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귀에 경 읽기가 따로 없다.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는 사법개혁 법안들을 조속히 처리해달라며 결의문까지 채택했지만 한나라당은 '안 된다'고 딱 잘랐다.
딱 자른 이유는 이렇다. 김형오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말이다. "로스쿨법은 사법제도 전체를 바꾸는 법률임에도 문제점이 너무 많은 것으로 나타나 지금 단계에서 처리할 수 없다."
부연 설명은 한나라당 소속 교육위와 법사위 위원들이 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추린 이들의 거부 논리는 이렇다. ▲연간 3천만원의 학비가 드는 로스쿨은 귀족학교다 ▲판·검사 임용시험, 로스쿨 입학시험 등이 있기 때문에 '고시낭인'도 줄어들지 않는다 ▲로스쿨 정원이 없고 판검사 임용규정도 없다 ▲일본도 실패했다 등등.
허무하고 맹랑하다. 이런 반문으로 갈음하자. ▲귀족학교에 대한 거부감이 그리 크다면 왜 의학전문대학원은 허가했고, 왜 연 1천만원 넘게 드는 자립형 사립고를 확대하라고 주장하는가 ▲로스쿨법은 '고시낭인' 구제 특별법인가 ▲로스쿨 정원은 하위법에서 규정하기로 여야가 합의하지 않았는가 ▲일본은 실패했는지 모르지만 미국은 뿌리 내리지 않았는가 등.
각론에 매달릴 일이 아니다. 중요한 건 발상이고 태도다.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라는 국회가 민주주의 원리를 깔아뭉개고 있다는 게 문제다.
자립형 사립고 찬성하면서 로스쿨은 돈 때문에 반대?
사개추위가 도출한 사법개혁 법안들은 '최소치'다. 문제가 아예 없는 게 아니라 문제의 소지를 최소화한 것이다. 판·검사와 변호사, 경찰 등 각종 이해관계자들의 격렬한 반발과 극심한 갈등을 뚫고 추려낸 최소 차원의 공통분모다. 이 최소 공통분모를 도출하기 위해 사개추위는 19번의 본회의, 46번의 외부 전문가 초청토론, 31번의 연구회, 7번의 공청회를 거쳤다.
사법개혁 법안들은 타협과 조정의 산물이고, 민주주의 운영원리의 소산이다. 이 걸 국회가, 더 정확히 말하면 일개 정파인 한나라당이 거부하고 있다.
난센스다. 국민 의견을 수렴해야 할 국회가 법조계의 총의를 무시한다. 타협의 장이어야 할 국회가 타협의 산물을 거부한다.
그럴 수도 있다. 총의가 늘 진리를 담보하는 건 아니다. 문제를 제기할 권리를 무시할 순 없다. 하지만 그것도 때가 있고 상황이 있다. 사개추위가 극심한 갈등을 빚을 때 국회는 뭐하고 있었는가? 팔짱 끼고 있었다.
사학법과의 연계 방침도 그렇다. 한나라당의 이런 태도엔 독선이 깔려있다. 사학법 만큼 중요하고 시급한 법안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다.
일방적이다.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 사법개혁 법안들은 갈등 조정을 끝낸 것들이다. 반면 사학법을 두고는 이해 관계자들이 여전히 갈등을 벌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지는 자명해진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이미 타협을 본 것을 갈등구조에 끌어들이고 있다.
잇속 챙기기 심해도 너무 심하다
너무 심하다. 생산성 하고는 아예 담을 쌓고 있다.
당연하다. 능력이 모자라는 게 아니라 의지가 없다. 헛노력을 하는 게 아니라 아예 노력을 하지 않는다. 태업, 아니 파업을 하고 있으니 생산성이 오를 리 없다.
투쟁 목표는 분명하다. 사학법 재개정 투쟁엔 지지표 결속 목표가 깔려있고, 로스쿨법 반대 투쟁엔 밥그릇 챙기기가 작용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나의 투쟁'이다.
버전을 약간 바꾸면 이렇게 묘사할 수도 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일 것이다. 국민의 권익을 볼모로 자기 잇속 챙기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덧붙이자. 한나라당이 '처리 불가'를 읊조리는 게 로스쿨법 만이 아니다. 이런 것들도 있다.
국민참여재판법 - 배심원제 도입
형사소송법 - 공판 중심주의 강화
법원조직법 -양형기준 계량화
변호사법 - 법조윤리 확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