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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수험생들이여!
자! 자연으로 가자. 지리산도 좋고 한라산도 좋고 정동진 바닷가 철로 옆 작은 소나무 밑도 좋다. 가서 자유로워지자. 나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학교로부터 자유로워지자. 작은 골짜기 물 에 잠시 손을 적셔보자. 내 의식을 담가 보자. 분명 느낌이 있을 것이다. 바로 자연이 나를 느끼게 만들 것이다. 삶의 본질적인 의미를 느낄 수 있다. 바로 진정한 나를 느낄 수 있다. 그곳에서 진정한 ‘나’를 찾을 수가 있다. 아름답든 고요하든 자연이 주는 느낌이 바로 우리의 의식이 되어야 한다. 그 의식이 우리의 나머지 삶을 더욱 자유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고3 수험생들이여!
자유에게로 여행을 가자. 나에게로의 여행을 가자. 억눌려왔던 자아를 찾아서 가자. 기차도 좋고 자전거도 좋고 버스도 좋다. 조금은 멀리 가자. 물을 건너도 좋고 바다를 건너도 좋고 산을 넘어도 좋다. 나를 찾아가는 길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책 속에서 찾은 ‘나’와 자연 속에서 찾는 ‘나’는 다를 수가 있다. 어느 것이 진정한 ‘나’인가는 나만이 결정할 수가 있다.
완행열차를 타고 밤을 거칠게 가로질러 가는 여행을 하고 나면, 삶의 거친 터널을 뚫고 지나온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검은 바다에 던져놓은 작은 소주잔 속에 내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을 수도 있다. 쓴 소주의 끝 맛에 바로 내 삶의 진정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밤과 낮이 만나는 여명 속에 바로 우리의 희망이 있다.
긴긴 밤의 여행을 해본 사람은 새벽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다. 인생의 긴 밤으로부터의 여행이 바로 지금까지 너희들의 생활이었다. 야행성 생활에 익숙해진 생활의 연속이었다. 이제 새벽이 주는 느낌을 시작으로 낮으로의 여행을 해야 한다. 강렬한 태양이 주는 느낌을 온몸으로 받아 느껴야 한다. 특히 자연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낮은 어색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밤이 아니라 낮 속에 있다.
너희들이 수능시험을 보던 날 지리산 천왕봉엘 갔다.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오르고 싶었다.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깨끗한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리고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고 싶었다. 찬란하게 떠오르는 주황색 해를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정말 뜨거웠다. 아니 가슴이 벅찼다. 떠오르는 해의 빛은 달콤했다. 그리고 기원했다. 이제 시험을 보려는 너희들의 가슴에 평화와 고요가 함께하길. 그래서 너희들이 아는 모든 것을 발휘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천왕봉은 변함이 없었다. 25년 전 천왕봉은 땀을 비 오듯 흘렸지만, 오늘 천왕봉은 하얀 상고대를 뒤집어쓰고 잔뜩 움츠리고 있었다. 움츠린 천왕봉은 억센 바람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그 바람에 상고대가 날려 비수처럼 우리의 얼굴을 때렸다. 그러나 차갑지도 싫지도 않았다. 바로 1915m의 천왕봉은 변함없이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속으로만 삭이고 삭여왔던 민족의 한이 하얗게 드러나고 있었다.
고3 수험생들이여!
이제 너희들 차례다. 너희들이 천왕봉을 달래줄 차례다. 가벼운 배낭 하나 메고 등산화 질끈 매고 너희들이 올라갈 차례다. 외로운 천왕봉은 너희의 젊은 정기에 굶주려 있다. 하얀 눈을 누더기처럼 입고 있는 천왕봉이 너희들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민족의 어머니 같은 지리산의 품을 엄청 깊고 따스하다. 포근하다. 낙엽을 밟으며 거니는 산들의 골짜기들이 품고 있는 메아리가 금방이라도 울릴 것처럼 긴장감이 감돈다. 바로 그 메아리 속에 우리의 자아가 잠들어 있다.
그 자아를 찾기 위해 너희들은 떠나야 한다. 춥고 배고프더라도 내가 찾은 자아는 너희들 미래의 달콤한 먹거리가 된다. 평생 우리의 마음과 몸을 채워줄 먹거리다. 지금 찾지 못하면 우리는 평생 배고픈 의식의 미아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내 속의 자아가 나를 이끌어가게 만들어야 한다. 내가 자아를 이끌어갈 수는 없다. 그래서 너희가 지금 자아를 찾아야하는 것이다.
고3 수험생들이여!
지금까지 견디어온 자네들이 자랑스럽다. 이젠 수능시험이라는 인생의 시험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방종이 아닌 진정한 자유를 찾아 떠나야 한다. 어른들의 퇴폐한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 일탈의 여행은 별 의미가 없다. 어른들의 의식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자연으로 여행을 떠나야 한다. 작은 시집하나 아니면 소설책하나 배낭에 넣고 여행을 떠나자. 그 여행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내자.
덧붙이는 글 | 노태영기자는 남성고 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