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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중간선거가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습니다. <오마이뉴스>와 외교안보 전문 싱크탱크인 코리아연구원은 공동으로 '미국 중간선거 결과의 함의와 과제'를 주제로 3편의 글을 연재할 계획입니다. 이 글은 총 3편의 글 중 두번째로 안병진 창원대 교수가 '미국의 신중도주의 시대의 서막과 한반도의 완화된 관리 정국'을 주제로 썼습니다. 원문은 코리아연구원(www.knsi.org)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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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이어 미국 정치지형에 도착한 중도의 태풍
한국 대선 지형에 불어온 신중도의 경향에 이어 미국 정가에도 수년 만에 신중도의 새로운 정치 지형이 도래하고 있다. 한국에 부는 바람은 집권 정치세력의 교조주의, 오만과 무능에 대한 매우 뿌리 깊은 거부감에 기인하는 것이지, 진보적 시대 흐름에 대한 완전한 거부는 아니다. 이는 <동향과 전망> 2006년 가을호에서 고원 박사의 여론조사 분석이 예리하게 지적하듯이 부동산, 교육 문제에서 시민들이 표현하는 진보적 지향성에서 잘 드러난다.
다소 유사하게 미국에 불고 있는 바람도 9·11 이후 미국의 보수화 경향에 대한 근본적 거부는 아니다. 다만 집권 세력의 강경보수 교조주의, 당파적 오만, 그리고 심각한 무능과 부패에 대한 누적한 불만이 말하자면 '불신임 투표'(vote of no confidence)로 표출된 것이다.(자세한 중간선거 분석은 코리아 연구원 특별기획, 김윤재 박사의 글을 참조) 이 점에서 진보적 층과 부동층의 반(反) 부시의 이해관계가 일시적으로 일치를 보았을 뿐이다.
한국에서 집권 세력의 지리멸렬한 약화 이후 당내외 진보파와 중도파는 서로의 이데올로기적, 당파적 렌즈에 입각해 진보나 중도 유권자의 반란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며 문제의 해법을 어렵게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현재 미국에는 개혁파 내의 진보파와 중도파 사이에서 새로운 중도적 정치지형의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미묘한 선거결과 해석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한국보다는 성숙한 형태로 진행되면서 자극적 균열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미묘한 긴장은 2008년 대선까지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아메리칸 프로스펙스> 잡지가 주장하는 진보 유권자의 반란만도 아니고 민주당 중도파들이 주장하는 중도파의 반란만도 아니다. 두 진영의 무의식적 연합에 의한 반란이라고 보는 것이 더 균형 잡힌 인식일 것이다. 예를 들어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당선된 헬쓰 슐러는 위 진보 잡지의 클라인이 11월 8일자 컬럼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경제적 포퓰리스트로서 진보적 중도주의에 가깝다.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이슈에서는 민주당 중도파가 좋아하는 온건한 중도주의자인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 AP통신 >이 분석한 것처럼 공화당에 실망하여 민주당으로 선회한 백인복음주의자들이 3분의 1이나 되는 유권자들에게 슐러같은 후보나 현재의 민주당은 충분히 지지할 수 있는 대상이다.
부시 행정부의 부분적 중도화의 4가지 이유 잘 이해해야
지금까지 부시 행정부는 수많은 소 위기에 직면해왔다. 이라크 전쟁이 서서히 수렁에 빠져들었고 체니의 오발 사건 등 수많은 스캔들에 시달려 왔다. 이때마다 미국과 한국의 지식인들은 그 이후 정국 방향을 둘러싸고 '합리적 선회론' 대 '기본 기조 불변론'의 두 가지 예측 노선으로 대립했다.
전자는 위기에 봉착한 엘리트는 비용과 이익의 계산 속에서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보다 현실주의적으로 선회한다는, 지식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가정에 입각해 있다. 이는 그간 미국과 한국의 다수 의견을 차지 해왔다. 필자는 그때마다 소수의 입장인 기조 불변론을 취해왔다. 왜냐하면 부시 대통령은 지식인들이 생각하는 부시 1세나 레이건 전 대통령과는 달리 종교적이고, 정치 스타일에서 밀리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전투적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대략 필자의 예측이 크게 틀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다시 두 가지 예측 노선의 대립이 재개 되었다. 합리적 선회론은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전격 경질과 현실주의자 로버트 게이츠의 임명을 중요한 신호로 주장한다. 반면에 후자는 '레임덕' 의회 기간을 활용한 볼튼 대사의 인준 압박 시도와 비밀도청 프로그램의 입법 시도를 보면서 "그럼 그렇지"하고 냉소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필자의 예측과 달리 이번에는 좀 더 중도적 스탠스를 취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싶다. 이는 다음의 몇 가지 이유에 기인한다.
