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 시절 호암지 연못에서 이젠 내 아이들이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그 시절 호암지 연못에서 이젠 내 아이들이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 조용민
육성회비를 집에서 가져가지 못한 날, 선생님의 얼굴과 아이들의 시선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학교를 간다고 나섰으나 내 발길은 학교로 향하지 않고 학교 옆에 자리한 호암지라는 연못으로 향했다.

걱정스런 마음이 앞섰지만 난 호암지로 향하던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그 시절 호암지에 나뭇가지에다 납과 바늘만 달아서 지렁이를 미끼로 돌 틈에 담그면 '꾸구리'라는 고기가 참으로 많이도 잡혔다.

고기를 잡다 심심하면 연못 위에 비친 흰 구름에 심술이 나서 연못 위에 물수제비도 떠보고, 풀밭에 누워 이리저리 뒹굴며 육성회비 내라던 선생님 얼굴을 생각하며 넘어지라고 풀도 엮어놨다. 그렇게 소일하며 학교 주위를 맴돌았다.

그러기를 하루, 이틀.

"학교 다녀왔습니다." 학교 끝날 시간에 맞춰 문을 밀치고 들어서는 나를 발견하신 어머니는 내 손을 끌고 뒤뜰로 가셨다. "너 요새 학교 간다고 하고는 학교 안 갔지? 담임선생님 왔다 가셨다."

올 것이 왔구나. 회초리를 드신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 앞에 선 내 마음은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있었다.

"너 육성회비 못 내서 학교 안 갔냐?"
"예! 다른 애들은 다 냈는데 나만 못 냈어요. 창피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회초리를 드셨던 아버지는 회초리를 방바닥에 내려놓고는 한숨을 쉬시며 등을 돌리셨다. 아버지의 등이 떨리고 있었다. "네게 무슨 잘못이 있겠냐. 돈 없는 부모 만난 게 죄지."

그 이튿날 나는 육성회비를 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한여름 내 유년의 태양은 지고 있었다.

아버지! 그때 그 육성회비 어떻게 마련하셨나요? 가끔씩 아버지 산소에 들러 지금이라도 이렇게 여쭤보면 아버지는 뭐라고 말씀하실까?

하늘엔 아버지의 마음을 닮은 흰 구름이 흐른다. 무척이나 아버지 모습이 그리운 날이다.

덧붙이는 글 | 싸이트 시골기차에도 같이 보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정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삶이 녹아있는 좋은 인터넷신문입니다 특히 사는이야기에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따뜻한 아내의 마음을 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