물이 되어버렸네요’ 눈물타령 술을 권했다.

빈 소주 피티 병으로 여기저기를 두드리며 흥을 돋구었다. 박수를 치지 않거나 노래를 함께 부르지 않는 분들에게 마이크가 돌아가니 버스 안은 저절로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어느새 버스는 전주 월드컵 경기장을 지나고 있었다. 오전 9시에 출발한 버스가 전주에 다시 도착한 것은 오후 5시경이었다.

자리가 없어 통로에 신문지를 깔고 앉기도 하며 다녀온 효도관광. 비가 내려 내장산 구경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행복한 효도관광이었다. 시작기도를 드린 시간을 제외하고는 시종일관 재롱을 피워야 했다. 그날 저녁 사제관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쓰러지듯 곤한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단풍이 든 마음에 가득한 사랑, 버스를 가득 채운 ‘사랑합니다!’
단풍이 든 마음에 가득한 사랑, 버스를 가득 채운 ‘사랑합니다!’ ⓒ 최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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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기자는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일꾼으로,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으로 2000년 6월 20일 폭격중인 매향리 농섬에 태극기를 휘날린 투사 신부, 현재 전주 팔복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첫눈 같은 당신'(빛두레) 시사 수필집을 출간했고, 최근 첫 시집 '지독한 갈증'(문학과경계사)을 출간했습니다. 홈피 http://www.sarang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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