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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인 전희식씨(밀짚모자)가 학생·주부·지인등과 함께 장수군 장계면 명덕리에 위치한 버려진 농가를 자연친화적으로 고치고 있다. (전북일보에 실린 사진설명)
귀농인 전희식씨(밀짚모자)가 학생·주부·지인등과 함께 장수군 장계면 명덕리에 위치한 버려진 농가를 자연친화적으로 고치고 있다. (전북일보에 실린 사진설명) ⓒ 전북일보
시골 농사집을 고치고 있다. 근 한 달여 된다. 진척이 참 더디다. 부실한 벽을 헐고 고치다보면 썩은 기둥이 드러나고 썩은 부위를 잘라내고 새 기둥을 박아 넣으려면 주춧돌 다시 놔야지, 기둥 새로 만들어야지, 철 기둥으로 집 도리목과 서까래 받쳐 올려야지, 일이 몇 배가 늘기 때문이다.

재래식 부엌을 입식으로 바꾸는 과정도 벽채를 쌓는 일에서부터 바닥의 높이를 정하는 것은 물론 입식부엌에서 아궁이는 그대로 살리려고 하니 연기가 부엌으로 나오지 않게 시공을 해야 한다.

'보따리학교'에 참석한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빨래를 해 널고 있다.
'보따리학교'에 참석한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빨래를 해 널고 있다. ⓒ 전희식
당연히 시행착오가 생기게 되고 진행되었던 작업을 되돌리는 때도 있다.

‘길동무(www.gildongmu.org)’의 '보따리학교'도 열고 대안 중학교 '마리학교(www.mari.or.kr)' 학생들의 생태집짓기 체험장으로 일터를 공개하기도 하면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집을 다녀갔고 그들의 숨결과 땀으로 집이 지어지고 있다.

<전북일보>(11월 13일 9면)에 이 사실이 기사로 나오고 나서 여러 사람들로부터 문의가 오고 급기야는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오겠다고 연락까지 왔다.

집을 고치는데 드는 자재 대부분을 도시에서 쓰레기 취급받는 것들을 주워오거나 급히 필요한 것들은 고물상에 가서 그야말로 똥값에 사 오는 방식으로 번듯한 생태주택을 만들어 가는 것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통나무 황토 벽 쌓기 공법(?)으로 벽을 쌓았다. 일명 '목천공법'이라고도 불린다.
통나무 황토 벽 쌓기 공법(?)으로 벽을 쌓았다. 일명 '목천공법'이라고도 불린다. ⓒ 전희식
싱크대 가게에 연락하여 새 싱크대 들이는 집의 헌 싱크대를 내 트럭에 싣고 와서 고쳐서 설치했는데 아주 번듯한 우리집 최고의 명품이 됐다.

나는 이 집을 고쳐서 여든 다섯 늙으신 우리 어머니와 함께 살 계획을 갖고 있다. 어머니의 남은 여생을 함께 하기 위해 막내인 내가 이런 계획을 갖게 된 것은 꽤 오래된다. 형제들이 우려와 반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묘살이 하듯 몇 년을 내가 우리 어머니와 같이 살려고 하는 이유는 여럿이다.

10월 31일 보따리학교가 열리던 날. 저녁에 모닥불을 피웠다.
10월 31일 보따리학교가 열리던 날. 저녁에 모닥불을 피웠다. ⓒ 전희식
밝힐 수 없는 이유까지 포함하면 책 한권은 족히 될 것이다. 효심만으로는 절대 늙으신 부모를 모실 수 없다는 게 내 인식이다. 늙음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늙어가면서 맞게 되는 신체적 심리적 변화에 대한 이해와 공감 없이는 부모 모시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어떤 사람은 "내가 이렇게 못 된 자식인가?"라고 자탄을 할 마음준비를 하고서 어머니를 모셔 오라고까지 했다.

마리학교 아이들은 밤낮을 안 가리고 고구마 구워먹기를 좋아했다.
마리학교 아이들은 밤낮을 안 가리고 고구마 구워먹기를 좋아했다. ⓒ 전희식
나는 이 집에서 단순히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대소변을 손수 처리하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음악(명상음악)과 향(강화사자발쑥 피우는 향), 물론 자가치료도 해드릴 생각이다.

한 주 동안 마리학교 학생들이 체험학습 차 머물다 갔는데 마리학교 교장선생님이 아이들의 생활모습을 보고 이곳을 마리학교 'OO분교'로 하자는 제안을 해왔다. 학교 아닌 곳이 어디 있냐고 나는 수락(?) 했고 난데없이 나는 팔자에도 없던 대안중학교의 분교장이 되었다.