첫째, 너무도 당연하게 미국 정치 지형에서 선거에서의 민의 표출(mandate)이 가지는 압박감은 한국에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한국은 보수, 진보를 떠나 선거에서의 민의를 해석하는 노력과 과학적 태도에 있어 매우 뒤떨어져 있다. 참여정부의 추락이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기인한다. 사실 이번 중간선거 기간, 심지어 어떤 공화당 후보는 본인이 '대통령'과 매우 협조적이라고까지 밝혔다. 이때 대통령은 물론 부시가 아닌 클린턴 전 대통령이다.
과거 2000년 대선에서 상승하던 멕케인 공화당 후보가 부시 후보를 클린턴에 비유했다가 지지율 추락을 경험한 것에 비하면 정말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징후는 물론 선거에서 공화당의 충격적 대패로 현실화되었다.
필자가 11월 10일 <한겨레> 칼럼에서 지적한 것처럼 90%를 훨씬 넘는 현직 의원 재선율과 공화당의 수년간에 걸친 당파적인 선거구 재조정을 고려한다면, 이는 거의 유권자 혁명의 수준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유권자 혁명 및 공화당내 철저한 균열로 이제 사용할 '정치적 자본'이 바닥난 부시 대통령으로서 노선의 부분 수정은 너무도 당연한 선택이다.
그렇다면 그토록 종교적으로 신념을 가졌던 중동민주화 노선은 다 어디로 갔는가?
당연한 것이지만 여기서 분명히 이해해야 할 것은 부시 대통령은 결코 네오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애초에 9·11 직후부터 이라크 침공을 졸라댄 체니 부통령과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과는 약간 생각이 달랐다.
그가 이라크 개전을 선택한 것은 중동의 불량국가들에 대한 종교적 혐오감, 중동 질서의 급진적 재편 야심, 미국 국내 선거 지형에의 유리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애초부터 트로츠키적인 영구혁명론의 피가 끓는 네오콘의 DNA 라기 보다는, 힘과 일방주의적 패권을 숭상하는 '잭슨주의 포퓰리즘'에 더 가깝다.
그리고 이미 후세인 제거의 실험을 끝낸 그로서는 실험의 부작용을 완화하는 것이 본인 노선의 선회라기보다는 노선의 완성으로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말하자면 중동 재편의 시작은 네오콘식으로, 마무리는 현실주의적으로 말이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네오콘적 현실주의'라고나 할까? 더구나 역대 어느 대통령 보다 외교안보 이슈를 국내 정치 지형과 결부시켜온 그로서는 이제 더 이상 이라크 이슈가 국내 정치지형에 유리하지 않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의 이러한 비일관된 태도가 정치평론가들에는 모순적으로 느껴지겠지만, 부시에게는 하등의 어색함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 현재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역사 속에서의 평가를 위한 업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세 번째 이유이다. 탐 대슐 전 민주당 상원 원내 총무는 이제 재선을 남겨두지 않은 부시로서는 그간의 오만한 노선을 수정할 이유가 없다고 진단한 바 있다(< Herald Tribune >, 11월 11일자)
하지만 그가 못보고 있는 것은 재선은 없지만 '역사 속의 선거'는 현재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부시는 이라크 전쟁의 안정적 마무리, 그의 상표인 교육개혁, 이민 개혁 등에서 업적을 남기기 위해 사활을 걸 것이다. 따라서 최소한 이러한 이슈들에서는 중도적 스탠스를 취 할 가능성이 높다.
