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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가 특징이면서 자연 속에 살아 자연을 닮게 성장하는 대안학교인 원경고 학생들. 이 아이들은 들에 사는 야생초처럼 생활하고 있으면서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을 공부거리로 삼는다.
마음공부가 특징이면서 자연 속에 살아 자연을 닮게 성장하는 대안학교인 원경고 학생들. 이 아이들은 들에 사는 야생초처럼 생활하고 있으면서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을 공부거리로 삼는다. ⓒ 정요섭
지난 여름, 방학이 끝나갈 무렵 고등학생쯤 돼 보이는 녀석들 서넛이 면사무소 출입문을 닦고 있는 걸 보았습니다. 손은 손대로 걸레는 걸레대로 허공질을 해대며 건성건성 닦고 있는 게 보기가 딱해서 뭐하냐고 물었더니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쿡' 웃음이 나는 걸 참고 "즐겁냐"고 물었더니 대답은 "아뇨"였습니다. "이거 안 해가면 점수 못 받아요" 하며 볼멘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관공서말고 정말 봉사활동 할 곳이 많을 텐데?" 하고 물었더니, 시큰둥하게 "그런 데는 고생만 하고 시간도 짜게 줘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대화를 가늠한 듯 면사무소 직원으로 보이는 이가 지나가며 '뭘 새삼스럽게구냐'는 표정을 지으며 저를 흘겨봅니다.

기꺼운 나눔은 스스로를 행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세상마저 환하게 밝혀줍니다. 세상에 숱한 말 중에 '나눔'이란 말처럼 아름다운 말도 없을 것입니다. 세상을 떠받치는 말 '나눔'이 우리가 사는 여기에서는 대학 진학을 위하고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한 한낱 도구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본질이 왜곡된 봉사활동과 꼭 닮은 사촌이 바로 논술입니다. 대학 진학을 앞둔 젊은이들과 부모들이 이 일에 '올인'을 하다시피 합니다. 비단 입시생이나 그 부모가 아니더라도 아이를 가진 부모들 중에는 아이를 미리 학습시켜 입시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고 생난리를 부리고 있습니다. 이른바 '논술바람'입니다.

얼마 전 어느 일간지에 난 기사를 보니 올해 수시입학을 위한 논술고사에서 답안 3700장 중에서 2천 장 이상이 소위 '판박이 답안'이 나왔다고 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복제인간이 만들어져서 벌써 대입 나이가 된 것도 아닐텐데 어째서 이런 현상이 생길까 곱씹게 합니다.

'개발'이라는 주제가 나오면 숱한 학생들이 하나같이 '지속가능한…' 어쩌구의 답이 나오고, '경제성장과 삶의 질'이라는 주제가 나오면 하나같이 '행복지수…' 어쩌구가, '자살' 하면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 '체험' 하면 '백문이 불여일견', '인간이성' 하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현대사회와 개인의 문제' 하면 '어린왕자'와 '대중매체….'

이런 판박이 답안들에 대해 거개의 대학들이 낮은 점수나 불합격 점수를 줬다고는 하지만 도대체 이 해괴한 일들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요? 사실은 이 일이 해괴하다기보다 이런 일이 용인되는 세상이 더 해괴한 건 아닐까요?

잘은 모르지만 논술시험은 '무엇을 어떻게', 즉 '논점과 시점'의 깊이를 가늠하는 것이겠지요. 개개 사고의 영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하라는 논술제도가, 같은 프로그램이 입력된 로봇처럼 사고하는 인간을 양산하고 있는 꼴이니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지요.

제 나이에 맞는 사색과 실천이 있으려면 어릴 때부터 꾸준한 책읽기와 체험과 토론이 생활화되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공부가 우선이고 그런 건 나중에 해도 된다고 여기다가 갑자기 논술을 위해 생각을 키우려하니 덜 익은 과일이 익은 채 하는 꼴이 될 밖에요. 아무리 속성이 판치는 세상이라 해도 생각마저 속성으로 숙성시킬 수 있다고 믿거나 사고의 수준을 꾸며낼 수 있다고 믿는다면 슬픈 일입니다.

그렇게 '입시용병'이 된 아이들. 봉사활동을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수행하는 과제쯤으로 여기고, 논술점수를 잘 받기위해 숙성된 생각도 없이 외워둔 답을 천편일률적으로 해대는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면 과연 행복해 질까요? 그런 아이들이 사는 사회는 건강할까요?

이제 우리 어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교육제도의 문제라고 해서 입시생과 그 가족들의 문제로 밀쳐둘 게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이 참 '나'를 찾고 참 '세상'을 살아가게 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때입니다. 세상 어디에 '진정이어서 행복한 봉사활동'과 '농익은 생각이어서 여문 실천'을 가르치고 배우는 데 없나요?

덧붙이는 글 | 본질이 퇴색된 봉사활동과 논술교육을 꼬집자고 했을 뿐 대상이 되는 학생 모두가 제 기사에 해당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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