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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원장 김재인)은 정부부처와 지자체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성별영향평가 와 성인지력 향상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원장 김재인)은 정부부처와 지자체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성별영향평가 와 성인지력 향상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 우먼타임스
[주진 기자] 내년도 정부의 성인지 예산 대부분이 '엉터리 항목'으로 집계된 예산 부풀리기인 것으로 드러나 '속빈 강정'이라는 빈축을 사고 있다.

기획예산처가 각 부처의 성인지 예산을 취합하여 작성한 '2007년 성인지 예산' 자료에 따르면 내년 성인지 예산의 규모는 4조5천억원으로 이 가운데 여성가족부의 예산이 1/4인 약 1조1천억을 차지하고 있다. 각 부처의 여성정책 역시 156개 사업 중 여성가족부 사업이 85개로 절반을 훌쩍 넘었고, 각 부처가 여성정책으로 꼽은 사업은 고작 35개에 불과해 편중 현상이 극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큰 문제는 각 부처가 성인지 예산 항목으로 분류한 사업과 예산이 여성 관련 사업과는 동떨어져 있거나 남녀 통계 분리를 하지 않은 사업 예산 전액을 성인지 예산으로 포함시켰다는 점이다.

지난 9월, 국회는 예산 편성 시 여성과 남성의 성별 특성을 고려하도록 하는 '성인지 예산제도' 도입을 담은 국가재정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기획예산처는 2007년도 예산안 편성 지침에 성별영향평가 결과를 반영하고, 여성발전기본법에 의거한 여성정책을 포함시키라고 각 부처에 지시했다. 이러한 지침을 근거로 각 부처가 일정한 기준 없이 성별영향평가 대상 사업을 모두 성인지 예산으로 편성한 것이다.

국가보훈처의 경우 '보상금' 항목인 1500억원 전액을 성인지 예산에 포함시켰다. 단지 성별영향평가 대상 사업이었다는 이유에서다. 다른 부처들 역시 마찬가지다. 통일부는 새터민 정착 지원, 외교통상부는 한국국제협력단 출연금, 법무부는 직업훈련과 교정교화, 행정자치부는 정보화마을 조성 외 2건, 문화관광부는 여가문화 활성화 외 8건, 농림부는 후계 농업인 육성 외 4건, 보건복지부는 국가 암관리 정책 외 1건 등 성별영향평가 대상 사업을 성인지 예산 항목에 포함시켰다.

심혜영 기획예산처 노동여성재정과 사무관은 "각 부처가 성인지 예산 사업에 대한 자세한 설명 자료를 첨부하지 않아 기획예산처로서도 사업 내용을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각 부처 예산이 잘못 편성된 점도 있다"고 오류를 시인했다.

국회 예결위 소속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각 부처의 예산을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들조차 '성인지' 개념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 성인지 예산이라고 하면 여성 관련 예산인 줄 알고 있다"며 "이런 인식 때문에 정책의 기초자료가 되는 통계에서조차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 정부 각 부처에서 성별 분리 통계 작성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별 영향평가 부실 '엉터리 편성'... 부처마다 전담부서 없고 담당자도 극소수

성인지 예산이란?

예산 과정에 성인지적 관점을 통합하여 국가 정책의 양성평등 효과를 제고하고자 하는 것으로, 예산안 단계에서는 여성과 남성에게 미칠 영향을 검토하여 양성평등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예산을 결정하는 것을 뜻한다.

성인지 예산은 현재 세계 60여개 국에서 시행하고 있다. 호주의 경우 1984년부터 매년 성인지 예산보고서를 발행해 의회에 제출하고 있고, 2003년 이후 유럽연합 소속 국가들이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지난 9월말 정부가 발표한 2007년도 예산 238조5천억원 가운데 각 부처와 중앙행정기관의 성인지 예산은 4조1천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고작 1.7%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본지 확인 결과 이 예산의 대부분은 일정한 기준이 없는 불분명한 통계와 분류로 인해 크게 부풀려진 상태로, 성인지 예산 제도를 위한 분명한 기준과 체계적인 제도적 장치가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각 부처와 중앙행정기관은 성별영향평가를 고려한 사업과 여성발전기본법에 의거한 여성정책을 성인지 예산안에 편성하라는 기획예산처의 예산 지침에 따라 성인지 예산 항목을 작성해 보고했다.

기획예산처가 작성한 '2007년도 정부 부처 성인지 예산' 자료에 따르면 156개의 성인지 사업 중 여성가족부 정책이 85개이고, 나머지 71개가 각 부처에 산재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그 가운데 여성정책은 35개에 그쳤다.

특히 이들 여성정책의 대부분은 여성과는 상관없는 사업이거나 노인, 아동, 장애인,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사업이 포함되어 있다. 또 여성가족부의 예산 1조여원이 정부 성인지 예산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편중되어 있어 성인지 예산의 적절성과 타당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여성가족부 예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보육 예산이 과연 성인지 예산으로 분류될 수 있는지, 보육을 여성정책으로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한 예로 여성인력개발 지원, 여성 일자리 창출 지원 등은 노동부의 여성정책에 가깝기 때문에 노동부 예산에 편성되어야 적절하다"며 "여성가족부에 편중되어 있는 여성정책 가운데 각 부처에 적절한 사업은 일정한 기준에 따라 배분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 각 부처의 성인지 예산 편성이 엉터리인 것은 성인지 예산의 기초공사라고 할 수 있는 성별영향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2004년 10개의 시범 사업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3년째 지속되고 있는 성별영향평가 사업을 시행하는 기관은 전국 178개이며, 295개 과제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를 담당하는 여성가족부 직원은 단 1명뿐으로 단순 관리에 급급한 실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각 부처 내에 성별영향평가와 여성정책을 전담하는 부서가 부재하다는 것도 한 요인이다. 각 부처 여성정책 전담 부서는 손가락을 꼽을 정도.

