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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좋아하시는 어머니
자연을 좋아하시는 어머니 ⓒ 나관호
저녁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늘어선 가로수를 보고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저 나무 많이 자랐네.”

우리 모두는 웃었다. 나무만 보시면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그것이 잘못됐다 말하기보다 그냥 추임새처럼 장단을 넣어드리고 그 순간 어머니가 즐기시도록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해 엉켜버린 순간도 유머로 보낸다. 매제가 신나서 어머니를 보고 더 큰 소리로 웃는다.

“장모님! 장모님이 다 심으신 거지요. 작년보다 더 컸지요?”
“암, 그렇고 말고. 내가 심었는데 아유 힘들었어.”
“장모님이 심으셔서 그런지 빨리 자라네요.”

나도 끼어들었다.

“어머니! 나무를 보니 기분 좋으세요.”
“그럼. 나는 나무가 좋아. 키도 크고.”

차 안은 웃음이 넘쳤고 나는 창문을 열고 강한 바람냄새를 맡았다. 제주도의 바람은 싸늘함과 시원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듯했다. 어머니가 머리카락이 날리자 머리를 감싸신다.

“어머니 추우세요?”
“아니야. 머리가 날리잖아. 아까 머리 빗었는데.”
“창문 닫을까요?”
“아냐, 나 더워. 시원해서 좋아.”

그러면서 어머니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신다. 찬송가다. 기분이 좋고 신이 나신 모양이다. 틀리는 음이지만 그래도 줄기차게 부르신다. 바람소리에 작아진 어머니의 목소리를 돕기 위해 같이 합창을 했다. 매제가 다음 곡도 부르시라고 재촉한다.

“장모님! 노래 하나 더 부르세요?”
“나, 잘 못하는데. 다 잊어버렸어.”
“방금 잘 하셨잖아요. 잘 하실 거예요.”

곰돌이와 다정하게
곰돌이와 다정하게 ⓒ 나관호
어머니가 다시 노래를 하신다. 우리는 키득거리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거절하시면서도 노래하시는 분이 어머니시다. 어머니는 젊은 날 노래를 곧잘 부르셨다. 아버지는 음치셨지만. 어머니의 가락이 구성지다. 높은 음에서 노랫소리가 멈추자 웃으며 말씀하신다.

“내가 잘 했는데. 오늘은 안 되네.”

차 안은 또 웃음바다가 되었다. 숙소 가까이 도착할 즈음 매제가 도넛 가게 앞에 차를 세워달라고 했다.

“형님, 잠깐만 차 좀 세워주세요.”
“무슨 일이야?”

매제는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도넛 한 상자를 사왔다. 어머니는 한 자리에서 보통 도넛 5개를 드신다. 도넛은 언제나 매제의 사랑선물이다. 서울에서도 일부러 시내에 나가서 어머니를 위해 ‘크리스피크림’ 즉석 도넛을 줄섰다가 사오는 사위다.

어머니는 식사를 많이 하셔도 도넛은 더 드신다. 어머니만의 도넛 파티는 그날 밤 계속 되었다.

“맛있네. 맜있어.”
“그렇게 맛있으세요?”
“그럼, 난 빵이 제일 좋아.”

나이든 어머니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드시게 하자는 것이 우리 가족 소망사항이다. 물론 매제가 만든 규율이기도 하다. 앞으로 사실 날이 많이 남지 않은 어머니에게 드리는 팁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어머니는 도넛 3개를 더 드셨다. 그리고 늦은 밤까지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머니의 잠자기 사인이 올 때까지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어머니와 도넛에 대해 얽힌 이야기가 있다. 작년 여름 어머니가 인공 고관절 수술을 하시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매제의 정형외과 의사 친구가 어머니가 수술 후 겨울을 넘기지 못하실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동생을 통해 몇 달 전에 들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1년 넘도록 건강하게 지내신다. 하늘에 감사한다.

그때 매제는 돌아가신 자신의 할머니를 떠올렸다고 한다. 병드셨던 할머니에게 의사와 식구들이 음식을 제한하는 것을 보고 매제가 몰래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것들을 제공했다고 한다. 이유는 몇십 년 더 살 것이 아니라면 지금 드시고 싶으신 것 드시게 하는 것이 낫다고 어린 마음에 생각했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매제에게 장모님이면서도 할머니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매제는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것이라면 할머니 생각해 드시고 싶은 대로 드시게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여동생을 통해 그 말을 듣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참 고마웠다.

매제의 사랑선물 도넛
매제의 사랑선물 도넛 ⓒ 나관호
어느 날 동생네 집에 어머니가 계실 때 도넛을 드렸더니 한 자리에서 다섯 개의 도넛을 드시는 것을 보고 여동생과 매제가 놀랐던 모양이다. 지난 일요일에도 매제는 저녁에 시내에 나가 어머니를 위해 도넛 네 상자를 사 가지고 왔다. 나도 놀랐다. 내 차에 도넛을 싣고 집으로 가면서 마음이 찡했다.

제주도 숙소에서 이야기꽃이 질 무렵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난 빵이 좋아. 아까 먹은 것 너무 맛있어.”
“내일 또 드릴게요. 이제 주무세요.”
“난 밥보다 빵이 좋아. 호호호.”
“그래도 식사하셔야 해요. 빵만 드시면 안좋아요. 밥도 드시고 빵도 드세요.”
“알았어.”

어머니와 도넛은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매제의 장모님 사랑표현은 도넛이니까.

덧붙이는 글 | 나관호 기자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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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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