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슨새미오름 정상에서 본 안돌오름과 밧돌오름은 마치 형제처럼 누워있었다. 누가 형인지 아우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들은 표고가 높은 안돌오름(368.1m)을 밧돌오름(352.8m)의 형이라 불렀다.
목장을 가로질러 안돌오름 중턱에 이르자, 소들이 오름 능선으로 나들이를 간다. 안돌오름은 마소의 놀이터였다. 누렁이들이 줄을 지어 오름 정상까지 올라가 있다. 흘러가는 뭉게구름을 잡아보려는 것일까?
표고 368m로 향하는 등산로를 걷는 건 마치 계단을 오르는 것 같았다. 이는 지형학적으로 토양이 느린 속도로 아래로 움직이면서 토양포행 현상(soil creep, 암반층에 연약지층이 형성된 경우 표토는 단단하지만 연약지층은 암반 경사에 따라 이동하는 현상)을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안돌오름은 온통 풀밭이지만 마치 계단을 밟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오름 중턱에 심심하게 서 있는 도토리나무에서 '툭' 도토리가 떨어진다. 화들짝 놀랐다. 도토리를 줍는 내 모습을 보고, 뒤따르던 친구는 동물의 먹이로 남겨 두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한다. 도토리 몇 알을 탐낸 내 의식이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오름길에서 만나는 생태계는 늘 내게 존재의 이유를 느끼게 한다. 마소의 분비물을 흡수하며 살아가는 야생화, 죽은 나무에 뿌리를 내리고 생명이 싹트는 버섯, 키 큰 나무 아래 토양과 습도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키 작은 나무들. 이처럼 오름 속 생물들은 각양각색으로 살아가지만 그곳 생태계엔 질서가 있다.
생태계의 보물창고
안돌오름 분화구는 바라보는 곳마다 그 모양새가 다르다. 거슨새미오름에서 본 안돌오름 분화구는 원형분화구였다. 하지만 정상에 올라서 보면 안돌오름은 북쪽으로 향한 말굽형분화구다. 특히 분화구는 계곡처럼 패어 있어 협곡을 이뤘다. 위엄 있는 자태가 '밧돌오름의 형'처럼 의젓하다고나 할까.
그 분화구 안에서 떼죽나무, 쥐똥나무, 예덕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뤘다. 더욱이 이 협곡단면에는,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진지동굴 4개가 숨어 있다. 제주의 오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굴이다. 진지동굴 주변에선 온갖 습지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삼나무 숲에 가려진 돌담
안돌오름과 밧돌오름 경계선엔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삼나무가 일렬로 심어져 있다. 삼나무 아래에는 조선시대에 쌓았다는 돌담이 남아 있다. 하지만 삼나무 숲에 가려 구분할 수 없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 돌담은 조선시대 국영목장을 경영키 위한 경계선으로 사용한 하잣성의 흔적이다. 이렇듯 제주 오름은 나무 하나에도 의미가 있고 돌담도 당시의 생활상을 재조명한다.
능선에선 강아지풀이 가을을 연출했다. 중턱에 피어나는 야생화, 능선에 우거진 잡초, 분화구 속에 서식하는 나무들. 분별없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 같지만 각자 알맞은 토양과 습도에서 서식한다.
표고가 높을수록 오르막길 뿐 아니라 내리막길도 험하다. 안돌오름에서 밧돌오름으로 향하는 내리막길 역시 경사가 심했다. 그러나 밧돌오름으로 가는 언덕에는 가을꽃들이 지천을 이뤘다.
거친 땅에 뿌리를 내리고 피어나는 쑥부쟁이, 다람쥐를 기다리는 도토리는 안돌오름의 가을지킴이였다.
| | 안돌오름 | | | |
안돌오름은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산 68-2번지에 있다. 표고 368.1m, 비고 93m, 둘레 2093m이며 말굽형분화구가 있다. 정상부에 돌이 많아 돌오름이라 불리며, 옆에 있는 밧돌오름과 쌍둥이오름 모양이다. 협곡을 이룬 분화구에 동굴이 있다. | | | | |
덧붙이는 글 | ☞안돌오름 가는 길은 제주시-동부관광도로(번영로)- 대천동사거리(2.3km)- 송당 목장- 왼쪽 900m이다. 정상까지 오르는 데 20분 정도 걸리며, 화구를 따라 걷는 데도 20분 정도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