보건복지부의 예산담당 관계자는 "여성가족부로 보육, 가족 업무를 모두 이관했기 때문에 부처 내에 별도로 여성정책팀을 두고 있지 않다"며 "성별영향평가 대상 사업 담당자가 아니면 잘 모른다"고 말했다.

윤현덕 여성가족부 정책기획평가팀 과장은 "각 부처에 여성정책 관련 예산을 취합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여성 담당 부서가 없거나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아 자료 취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 입법심의관은 "성인지적 예산은 예산 과정 전반에 대한 성인지적 통합을 요구하기 때문에 예·결산 작업에 관여하는 공무원들에게 일정 수준의 성인지력이 요구되지만, 아직은 인식이 부족한 편"이라며 공무원들에 대한 성인지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차 심의관은 "예산 편성 시 성인지적 예산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한다든지, 성인지적 성과지표를 개발하여 적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예산 편성에서부터 결산에 이르는 전 과정에 성인지적 예산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작동되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성인지 예산' 내 생각에는... "본래 취재 살리도록 제도 개선을"
김경희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2007년부터 정부의 예산제도에 큰 변화가 생긴다. 우선 정부의 예산제도가 프로그램 예산으로 바뀌며, 무엇보다 성인지 예산제도가 도입되어서 그 변화를 각별하게 느낀다.

기획예산처의 2007년도 예산안 편성지침에는 중앙행정기관에서 제2차 여성정책기본계획에 의거하여 실시하는 사업을 양성평등정책예산 사업으로 정의하면서 예산 DB 안에 양성평등정책예산 관리 항목을 만들었고, 2004년과 2005년도에 시행한 성별영향평가 사업 예산에 대해서도 별도의 관리 항목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 막 도입된 성인지 예산제도는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 좀 더 세밀한 정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프로그램 예산제도가 도입되기 전인 2006년 중앙행정기관(여성가족부 제외)의 양성평등정책예산 사업 현황을 보면 노동부, 교육인적자원부, 행정자치부, 농림부 등 여성정책 담당부서를 두고 있는 기관에서는 양성평등정책예산 사업이 세항이나 세세항으로 책정되어 있고, 예산도 전년도에 비해 증가하는 추이를 보인다.

특허청이나 중소기업청, 농촌진흥청에서도 양성평등을 위한 사업에 지속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그 외의 기관에도 양성평등 정책 예산 사업이 있으나, 세세항의 일부 내역으로 설정된 사업들이 많았고, 예산 규모도 적다.

프로그램 예산제도로 바뀐 2007년 예산안을 보면, 양성평등정책예산 사업이 프로그램 수준으로 설정된 곳은 노동부, 단위 사업 수준은 교육인적자원부, 청소년위원회, 보건복지부이며, 세부 사업 수준으로 설정된 곳은 앞의 부처들과 중소기업청, 특허청, 농림부, 행정자치부 정도이다.

2006년까지 실시되었던 나머지 부처의 양성평등정책예산 사업은 지난 10월에 국회에 제출된 중앙행정기관의 세입세출 예산안 사항별 설명서에 명시되지 않아 예산이 어떻게 편성되었는지 알기가 어렵다. 상당수의 양성평등 정책 사업들이 예산 편성의 기본 단위인 세부 사업보다 더 깊숙한 곳에 부분적인 내역으로 숨어 있을 것이다.

2007년 기획예산처의 예산안 편성지침의 예산 DB는 세부 사업을 최소 단위로 하여 예산 관리를 하기 때문에 양성평등 정책 예산이 왜곡될 소지가 있다.

양성평등정책 예산 사업이 세부 사업 안의 일부 내역으로 포함될 때, DB 관리 항목에는 양성평등정책 예산만이 아니라 그것을 포함하고 있는 세부 사업 전체의 예산이 기록된다. 그래서 실제로는 양성평등정책 사업이 주변화됨에도 불구하고, 양성평등정책 예산은 실제보다 부풀려지게 된다.

중앙행정기관에서 실시한 성별영향평가 사업은 2004년에 7개, 2005년에 51개로 총 58개인데, 이 가운데 2007년 예산안에 성별영향평가 사업으로 표시된 것은 29개 사업(기금사업은 제외)이다.

결국 2005년까지 실시한 성별영향평가 사업 중에서 과제 선정이 적절하지 못하거나 2007년에 사업이 없어진 경우(4개)를 포함하여 절반 정도의 사업이 성별영향을 고려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또한 성별영향평가 사업의 예산안이 과연 성별영향평가 결과를 반영하여 편성되었는지도 의문이다.

여성정책이 주변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파급력이 크지 않은 정책들이 선택되어 성별영향평가가 수행되고 있기 때문에, 양성평등정책 예산 여부와 성별영향평가 사업 예산 여부를 식별하는 정도의 예산 DB 관리 항목으로는 성인지 예산제도의 본래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 따라서 보다 내실 있는 성인지 예산제도 개선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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