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영업전문직들을 무더기로 해고 조치해 말썽을 빚고 있는 삼성그룹 계열사인 경비 전문 업체 (주)에스원(대표 이우희)이 해고자들을 조직적으로 감시·회유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함께 '해고자가 에스원 직원이 운전한 회사 차량에 다친 사고'에 대해 해고자들이 '뺑소니' 교통사고 의혹을 제기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에스원 영업전문직 해고자 모임인 '전국 삼성에스원 세콤 영업전문직 노동자연대'(위원장 김오근, 아래 노동자연대)는 최근 에스원이 지난 8월 8~9일 영업전문직들을 해고한 뒤 이에 반발하는 해고자들을 조직적으로 감시·회유했다며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이 자료에는 에스원이 영업전문직들을 집단 해고한 경위를 비롯해 일부 에스원 직원들이 해고자들의 동향을 감시하고 회유한 내용의 메모 노트와 사진 등 정황 증거들이 담겨 있다.
에스원 영업전문직들은 회사와 위탁계약을 맺고 무인경비시스템인 '세콤'을 판매하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다. 에스원은 지난 2002년 영업전문직 제도를 도입했고, 여기에는 많게는 4년 이상 일한 노동자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은 에스원이 경찰의 유권해석을 근거로 갑자기 고용계약을 해지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노동자연대는 사원번호를 근거로 전체 해고자 수가 17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관련 기사 참조)
이에 대해 에스원 측은 "계약해지 내용증명을 보낸 인원은 560여명"이라며 "현행 경비업법에 영업전문직과 위탁계약에 대한 위법성 규정은 없지만, 감독기관의 유권해석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경찰 유권해석 나오자 집단해고
앞서 경찰청은 지난 7월 '익명의 민원인'(경찰 주장)에게 경비업체의 영업위탁계약 등과 관련한 질의를 받고 '영업전문직과 업무위탁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경비업법상 불가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뒤 각 경비업체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자연대 관계자는 "회사 측은 '계약해지 신청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하고, 이에 불응하는 사람들에게는 내용증명을 통해 계약해지를 통보했다"면서 "고용계약서에 명시된 '최소한 1개월의 계약해지 예고 기간'조차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에스원 측은 "계약해지는 경찰의 유권해석이 내려져 불가피하게 긴급하게 취해진 조치"라며 계약해지 예고 기간에 관한 고용계약서의 조항을 지키지 않았음을 사실상 인정했다.
해고자들은 '에스원이 경찰의 유권해석을 근거로 영업전문직들을 갑자기 해고한 것은 부당하다'고 반발하며 노동자연대를 결성해 9월부터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와 관련, 노동자연대는 최근 복직투쟁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자 에스원 측에서 해고자들의 동향을 감시하거나 해고자들을 회유한 정황 증거가 담긴 자료를 공개했다.
지난 9월 13일 서울 탑골공원 집회 당시 에스원의 일부 직원이 현장을 감시하고 집회 상황을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하다 발각돼 비디오카메라 필름을 압수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자연대 관계자는 "9월 21일 서울역 집회 때는 망원경으로 감시·촬영하던 이아무개씨를 붙잡아 신분을 확인한 결과 에스원 경인본부 간부로 밝혀졌다"며 "그의 메모 노트에는 감시·회유 대상자 명단 등이 기록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노동자연대가 촬영한 메모 노트에는 해고자들의 명단과 동향, 회사의 대응방침 등이 적혀 있었다. 9월 18일자 메모에는 삼성 본관 건너편인 하나은행 남대문지점 앞에서 진행된 노동자연대 집회와 관련해 참가자들로 보이는 명단과 외부 참가 인원 수 등이 기록돼 있었다.
이 가운데는 삼성SDI 해고노동자 김갑수씨와 이마트 수지점 계산원 노조위원장 최옥화씨의 이름도 눈에 띄었다. 9월 21일 노동자연대의 서울역 집회 당일에는 이동시각과 일부 해고자들의 명단, 인원 숫자(24+방○○ "25명") 등이 적혀 있엇다.
이 밖에도 회유자 관리, 법적 조치 진행상황, 회사 임원과 협의 아래 감시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내용들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이 노트에는 노동자연대의 9월 20, 21일 서울역 집회에 대해 '보여주기 위한 집회였을 경우가 많다'고 평가하고 '확실한 처리가 중요', '빼놓은 인원 철저하게 관리' 등의 문구가 메모돼 있었다.
