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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8일, 일어나자마자 서둘러서 씻고 대통령궁으로 출발할 준비를 했다. 점심때가 되면 여러 사람들이 어렵고 힘들게 준비해 온 김치축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유목민의 전통이 깊이 배어있는 몽골에선 육식 중심의 식탁이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 왔다. 자신들이 키우는 동물들이 먹는 야채류에 대해 대부분의 몽골인들은 사람이 먹는 음식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양고기, 말고기, 양젖, 말젖, 소고기 등 육류를 지나치게 섭취했다.

그러다 보니 섭취하는 식재료의 지나친 육류 편중으로 몽골 국민 전체의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 성인병과 혈관계통의 질병 등으로 몽골인의 평균수명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었고, 그것은 국가경쟁력 약화와 연결되었다.

한국 몽골 협력센터 소장 이혜식 박사는 현재 몽골인들의 식생활에 발효야채들을 적절하게 조화시킨다면 건강이 훨씬 양호하게 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몽골인에게 한국식 김치를 먹게 할 수 있다면 육류와 양젖 등의 유제품을 주로 섭취하는 몽골인들에게 쉽게 발병하는 성인병과 혈관계통의 질병 상당 부분을 완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10년 전부터 몽골에서 배추와 무 등 야채를 재배하려고 한국의 농사기술을 들여다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건조하고 척박한 몽골에서는 한국 야채류를 재배하기가 너무 어렵고 힘들었다. 실패를 거듭하던 이 박사는 재배에 적당한 토양부터 제작하기에 이르렀고, 비닐하우스 등 농업기술을 몽골에 맞게 적용하여 결국 성공했다. '녹색농업기술원'을 키워왔고 연구와 실험을 거듭한 끝에 배추와 무, 고추 등을 재배하는 데 성공했다. 김치를 담그는 데 필요한 야채류의 대량재배도 성공했고 몽골 대통령궁의 영빈관 대연회장에서 김치축제를 하게 된 것이다.

▲ 김치 담그는 모습
ⓒ 강성구
현지 교민에 따르면, 지금은 많은 몽골인들이 울란바토르 내 한인식당을 찾아 한국음식들을 맛있게 먹고 집에서도 야채류 반찬과 음식들을 사다 먹는다고 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중국의 김치제품들이 많이 수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몽골에 비닐하우스 농장이 많이 세워지고 한국의 기술에 따라 몽골 자체적으로 생산한 배추와 무, 고추 등 재료로 만든 김치를 몽골인들이 많이 먹어서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대통령궁으로 가는 관용버스에 올랐다. 창밖 풍경을 바라보다가 어느새 대통령궁에 도착했다.

우리는 이 박사의 부탁과 주문대로 각자의 임무를 부여받아 행사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우선 한국에서 가져온 꽃들을 나누고 꽃꽂이 등을 준비하였다. 몽골에서는 꽃을 구하기 쉽지 않고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현관에서 참석자들에게 꽃을 몇 송이씩 나누어 주면 다들 잘 가지고 있다가 집으로 가져간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한사람에게 나누어 줄 분량만큼씩 자르고 나서 통에다 소국의 색상별로 구분하여 담아 놓았다. 또 행사장 앞쪽과 곳곳에 장식할 꽃꽂이도 만들었다.

그리고 역시 한국에서 가져간 사과, 배, 감 등의 과일도 시식할 수 있도록 잘 준비해 놓았다. 그리고 참석자들이 가까이 보고 관찰할 수 있도록 한국산 배추와 무 등 김치 재료들을 중앙의 테이블에 보기 좋게 진열해 놓았다. 바로 옆 테이블에는 중국산 김치 등 각종 수입 김치류를 한국의 김치와 비교할 수 있도록 진열해 놓았다.

▲ 몽골로 수입.판매되고 있는 중국산 포장김치제품들
ⓒ 강성구
울란바토르 교민들로 구성된 즉석 요리팀도 재료의 확인을 마치고서 파전, 보쌈 등의 음식들을 준비해 내 놓기 시작했다. 조금 일찍 행사장으로 들어 온 참석자들은 파전과 보쌈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또 몽골 현지에서 만든 대형 플랙카드도 행사장 앞 벽면에 걸었다. 대형 플랙카드에는 김치에 들어가는 각종 재료들의 사진과 그릇에 담긴 김치사진, 그리고 좌우측 상단에 한국과 몽골의 국기들이 인쇄되어 있었다. 자세히 살피다가 몽골국기에 비해 작게 인쇄된 태극기를 보고 조금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태극기를 넣을 자리는 몽골의 국기와 같은 규격으로 준비를 했지만 그 네모 안에 들어가는 태극기가 마치 축소된 듯 조금 작게 인쇄되었던 것이었다.

