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바구니에 따서 넣기
바구니에 따서 넣기 ⓒ 조광선
"올해는 마지막 사과농사니 조서방도 사과 딸 때 내려오게나."

지난 여름휴가 처가를 방문했을 때 장모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우리 가족 늦가을 여행을 대신하는 중대 일정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잘됐네! 11월 둘째 주 대구에서 홍균이 작은아버님 아들 결혼식이 있네!"

집사람이 달력을 보더니 소리쳤습니다.

"그래 그럼 11월 둘째 주에 온 가족이 내려갑시다."

제 말에 집사람은 싱글벙글합니다. 사실, 경기도 수원에서 경북 영천이 가까운 거리는 아니기 때문에 내려가려면 경비며 시간이 부담이 가기 때문이지요.

장인어른은 군 장교출신입니다. 월남을 다녀오신 후 중령으로 예편하신 후 기업체에서 근무해 오시다, 15년 전 퇴직하신 후 농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지금의 영천 과수원에 거처가 마련 되기 전 장인어른은 울산에서 차를 몰고 출퇴근을 해가며 농사를 지으셨습니다. 그러시다가 1997년 과수원에 조립식 주택을 지어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 지금까지 줄곧 사과와 복숭아, 포도 농사를 지어 오고 계셨습니다.

즐거운 새참 시간
즐거운 새참 시간 ⓒ 조광선
그러던 3년 전 위암수술을 하시고 기력이 이제 떨어지셔서 농사는 장모님 혼자 지어 오고 계셨죠 장모님 혼자 5000평의 농사를 혼자 지신다는 게 정말 힘이 드시죠 그래도 3년을 혼자 해오셨는데 올해는 정말 마지막 농사라고 생각하니까 무척 서운하신 모양입니다.

저희 집사람과 저는 물론이고 저희 과일을 사먹으셨던 분들도 너무 서운해 하십니다. 그중에서도 사과는 "그 사과 먹다가 다른 사과 못 먹어!" 할 정도로 칭찬이 대단했습니다. 생긴 것은 시퍼러 둥둥 해보여도 당도며, 과질이 입맛 당기게 했기 때문입니다. 장인어른 사과는 판로는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입에서 입으로 소문을 타고 전국 각지로 택배 배송이 됩니다.

제가 여름휴가 차 내려갈 때는 항상 복숭아가 먹음직스럽게 열리는 계절이었고, 포도는 아직 약간 덜 익은 상태였습니다. 해마다 내려가면 복숭아도 따드리고 선별작업도 해드리고 했지만 사과는 한 번도 따드렸던 적이 없습니다.

결혼식을 마친 후 결혼식에 온 일가 친척들과 함께 장인어른댁에 가서 간식을 먹고 모두다 사과 따기에 돌입했습니다. 먼저 장모님의 사과따기 교육이 있었는데, 사과도 아무렇게나 따면 안 되는 것이더군요.

사과 꼭지 따기(사과 꼭지를 그 상태로 두면 상자에 담을 때 찍히게 됩니다)
사과 꼭지 따기(사과 꼭지를 그 상태로 두면 상자에 담을 때 찍히게 됩니다) ⓒ 조광선
"사과가 찍히지 않게 사과를 검지와 중지로 위를 감싸 쥐고 위로 치켜들면 그대로 꼭지가 붙은 채로 떨어져야 한데이. 그리고 세게 잡지 말고 살살 잡아라, 사과 멍든 데이."

교육을 받고 이모, 이모부, 처남 등 13명이 달라붙어 사과를 따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사과 농사이니만큼 따는 사과도 꽤 의미가 있었습니다. 사과를 다치지 않게 바구니에 담아서 과수원 중앙에 있는 길가에 쌓아놓기 시작했습니다. 두 시간 지나니 인원이 많아 제법 사과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쌓여진 사과를 보니 정말 아름답고 먹음직 스러웠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참'이 있습니다. 식사와 식사 사이에 먹는 '새참'. 새참으로 떡, 생선전 등이 나왔습니다. 거기에 술 먹는 사람들은 포도주와 소주를 한 잔씩 하고 새참을 나누면서 오고 가는 만담들 또한 일품입니다.

쌓아놓은 사과
쌓아놓은 사과 ⓒ 조광선
오후 3시쯤 되니 이제 올라갈 채비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일을 그만두어야 할 시간입니다. 수원까지 가려면 부지런히 또 가야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처음에는 몇 바구니를 재미있다고 따다가 어느새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얼마나 땄어요, 어머니?"하고 장모님께 물었더니, "한 25% 딴것 같구먼"하고 답하십니다. 약간의 흠이 있는 사과를 갈아 먹고, 깎아 먹고 하라고 차에 몇 바구니 담아 실어 주십니다. 그리 오래 장인어른댁 사과를 먹어봤지만, 저희도 온전한 사과는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온전한 사과는 상품으로 시장에 내야 하기 때문이지요.

과수원을 뒤로하고 올라가는 우리들의 마음은 나머지 사과를 따드리고 가지 못하는 맘이 서운하기만 합니다. 두 분이 남은 사과를 따실 생각을 하니 말입니다. 그리고 내년에는 이 사과를 못 보고, 못 먹는다고 생각하니 서운함은 더욱더 밀려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