네 번째로 부시와 칼 로브는 이러한 부분적 중도화가 단지 희망사항이 아니라 가능하다는 정치적 계산을 이미 마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전광석화처럼 럼스펠드를 경질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의 신속한 경질은 사실은 민주당에 내미는 화해의 제스처가 아니다. 이는 전투적 부시의 '다른 수단을 통한 민주당 공격'이 선거 다음날 이미 시작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민주당내에서도 중도적 지형이 우세하고, 이제 반대당의 호시절이 지나고 다수당으로서의 성과를 보여야만 하는 대단히 곤혹스러운 새로운 정치 지형을 백악관이 압박해나가며 주도권을 단호히 장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조금씩 다가오는 멕케인 대통령의 가능성과 민주당의 진보적 실용주의
이번 중간선거는 어쩌면 더 놀라운 새로운 정치지형이 2008년에 전개될 수 있는 가능성을 앞당겼다. 다름 아닌 존 멕케인 상원의원의 시대 말이다. 필자는 2000년 선거 시절에 칼 로브를 주목하라고 지적한 바 있다.
왜냐하면 그는 많은 선거전문가들이 상상력의 결여로 판단하지 못한 양극화된 선거 특성을 잘 반영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제는 멕케인을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중도적인 현 정치지형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기존 질서의 급진적 재편의 핵이기 때문이다.
강경보수가 득세한 공화당에 당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흥미롭게도 아직도 열광적 민주당 당원 및 부동층 팬을 거느리고 있는 보수적 포퓰리스트인 멕케인은 정치적 양극화의 시대에는 '시대의 결'(grains of history)이 자신의 편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시대의 결'이 그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에서 비슷한 구도를 가지는 손학규 전 지사의 미지근함과 홍준표 의원의 매력 없음과 대조적으로, 그는 미국의 기존 양당 구도를 흔들어 놓을 폭발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간 공화당내 열성파들과의 주파수 맞추기로 이미지의 훼손을 감수해야 했지만 향후 그의 행보에 따라서는 2008년은 그의 시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마치 과거 2002년 한국 대선에서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노무현 후보를 하나로 묶은 한나라당의 공격이 아무런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고 무너진 것처럼, 부시와 멕케인을 동일시한 민주당 공격은 위력을 가지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샴페인에 취해있는 미국 민주당은 또 다시 4년 내지, 심지어 8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현재 미국 민주당의 고뇌는 시대의 결이 강경보수에서 중도로 이동하며 절호의 대선 승리의 기회는 오고 있는데, 이 기회를 부여잡을 후보가 약하다는 사실이다. 시대의 결을 보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단순 중도가 아닌 "새로운 열정을 일으킬 중도"의 시대이다.
민주당 정책 브레인들은 이를 이해하고 있기에 민주주의 리더십 회의(DLC)같은 기존 민주당 중도파조차 좀 더 진보적인 색채를 띠면서, 열정적 지지자층과 중도층을 통합시키려 하고 있다. 이것이 참여정부에서도 관심을 가졌던 해밀턴 프로젝트 등이 중도파 특유의 실용주의가 아니라 '진보적 실용주의' 스탠스를 취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 '진보적 실용주의'의 무기는 거의 완성이 되었는데, 이를 휘두를 장수가 애매하다. 선거 직전 케리 상원의원의 '공부 못해서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이라는 엘리트주의적 실언은 미국의 자유주의 진영 일반이 얼마나 서민적 포퓰리즘과 동떨어져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는 과거 앨 고어와 케리가 집권하지 못했던 이유이고 한국의 현 집권당이 회복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실용주의는 갖추어져 있는데 '진보적' 감수성이 내재화되어 있지 못한 것이다.
반면에 힐러리 상원의원이나 하워드 딘 전국위 의장은 객관적 이념 지표상 중도성을 가지지만, 축적된 이미지에 있어서 남부 등의 중도적 유권자층을 설득하기에는 매우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이후 더 진전된 구도를 보아야 하겠지만 현재로서는 진보적 이미지를 회복하고 있으면서 통합적 매력을 가지는 고어 전 부통령과 떠오르는 샛별 오바마 상원의원의 결합이 그들로서는 그나마 가장 나은 구도로 보인다.
한반도의 완화된 관리 상태의 4가지 변수
필자는 위에서 미국에 신중도의 시대가 도래 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전체적 경향을 곧 한반도 이슈에 적용한다면 이는 예측에서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서는 미국의 전체 정치 지형에서 기계적으로 한반도 전략을 유추하는 오류를 자주 범하는데 이는 한반도 중심주의적 환상 때문이다. 냉정하게 미국 백악관과 정치지형의 눈을 통해서 한반도 문제를 보아야만 보다 더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다.