드디어 참석자들이 행사장 안으로 다 들어오고 사회자의 인사말로 김치축제가 시작되었다. "몽골 국민들의 건강을 생각할 때 한국의 김치는 좋은 계기가 되었고, 앞으로 한국의 김치가 더욱 더 사랑을 받는 식품이 되었으면 한다"는 인사말이 끝난 후 몽골정부가 한국의 이혜식 박사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유독 한국대사관에서 나온 사람의 복장만 티셔츠 등 간편복 차림이었다는 점이다.

ⓒ 강성구
한국의 김치를 몽골에 소개하는 행사장에 영사가 정장을 하고 오지 않은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교민들에 대한 대사관 측의 깊은 관심과 배려가 부족한 것 아닌가 해서 안타까웠다. 외국에 있는 공관 직원들이 한국인과 교민들의 안위 등을 지켜주고 보호하기 위해 대한민국에서 파견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지나 않은지 염려됐다.

요즘도 뉴스 등에서 가끔 외국공관 직원들은 국회의원들이 해당국에 출장가면 직접 모시고 영접하고 안내하느라고 분주하다는 내용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지에 거주하면서 같은 하늘 아래에서 일상을 같이 하는 교민들을 더 따뜻하게 배려하고 돌보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몽골 전통 음악 연주
ⓒ 강성구
시식회가 시작되자 참석자들은 모두 한국음식을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곳으로 몰려갔다. 역시 파전은 몽골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부드러운 보쌈에도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특히 몽골의 음식인 양고기와 우리의 김치를 같이 먹는 센스를 보여주는 몽골인들도 꽤 많았다. 실제로 김치로 양고기를 싸서 먹었더니 특유의 양고기 냄새도 줄어들었고 훨씬 부드럽게 먹을 수 있었다. 김치의 유산균이 기분 좋게 입맛을 돋워주는 것 같았다.

참석자에게 김치 등을 먹어본 소감을 물었다. 한 몽골인이 만면에 미소를 가득 담고 엄지손가락을 올리면서 맛있다고, 기분이 좋다고 하였다. 한국인으로서 어깨가 들썩이는 기분이 들었다. 인천공항부터 몽골까지 많은 짐을 가져오느라 힘들었던 기억들이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이렇게 한국의 김치가 몽골인들의 식탁에서 사랑받으며 자리 잡는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몽골의 땅에서 한국의 기술과 노력으로 생산되는 배추와 무 등으로 만드는 김치가 몽골, 더 나아가 중앙아시아까지 공급된다면 앞으로 한국에 대한 인식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흐뭇했다.

중동의 사막에서 해수담수화 기술을 이용, 식수를 공급하고 초원을 만든 한국의 기술력으로 이곳 몽골에서도 채소를 재배하는 방법을 더 개발하고 보급되도록 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 파전 등 음식 맛보기
ⓒ 강성구
몽골의 전통악기 연주단이 공연을 준비했다. 다섯 연주자들이 각자 악기를 들고 나와서 연주를 시작했다. 한국의 가야금과 비슷한 악기, 관악기, 기타와 만도린 등과 유사한 악기, 크로마하프와 비슷한 모양의 타현악기(대나무 막대로 현을 두드려서 소리를 내었다), 현이 두 개인 '마두금'이라는 악기로 구성된 5인조 악단의 연주는 상당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연주한 내용 중에서 관악기를 연주하던 단원이 거의 4~5옥타브의 고음과 저음을 넘나드는 육성연주를 했을 때 난 온몸이 전율하는 것을 느꼈다. 먼 옛날 초원에서 양들을 부르던 목동의 소리를 듣는 듯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연주단이 퇴장하고 김치축제도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었다. 행사장에서 기념촬영을 마친 일행은 이 박사의 안내를 받아서 대통령궁 영빈관 아래쪽에 설치된 비닐하우스로 갔다. 뽀얗게 김이 가득 찬 비닐하우스 내부에는 겨울이 다가오는 까닭에 아무것도 심어져있지 않았지만 새로운 시도라는 느낌이 가득 차 보였다.

비닐하우스 밖 언덕엔 메마른 토양이 먼지바람에 쓸리고 있었지만 내부의 토양은 채소 등을 재배하기에 적합해 보였다. 이 박사는 낙엽과 비료 등 여러 재료를 몽골의 거친 토양과 일정한 비율로 잘 섞은 다음 적당한 온도로 발효시키는 등 과정을 거친 후 만들어진 야채류 재배용 흙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렇게 토양과 비닐하우스가 마련되어야 채소를 효과적으로 재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계속 공사 중인 '녹색농업기술원'에서 안정적으로 채소를 재배하는 것이 꿈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한 사람의 희망, 아니 몇 사람의 꿈과 비전에서 커다란 변화와 발전이 시작된다'는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김치축제 행사도 모두 마쳤고 일행은 다음날 트릴제 국립공원에 가서 게르의 하룻밤을 경험해 보기로 했다. 밖에서 바라보고 지나갔던 민속 전통 천막집인 게르에서 생활이 어떤 것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가 많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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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곳들을 다닌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서 비슷한 삶의 느낌을 가지고 여행을 갈만한 곳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내가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사회적 문제점들이나 기분 좋은 풍경들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각하고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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