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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은 가거라! 의자에 올라가서 춤을 추고 있는 고3 수험생들과 아이들
수능은 가거라! 의자에 올라가서 춤을 추고 있는 고3 수험생들과 아이들 ⓒ 최종수
인생에서 출생과 죽음만 시험이 없을 뿐 시험의 연속이다.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삶이든 다른 사람보다 높아지려는 경쟁이든 시험은 불가피한 관문이다. 시험은 세상을 살아가는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난 학력고사 세대다. 정규중학교 대신 고등공민학교에 진학했다. 고입검정고시에 떨어지고 중학교 졸업 후 슈퍼마켓에서 점원생활을 해야만 했다. 틈틈이 공부해서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3년 동안 통학을 하며 고등학교를 다녔다.

학력고사를 보았지만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해 대학진학을 포기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방위를 제대하고 신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다시 학력고사 준비해야 했다. 새벽 5시부터 밤 12시까지부터 학원과 기숙사를 오가는 재수생활. 새벽별을 보며 학원에 가서 자리를 잡아야 했고, 밤에는 다른 학원으로 단과를 들으러 가야 했으니 지금의 고3 수험생들과 똑같은 생활이었다.

오늘은 수능시험, 전날 밤 10시 경에 고3 수험생 아이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잠을 잘 자야 시험을 잘 볼 수 있으니까 꿀잠을 잘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아침 7시, ‘열심히 했으니 시험 잘 볼 수 있을 거야. 파이팅!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할게. 저녁에 기쁘게 만나자. 한턱 쏠게!’ 격려의 문자를 다시 보냈다.

봉고차에서도 즐거운 오늘의 주인공 은별과 소리, 먹는 모습도 예쁜 소영
봉고차에서도 즐거운 오늘의 주인공 은별과 소리, 먹는 모습도 예쁜 소영 ⓒ 최종수
저녁 미사를 마치고 봉고차에 올랐다. 수능을 마친 두 아이와 중고 아이들과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레스트 호프에 갔다. 청소년들의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바자회가 열리고 있었다. 15명의 아이들이 한 곳에 앉을 자리가 좀처럼 나지 않았다. 두 번 자리를 옮겨서 한 자리에 앉게 되었다. 오징어 덮밥과 돈가스, 훈제 닭과 오징어, 순대와 제육볶음에 맥주까지 주문을 했다. 재잘거리며 먹는 모습도 사랑스럽다. 수능을 마친 두 아이에게 맥주 한 잔씩 따라 주고 건배를 올렸다.

“너무 홀가분해요. 주사위는 던져졌으니까 결과를 기다려야지요. ‘좀 더 열심히’라는 말을 오늘 시험장에서 느꼈어요.” “맞을 매를 맞은 기분이라기보다는 앓던 이를 뺀 기분입니다. 이제 그동안 읽지 못한 책을 좀 읽어야 겠어요. 저 때문에 마음고생 많이 하신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할 계획이에요.”

머리에 하트를 그린 아이들의 모습도 사랑스럽다.
머리에 하트를 그린 아이들의 모습도 사랑스럽다. ⓒ 최종수
기특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시는 맥주는 아이들의 날아갈 듯한 기분을 그대로 전해 주었다. 그 기분에 날개를 달아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룹사운드 ‘창세기’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무대 앞자리에 자리한 아이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들이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이끌어 갔다. 흥을 참지 못한 아이들은 서서 열광하기 시작했다. 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문득 떠올랐다. 가방에서 수첩을 꺼냈다.

“오늘 수능을 마친 ‘윤소리와 신은별’ 그리고 모든 수험생들을 위한 신청곡이 들어왔습니다. 모든 수험생 여러분 수고 많이 하셨고 사랑한다고 적어 주셨습니다.”

수능을 마친 두 아이가 감동을 먹었다. 작은 배려가 큰 감동을 준 것일까. 두 아이가 일어나 환호하며 그룹사운드의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다른 중고 아이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노래방에서도 신나게 노는 아이들
노래방에서도 신나게 노는 아이들 ⓒ 최종수
2차 노래방을 가기 위해 봉고차에 올랐다. 운전해 주신 형제님께 큰 박수를 드리고 노래방으로 갔다. 우리는 제일 큰 방을 잡았다.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대부분은 알지 못하는 노래였다. 그러나 아이들의 노래에 신나게 춤추며 함께 놀았다. 요즘 여자아이들은 노래도 춤도 빼는 것이 없었다. 자기 모습을 숨김없이 그대로 보여주었다. 놀 때는 열심히 놀고 공부할 땐 열심히 공부할 줄 아는 아이들이었다.

‘마지막은 신부님! 신부님!’ 아이들의 요청으로 ‘아파트’ 노래를 함께 부르고 노래방을 마쳤다. 수능을 마친 두 아이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이렇게 저희들을 위해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중2이라고 시간이 많이 남은 것은 아니에요. 고3도 금방이고 고등학교 3년 시간도 금방 지나가요.” “먹는 것도 열심히 노는 것도 열심히 공부도 열심히 모든 일을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요.”

노래방에서 나온 거리는 네온사인도 하나 둘 잠이 들고 있는 깊은 밤이었다. 아이들 모두에게 하이파이브 작별인사를 했다. 달도 별도 숨어버린 골목길을 삼삼오오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들의 풍경이 정겹다.

카메라 앞에서의 표정도 예쁜 우리 아이들
카메라 앞에서의 표정도 예쁜 우리 아이들 ⓒ 최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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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기자는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일꾼으로,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으로 2000년 6월 20일 폭격중인 매향리 농섬에 태극기를 휘날린 투사 신부, 현재 전주 팔복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첫눈 같은 당신'(빛두레) 시사 수필집을 출간했고, 최근 첫 시집 '지독한 갈증'(문학과경계사)을 출간했습니다. 홈피 http://www.sarang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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