상식적 이야기이지만 이번 선거에서의 민의의 핵심은 이라크 전쟁 등에서의 오판과 오만, 무능에 대한 심판이다. 그리고 부시 행정부 또한 그렇게 민의를 해석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부시는 럼스펠드를 신속히 경질했지, 대북정책을 주도해온 체니를 경질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체니는 게이츠 국방장관처럼 보다 더 많은 현실주의자들의 복귀로 과거보다 입지가 축소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부시 행정부나 일반 시민들은 북핵의 위험성을 체감하고 있지는 못하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이후 소형 핵을 미사일에 탑재하는 수준 등의 더 체감된 위기 국면에 이르러서야 보다 본격적으로 북핵 이슈를 다룰 가능성이 크다. 말하자면 과거 소위 쿠바미사일 위기가 그렇듯이 미국의 목에 칼을 들이 대야만 힘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때는 다음 정권의 골치 아픈 과제가 될 가능성이 높지만 말이다. 오히려 대북정책은 필자가 <한겨레> 11월 10일자에서 밝혔듯이 다음의 4가지 변수 간 상호작용에 의존하며 완화된 형태로 관리되어 나갈 가능성이 크다.
첫째, 후세인 사형 후 이라크 내전의 확대 여부이다. 부시 대통령에게 있어 자신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는가의 기준은 첫째가 이라크이고 둘째도 이라크이다. 만약 이라크 이슈가 계속 확대된다면 이는 북핵이 관리해나갈 이슈 정도로 국한됨을 의미한다. 더구나 북한보다 100배는 골치가 아프고 더 큰 국제정치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란이 기다리고 있다.
더욱 자신감을 가진 헤즈볼라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결국 그간 부시가 발행한 수표가 부도가 되어 하나 둘씩 돌아오며 그를 괴롭힐 것이다. 이러한 중동 지역 정세의 불안정성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에너지를 상당히 빼앗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부시는 이라크 해법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는 과거 초특급 소방수인 베이커 국무장관이 그를 2000년 플로리다 투개표 소동에서 노회하게 구출하였듯이, 이제 다시 그에게 절실히 기대고 있다. 현재 이라크 스터디 그룹을 주도하는 베이커의 안이 나오면 부시는 초당적 합의의 모양새 하에 베이커 보고서의 부분을 채용하며 위기에서 탈출하고자 할 것이다.
뾰족한 대안이 없는 민주당으로서는 곤혹스러울 뿐이다. 더구나 지금은 대선 시즌이다. 만약 조기 철군이 이후 엄청난 부작용을 야기한다면 이는 발 앞에 대권이 저절로 굴러들어오고 있는 힐러리나 고어에게는 악몽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라크 해법 집중 과정에서 부시 행정부가 북핵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는 방식은 물론 어떻게 해서든 6자회담의 틀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도 금융제재나 6자회담 내 양자회담에 있어 보다 더 유연한 태도를 취하며 민주당이나 공화당 중진의원들의 직접 대화 공세를 피해가려 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문제가 단순하지 않는 것은 북한의 핵실험이 이루어진 이상,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기존 6자회담보다 더 골치 아픈 아젠다가 필연적으로 논의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관리가 강조하듯이 바로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제거하는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중앙일보> 11일자) 하지만 과거 쿠바미사일 위기가 이미 보여주듯이 이러한 제거 수단의 마련은 양국간의 신뢰 수준이 전제되어야 한다. 더욱 더 상호간의 불신과 의혹이 심화된 현 지형 하에서 이 과제는 무수한 암초가 기다리고 있다.
