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에서 과거청산 작업은 과거문제를 다루는 작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반공 독재체제가 생산해 온 관행을 청산하고 사회 내부에서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요구하는 의미를 지닌다."
김무용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조사1팀장은 "국가폭력과 학살이 일상을 지배하던 집단광기의 시대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었다"며 "과거청산은 비정상적인 과거를 단절하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상사회로 이행하는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과거청산 활동의 문제점과 한계를 점검하고 앞으로의 과제 및 실천적 대안을 짚어보는 토론회가 20일 오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주최로 서울 건국대 법학도서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렸다.
'노근리사건희생자심사 및 명예회복위원회' 정구도 위원은 "노근리사건은 1950년 7월 25일부터 닷새간 미군에 의해 수백명의 피난민들이 잔혹하게 살상당한 한국판 '킬링필드', 한국판 '미라이학살사건'으로 불린다"며 "1999년 AP통신 보도로 국내외 여론이 들끓자 한미 두 나라 정부가 공동조사를 했지만 결론은 진실을 축소, 왜곡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당연히, 재조사를 통해 사건 희생자들에 대한 미국정부의 공식사과와 손해배상을 받아내야 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정 위원은 "궁극적으로 한국정부가 국민들의 간절한 소망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노근리사건의 해결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며 한미간 재협상을 촉구했다.
또 정근식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운영위원장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은 대부분 '학살'에 의한 것이고 이의 진실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밝혀진 바가 적다"며 "이는 해방 후 50년 동안 지속된 억압체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민간인 학살이나 의문사 진상규명은 신고주의를 택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사건은 분명히 발생했으나 신고자가 없어 마치 사건이 없었던 것처럼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며 "과거청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신고조사 대신 직권조사를 늘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과거청산활동 과정에서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폭력의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해 공개방식이 아니라 보고서 작성 방식의 비밀주의를 택하고 있다"며 "그러나 민간인 학살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서는 토론과 논쟁을 통한 시민학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야만성 깨고, 문명사회로 나가야...
문화방송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이채훈 피디는 "이른바 보도연맹 사건을 취재하면서 충격적인 것은 학살 자체 보다는 50년 동안이나 그 엄청난 사건이 은폐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고 밝혔다.
이 피디는 "너무나 당연한 얘기를 해도 듣지 않으려는 분위기와 정권의 야만성이 아직 우리 사회에 남아 있기 때문에 학살에 대한 진실 규명이 늦어지고 있다"면서 "과거사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 야만성을 깨고 문명사회로 나아갈 때 풀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무용 팀장은 "민간인 집단희생 관련 사건은 신청사건 조사와 직권조사로 나누어 조사에 착수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진실 규명의 완전한 형태는 피해자 증언과 가해자 고백, 이 둘을 입증하는 공식자료 등 3가지 구성요소가 일치해야 되는데 간단치가 않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팀장은 "진실 규명에서 공식문서 못지않게 피해자의 진실(증언)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면서 "대부분 다른 나라의 진실화해위원회에서도 진실 규명의 가장 중요한 자료로서 희생자의 증언에 의존했다"고 설명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지향하는 진실과 화해의 양립주의에 대한 한계도 지적됐다. 피해자(진실 규명)와 가해자(화해)를 모두 만족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
김 팀장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문제는 개인에 대한 국가와 체제의 폭력성, 억압성, 야만성이 가장 집중적으로 표출된 지점"이라며 "따라서 과거청산은 '죽음 앞의 불평등을 법 앞의 평등'으로 바꾸는 수준을 넘어 국가폭력이 일상화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고 사회지형을 새로 정립하는 기획과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