"상무님"이라고 쓴 부분에는 '1인 시위자 내용증명 보낸 인원 14명 중 4명이 나갔고, 내용증명 보낸 후 검찰고발 예정', '개별 면담을 통해 금액결정', '변호사-경찰청 유권해석이 잘못됐다', '추석 이후 조치예정', '경남 서○○ 빠질 예정', '민사' 등의 내용이 쓰여 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변호사-경찰청 유권해석이 잘못됐다'는 메모 내용. 이에 대해 노동자연대는 회사 측이 변호사 자문을 통해 경찰 유권해석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해고자들을 감시·회유했음을 보여주는 정황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의 메모 노트를 작성한 이아무개씨는 16일 통화에서 "회사 측의 지시에 따라 경인본부 해고자들의 집회 참석 상황 등을 기록했다"면서 "그러나 9월 21일 노동자연대 측에 메모 노트를 빼앗겨 자세한 메모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자가 메모 노트의 '상무님'이라고 쓴 부분에 적힌 메모 내용들을 설명하자 이씨는 "본사 상무님과 지역본부 간부들 회의에서 나온 얘기를 받아 적은 것"이라고 말해 해고자들에 대한 감시와 회유, 법적 조치들이 회사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또한 노동자연대는 메모 노트에 적힌 법적 조치 계획 등이 실행됐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에스원은 추석 직후인 10월 12일 노동자연대 회원들을 상대로 '강제해고' 등의 문구를 사용하면 1회당 100만원을 회사 측에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의 '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최근엔 해고자 10여명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발과 함께 1인당 2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노동자연대는 최근 회원 일부가 탈퇴한 것도 회사의 조직적인 '회유작전'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노동자연대 측은 "일부 에스원 직원들이 회원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해 인신공격과 협박을 하고, 부인 혼자만 있는 회원 집에 찾아가 몇 시간씩 머물다 돌아갔으며, 술에 취한 일부 간부는 노동자연대 사무실에 찾아와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에스원 홍보팀 관계자는 "우리 회사와 관련된 집회 현장에 직원들이 관심을 보이며 지켜보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해석하는 입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노동자연대의 주장엔 무리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해고자, 에스원 차량에 다쳐... "감시 여부 확인하려 하자 급출발"
또한 해고자 1명이 에스원 직원이 운전한 회사 차량에 다치는 사고도 발생했다. 이에 대해 노동자연대는 에스원 직원의 '뺑소니 교통사고'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노동자연대에 따르면 지난 9월 26일 저녁 8시 20분쯤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매산리 ○○부대 입구 맞은편 버스정류장 앞에서 서울 번호판을 단 검은색 SM520 승용차가 노동자연대 회원인 백아무개(32·성남시 신흥동)씨를 치고 달아났다는 것.
이 사고로 백씨는 오른쪽 발등과 팔·허리 등에 전치 3주의 부상을 입고 성남 J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다. 현재 경기도 광주경찰서는 이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
노동자연대는 "확인 결과 문제의 사고 차량은 에스원 소유로 돼 있었으며, 운전자는 에스원 본사 경영지원실 직원인 백아무개씨로 밝혀졌다"면서 "그러나 에스원 측은 오히려 피해자에게 뺑소니 고소 취하를 요구하며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백씨는 "검은색 승용차가 용인시 모현면에 있는 노동자연대 사무실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을 보고 감시차량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사고 지점에 정차해 있던 승용차의 오른쪽 앞 유리창을 들여다보려는 순간 차량이 급출발했다"고 밝히고 "이 때문에 사고차량 오른쪽 앞바퀴가 오른쪽 발등 부위를 치고 지나가 다쳤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고 차량이 광주 방면으로 도주해 현장에 함께 갔던 동료와 승용차로 추적했으나 놓쳤다"고 말하고 "뺑소니 차량으로 112에 신고한 뒤 광주 오포파출소에서 차적 조회를 한 결과 차량 주소지가 서울 역삼동 에스원 강남본부로 나왔다"고 밝혔다.
처음 뺑소니 교통사고 신고를 받은 광주경찰서 오포파출소 관계자는 "당시 사건처리 기록을 확인한 결과 뺑소니 신고가 접수돼 피해자 진술을 받은 뒤 본서로 이첩한 것으로 돼 있다"면서 "차적 조회 결과도 에스원 소속 차량으로 나온 게 맞다"고 확인해줬다.
백씨와 사고 현장에 함께 있던 김아무개(36)씨는 "사고 후 에스원 강남본부 관계자를 찾아가 확인한 결과 차량 주소지는 강남본부로 돼 있으나 차량은 본사 인사과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이는 노동자연대 감시 차량임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에스원 홍보실 관계자는 "검은색 SM5 차량과 운전자가 회사 소속인 것은 맞다"고 인정하면서도 "사고 당시 상황은 노동자연대 주장과 다른 부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 측 반박 "2~3명이 위협... 위기 모면하려 차량 급히 출발"
이 관계자는 "운전자가 사고지점에서 선배를 기다리고 있는데, 백씨 등 2~3명이 나타나 차를 발로 차는 등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위기를 모면하려고 급히 차량을 출발시킨 것으로 알고 있다"며 "뺑소니 사고는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피해자 백씨와 사고 현장에 함께 있던 김씨는 "터무니없는 억지주장"이라며 "차량과 운전자가 확인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차량을 발로 차고 위협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경찰 조사 때도 사고 차량은 멀쩡했으며, 사고 운전자는 현장조사 과정에서 사고지점을 찾지 못하거나 사고현장에 없던 조아무개씨를 지목하는 등 횡설수설했다"면서 "에스원 측이 '덮어씌우기 조작'을 시도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백씨는 또 "에스원 경원본부 인사팀 간부가 병원에 찾아와 '사고에 대한 뺑소니 혐의 관련 고소를 취하하지 않으면 회사에서 특수폭행 및 무고죄로 고소할 방침'이라고 말한 뒤 돌아갔다"며 "그러나 진실을 밝혀야 하기 때문에 고소를 취하할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백씨는 병원에서 퇴원한 뒤 지난달 31일 개인 사정을 이유로 노동자연대를 탈퇴한 상태다.
경찰은 이처럼 양쪽의 주장이 엇갈리는 것은 어느 한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 검찰의 지휘를 받아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광주경찰서 교통사고 조사팀 관계자는 "양측의 주장에 서로 다른 부분이 있어 현재 거짓말 탐지기 조사 절차를 밟아놓고 있다"고 말하고 "대기자가 많아 조사 결과는 1~2개월 후에나 나올 것 같다"고 밝혔다.
한편 '뺑소니' 교통사고 혐의를 받고 있는 에스원 직원인 백아무개씨에게 사고경위 등에 대한 설명을 직접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백씨와 전화통화를 주선했던 에스원 홍보실 관계자는 "백씨가 교통사고와 관련해 경찰에서 진술한 것 외에는 누구와도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