둘째로 대북 문제의 태도가 일방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상호간의 게임임을 고려할 때 북한의 의도가 또한 고려되어야 한다. 과연 김정일 위원장이 현재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길은 없다. 좀 더 정국의 진행 상황을 보아야만 그의 의도가 행동으로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패턴으로 추론해보면 그는 최소한 부시 행정부 기간 동안 획기적 딜에는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그는 부시 행정부의 심각한 약화와 이라크 해법에의 올인을 목격하면서, 이 기회를 몸값을 올리는 기회로 삼고자 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그가 더욱 더 몸값을 올려 향후 새로운 대통령과의 빅딜을 기다리며 장기적 교착 상태를 만들어내고자 한다면, 핵 제거 수단 마련 논쟁에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회담이 지연될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섣부른 예단 보다는 그의 회담에 대한 향후 태도를 보면서 평가해 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2008년 대선에서 고어 등이 당선된다면 그의 지연 전략이 결실을 얻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당선 후 일시적으로는 고어가 강경한 스탠스를 취하겠지만 클린턴 보다 더 철저한 실용주의자인 그는 핵제거에만 집중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멕케인이 당선된다면? 김정일은 뜻하지 않은 일정의 차질을 경험할 것이다. 북한 문제에 있어 부시보다도 더 강경한 신념의 멕케인도 현실적으로는 뾰족한 수가 없지만 최소한 대쿠바 정책처럼 장기적인 고사 전략을 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미국 내에 조사 정국의 도래와 그 파장의 정도이다. 민주당 내에는 지금 두 가지 기류가 긴장 속에서 존재한다. 하나는 부시 대통령의 제왕적 대통령제 행태와 그간 수년간 다수당으로서 공화당이 범한 매우 당파적인 태도에 대한 광범위한 분노이다. 공화당은 의회에서의 어떠한 효과적 조사도 철저히 가로막았다. 설령 9·11 조사 위원회가 조사 활동을 벌였지만 위원장인 젤리코우 교수는 보수주의자이자 친 라이스파로서 라이스 국무장관의 9·11 징후 무시라는 엄청난 실책에 면죄부를 부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조사 정국이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로 비춰질 경우 94년 유권자 혁명을 일으켰던 깅그리치 하원의장이 무너지듯이 순식간에 무너진다는 두려움이 현재 민주당 내에 존재한다. 더구나 이번 선거에서의 민의는 초당적 실행력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마치 과거 한국에서 탄핵정국의 민의와도 유사하다. 이 민의를 자신의 개혁 아젠다에 대한 지지로 착각한 집권당의 오류는 미국의 민주당이 그대로 범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당시 정치개혁주의 논객들과 달리, 로버트 라이시 전 노동부 장관같은 진보 논객은 <아메리칸 프로스펙스> 9일자에서 민주당에게 '과거 오류 청산' 보다 미래의 개혁 실행에 집중하자고 제언하고 있다.
이러한 두 가지 흐름 속에서 민주당 지도부가 어떠한 선택을 하는가는 대북 문제와도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 왜냐하면 조사 과정이 얼마나 전방위적이고 강도 높은가에 따라 그간 강경한 대북정책을 주도해온 부통령 체니가 어느 정도 발이 묶이는가, 어느 정도 정치적 생채기를 받는 가가 좌우될 것이 때문이다. 사실 체니는 과거 오발 사건 등 궁지에 몰렸을 때는 대북 문제의 말 고삐를 느슨하게 쥐었고 이는 곧 크리스토퍼 힐 등 온건파의 활동여지를 강화시켜 준 바 있다.
하지만 미국 정가에서 '뱀처럼 비열하다'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체니가 쉽게 약화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지금 잠시 호흡을 고르며 라이스·힐 등이 주도하는 6자회담이 파열음을 내는 것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매우 창조적인 매파인 조지프 차관의 창조적 봉쇄정책인 '맞춤형 봉쇄' 노선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9·11 이후 테러 비확산이라는 높은 명분 하에 초당적이고 지구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있는 그의 맞춤형 봉쇄노선이 설치할 덫이 사방에서 북한의 신경 발작적 대응을 유도할 것이다.
넷째로 향후 임명될지 모르는 대북조정관이 부시와 민주당 의회의 힘겨루기 속에서 어떻게 결말이 나는가도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하원 아시아태평양 소위원장을 맡았다가 이번에 아깝게 낙선한 짐 리치 공화당 의원을 거론하고 있다. 그는 공화당 전반의 기류와 달리 대화를 강조하는 실용주의자이므로 그가 임명 된다면 긍정적 신호일 것이다.