버림받은 가구나 폐목 같은 것들이 우리집에 오면 화려하게 다시 태어난다. 버린 씽크대를 주워왔다.
버림받은 가구나 폐목 같은 것들이 우리집에 오면 화려하게 다시 태어난다. 버린 씽크대를 주워왔다. ⓒ 전희식
일 진척이 더딜수록 추위가 더 깊어지기 전에 집 고치기를 완성해야 하는 내 조바심도 깊어만 간다.

덧붙이는 글 | 바람이 차다. 불어 들어 온 바람이 계곡을 쉬이 빠져 나가지 못하고 돌개바람이 돼 한번 볼을 때리고 한참 뒤 다시 돌아와 등을 때린다. 큰 대야에 받아 놓은 물이 깡깡 언 것을 보니 도시와 달리 이곳의 밤과 새벽은 영하의 날씨에 시달렸나 보다.

12일 오전 9시 장수군 장계면 명덕리 지보마을 남덕유산 서봉 해발 500여m에 위치한 전희식씨(49)의 농가. 전씨와 지인 3명이 60여 년 전 지어져 이제는 버려진 7평 남짓한 농가를 고치고 있다.

“한국전쟁 전인 1947년께 지어졌다고 촌로가 말해주더군요. 20여 년 전 부터 빈집으로 남아 있지만 아직 쓸만 합니다. 20년가는 시멘트 집과 달리 흙집은 200년이 가도 멀쩡하지요.”

현재까지 4주동안 작업을 했고 앞으로 앞으로 보름 남짓 남은 공사가 마무리되면 서울에 있는 형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85세의 어머니를 이곳으로 모실 계획이란다.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12년 전 귀농해 완주군 소양면에서 ‘농사꾼’의 길을 걷고 있는 전씨가 빈 농가를 새 보금자리로 만들고 있는 것은 비단 어머니 때문만은 아니다. 전씨는 이 집이 어머니와 자신의 전유물이 아닌 함께 일한 모든 사람의 쉼터라고 강조한다. 황토와 흙, 통나무를 섞은 집을 짓어 도시인들에게 자연과 더불어 사는 집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공사에 사용되는 싱크대, 목재, 문짝 등은 모두 도시에서 버려진 것들을 헐값에 사거나 주어 온 것들이다. 재료를 구하기 위해 고물상과 주택가를 숱하게 배회한 전리품이랄까. 재활용과 자연친화적 재료를 사용한 집짓기. 전씨는 이를 생태적 집짓기라고 부르고 자원봉사자들 역시 이 과정을 체험하고 있다.

오전 10시가 좀 넘었을까. 추위도 피할 겸해 새참시간이다. 새참 준비는 막내인 심원보씨(18)가 맡았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직업학교에 다니는 심씨도 완주군 고산면의 농촌에 자신의 집을 짓고 있단다. 숯을 이용해 아궁이에 불을 붙인다. 솥에는 사흘째 푹 삶고 있는 닭백숙이 곰국처럼 걸쭉하다. 눈물, 콧물 흘리며 불 지피기 위한 20여분의 안간힘 끝에 ‘톡, 톡’ 장작 타는 소리가 나며 아궁이에 제대로 불이 붙었다. 덩달아 구들장도 닳아 오른다.

신 김치, 닭 곰국(?)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잔. 추위는 가시는데 취기가 오른다.

“바람 불어도 괜찮아요, 쌩쌩 불어도 괜찮아요.”

콧노래를 부르는 전씨의 눈에 방 2개, 부엌 1개, 토방과 마루가 잘 짜인 낙원이 보이는 듯하다.

정오가 되자 쌀과 부식거리를 든 지원인력이 도착했다. 강화도의 중학과정 대안학교인 마리학교에서 온 1,2학년생 4명이다. 학교에서 말썽을 부려 생태집짓기 체험과 냉수마찰 물 수련으로 마음수양 길에 올랐다고 황선진 교장은 설명한다.

현재까지 이 집을 고치는데 손을 빌려주며 참여한 주부와 학생, 지인들이 20여명. 연인원 80여명에 달하는 대공사다. 전씨는 “도시의 쓰레기가 이 집의 소중한 재료가 된다”며 “누구든 이곳에서 생태적 집짓기를 체험하고 별장으로 삼길 바란다”고 말했다.(전북일보 1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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