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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김순옥 할머니. 출발하기 전 벌써 할머니의 얼굴엔 웃음이 한가득이었다. 할머니는 소풍가는 어린 아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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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 주지인 원행 스님은 점심 약속이 되어 있는 전주의 톨게이트까지 몸소 마중을 나와 주었다. 그리고 할머니들을 전주의 한 음식점으로 안내해 주었다.

점심은 전주 비빔밥이었다. 비빔밥은 따로따로인 맛을 하나로 섞어 또다른 맛을 만들어낸다. 사람과 사람이 섞여 하나의 길을 가면 그때부터 함께가는 그 길은 맛이 남다르다. 할머니들의 길에 함께 한 사람들에게 이날 하루의 나들이길은 비빔밥만큼이나 맛있는 길이다.

"나야, 옥선이... 못 알아 보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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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금산사로 가기 전에 전주은혜마을 효경원에 들렀다. 노인들을 위한 요양원이다. 그곳엔 나눔의 집에 있다가 조카가 사는 곳에서 가깝다고 그곳으로 거처를 옮긴 한도순 할머니가 있다. 지나는 길이어서 할머니를 보기 위해 잠시 그곳에서 버스를 세웠다. 그러나 지난 해 8월 그곳으로 옮겨가신 할머니의 눈에선 사람들의 얼굴에 대한 기억이 지워져 있었고, 할머니의 입은 굳게 닫힌 채 말이 없었다.

일본군에게 말 못할 치욕을 강요 당한 뒤 할머니가 가장 먼저 잃어 버린 것은 말이었다. 할머니는 한동안 그 말을 되찾지 못했다. 그러다 할머니는 "일본은 과거를 사죄하고 배상하라"고 소치리며 잃었던 말을 되찾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 말을 다시 잃어 버리고 있었다.

요양원 시설은 편하고 깨끗했지만 같은 아픔을 함께 나누며 같이 지냈던 할머니들과 떨어지면서 할머니가 겪게 된 외로움이 더 컸나 보다. 그리고 그 외로움이 몸의 건강을 앗아가고 또 말도 앗아갔나 보다. 어찌보면 할머니는 할머니들과 함께 소리침으로써 말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말을 잃은 사람도 함께 소리치면 말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사람들은 모두 함께 소리쳐 할머니의 말을 다시 찾아드리고 싶었을 것이다.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사죄하고 배상하라!" 다시 그렇게 외치고 그 외침 속에서 할머니의 말을 찾아드리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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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나, 옥선이... 나 못 알아 보간디."
"할매, 나 못 알아 보겠어요? 저보고 매일 시님이라고 하셨잖아요..."

하지만 한도순 할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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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훔쳤으며, 나눔의 집 원종선 간호사도 흐르는 눈물을 피해가지 못했다. 하지만 원종선 간호사가 "내가 누구냐"를 물었을 때 그래도 할머니가 입을 모아 유일하게 말을 한마디 했으며, 그것은 "간호사"란 말이었다. 그나마 할머니의 기억 속에서 간호사는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은 목소리가 아니라 오물거리는 입 모양으로 겨우 그려낸 말이었다. 원종선 간호사는 지난해 8월 이곳으로 떠날 때만 해도 관절염으로 고생은 하셨지만 그래도 걸어다니셨다며 말을 잃어 버린 할머니의 모습에 또 다시 눈물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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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있으면 매일 아침 말이라도 붙여 볼 수 있겠지만 이제는 이렇게 가끔 찾아보는 것밖에 달리 해줄 수 있는게 없다. 나눔의 집 부원장인 승연 스님은 그게 제일 아쉽다. 승연 스님은 할머니의 눈 속에 그 모습이라도 남겨놓으려는 듯 눈을 맞추고 한동안 그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동행, 그 아름다운 기록을 사진으로 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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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순 할머니에게 들리면서 나들이길이 눈물길이 되었지만 정해진 일정을 어쩔 수가 없어 곧 금산사로 향했다. 몸이 불편한 할머니들을 위해 금산사에선 절까지 버스가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김군자 할머니와 이옥선 할머니가 나란히 함께 절을 돌아본다. 함께 길을 간다는 것, 동행! 그 동행의 힘이란 얼마나 큰 것인가. 그 동행의 걸음이 둘만 되어도 벌써 두 사람에게선 힘이 솟고 따뜻한 온기가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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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의 길엔 할머니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길엔 또 함께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젊은이들이 있어 그 동행의 길은 힘과 패기를 얻는다. 이 날의 길엔 중앙대 사진학과 학생 두 명과 그들의 여자 친구들이 함께 해주었다. 또 장새론여름 학생을 빼놓을 수가 없다. 이날 중앙대 사진학과 3학년인 전제홍 학생은 김순옥 할머니의 손을 잡고 할머니의 젊은 연인이 되어 주었다. 할머니는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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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에선 따뜻한 방을 마련하여 할머니들이 잠시 쉴 수 있도록 해주었다. 박옥련 할머니와 문필기 할머니가 따뜻한 방에서 잠시간의 휴식을 즐기고 계시다. 김군자 할머니의 지팡이는 방안으로 들지는 못하고 문간에 기대어 휴식을 즐겼다. 금산사에선 다과도 함께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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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이날 길엔 동네분들과 후원자들, 그리고 젊은이들이 함께 해 주었다. 말을 잃어버린 한도순 할머니의 오늘은 슬펐지만 사람들의 동행으로 이날 길은 훈훈했다. 그렇게 오늘 하루 슬픔과 훈훈함이 교차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나눔의 집 홈페이지: www.nanum.org   
나눔의 집 후원 및 자원봉사 문의 전화: 031-768-0064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다. 블로그-->김동원의 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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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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