이는 12월 중순까지 백악관과 민주당 지도부인 조 바이든 상원의원 등과의 지속적 조율을 기다려 보아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4가지 변수들이 상호작용하며 장기적 교착상태나 부분적 돌파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획기적 돌파구는 현재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낮은 시나리오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이 닉슨식 획기적 전환을 취하거나 김정일 위원장이 가다피 리비아 원수의 핵 선 포기라는 '광폭정치'를 취할 가능성이 최소한 지금까지의 지형에서는 희박하다. 과연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이 될 랜토스 하원의원이 그의 주장처럼 가다피를 설득했듯이 김정일을 설득할 수 있을 지도 회의적이다.
어쨌든 지금 우리는 새로이 도래한 미국의 중도적 정치지형을 고려하면서 백지상태에서 새롭게 한반도 전략과 담론을 짜야할 시점이다.
몇 가지 고민이 필요한 점들
첫째로 현 민주당 의회의 역할 및 향후의 6자회담에서의 합의에 대한 과도한 환상을 경계해야한다는 점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미 지적하였듯이 견제와 균형으로 디자인된 미국 시스템에서 외교안보에서의 주도권은 결국 대통령으로 귀착된다. 다시 말해 부시 대통령이 누구의 손을 들어주는가가 결정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위에서 지적한 4가지 변수의 관계를 고려할 때 설령 일시적 합의가 이루어진다하더라도 지난한 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과거 9·19 공동선언을 마치 남북관계의 획기적 돌파구로 판단한 정부나 일부 지식인들의 오버는 정치적으로 미숙하거나 북미관계의 어려움의 강도를 안이 하게 판단하는 것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이는 결국 대 시민 설득력 등에서 스스로 힘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야기한다. 헌법적 수준으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하고 가격 폭등을 일으키는 어리석음과 동일한 원리이다.
둘째로 미국 내 새로운 중도주의적 경향을 설득할 논리의 개발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 민주당의 새로운 기조는 9·11 이후 기존의 다소 유약한 자유주의관에서 '단호한 자유주의'(tough liberalism)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기조는 단지 이라크·테러 이슈 뿐 아니라 대북 태도에서도 감지된다. 이러한 경향과 넓게 합의점을 가지지 못하고 기존의 협소하게 이해된 햇볕 정책 노선을 그들에게 강변한다면, 이는 변화된 현실에 대한 실사구시적 태도가 아니며 정치적으로도 유능한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해 미국 민주당 내부 수준의 보다 전면적 논쟁과, 강조점의 차이를 인정한 생산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는 미국의 논쟁이 그러하듯이 단순한 기법상 변화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현실에 대한 새로운 사고와 기존 자유주의관의 혁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셋째로 이는 곧 미국 중도주의 세력과의 교감의 문제일 뿐 아니라 한국 내 새로이 튼튼하게 넓은 합의점을 형성시키는 문제이기도 하다. 현재의 분열되고 혼란스러운 구도는 한국 내 중도적 지식인들과 유권자들을 결과적으로 보수강경파의 무책임한 코너로 밀어 넣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현재 한국의 정치지형은 최소한 북핵, 부동산 문제에서 새로운 넓은 합의점과 아래로부터의 조직적 틀, 그리고 강한 실행 플랜을 만들어야 할 시점이다.
넷째로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대선 주자들의 강경한 대북 레토릭을 완화시킬 수 있는 설득의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이후 이들이 보다 좋은 입지에서 대북 문제를 풀어나가게 할 수 있는 여건을 미리 마련해 주는 일이다. 특히 멕케인 후보의 북한에 대한 초강경 태도는 매우 우려스럽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멕케인 의원과 절친한 척 헤이글 의원 같은 이들과 긴밀히 교류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로 향후 대북조정관이 임명되면 위에서 언급한 새로운 논리구조를 가지고 집요하게 설득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여섯째로 이번에 새로이 당선된 상하원 의원들에 대한 조사 및 활동 추적을 통해 향후 한반도 문제에 대한 긍정적 여론 조성의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새로운 메시지와 미국에 대한 설득의 접촉면들을 체계적으로 확대하기 위한 전문적 팀을 만들 필요가 있다.
과거 어느 지식인의 지적처럼 모든 이론은 회색빛이며 오직 푸르른 것은 부단히 변해가는 현실일 뿐이다. 지금은 스스로 가지고 있는 이념적, 혹은 이론적 렌즈의 불투명함을 버리고 새로이 형성된 미국과 한국의 정치 지형과 그 추세를 읽고 새로운 이론과 담론을 정립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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