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초짜기자 시절, 기사감이 떠오르지 않아 고심하던 나에게 평범하지만 금쪽 같은 조언을 해준 선배가 있다.
그 선배가 던진 말의 요지는 '약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것. 철거민·노숙자·무의탁노인·일용직노동자, 때로는 성적소수자에 이르기까지 주류 사회로부터 일관된 시선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기사를 쓰고자 한다면 날마다 쓸 기사가 넘칠 것이라고 선배는 말했다.
그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강자의 입장에서 보면 세상은 쓸 게 없다"고 말이다. 강자 위주로 돌아가는 세상에 대해 강자 자신이 무슨 불만이 있겠는냐는 것이다.
수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내가 선배의 말을 제대로 곱씹고 이를 실천해왔는지는 솔직히 자신 없다. 그러나 취재원, 특히 그 대상이 약자일 경우 처지를 세심히 살피고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한다는 생각만은 아직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기자의 덕목으로 치는 '객관성'보다 앞서는 '인간에 대한 도리'이기 때문이다.
기자 본분을 잊고 타사의 '사무실 취재' 도왔지만
대추리에서 26일 열린 가을운동회 취재를 마치고 송고를 위해 부득이하게 미군기지확장반대팽성주민대책위원회 사무실 랜선을 빌려쓰던 나는 대책위 사무실 전화를 받아야했다.
'<연합뉴스> 기자'라 신분을 밝힌 상대방의 목소리에는 겸연쩍은 기색이 역력했다. "오전에 기사를 썼는데, 행사 사진을 좀 보내줄 수 있겠느냐"는 부탁의 말이었다.
주민대책위와 별 상관없는 내가 사진을 제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홀로 사무실을 독차지하다보니 겪게 된 난처한 경우라 하겠다. 모름지기 기자들이란 서로 먼저 보도해야 한다는 경쟁관계. 아무리 통신사라지만 사진을 보내준다는 것은 꺼림칙한 일이다.
그러나 정부로부터 압박에 시달리는 자신들의 처지를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주민대책위의 처지를 생각하면 <연합뉴스>란 거대매체의 관심에 일조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 '본분을 망각한 채' 기꺼이 주민대책위 간사와의 '다리'를 놔주었다.
<연합뉴스>는 1시간이 채 되지 않아 대추초등학교 운동회의 생생한 현장사진을 받아볼 수 있었다. 이쯤되면 대소사에 치여 대추리 일정을 잡지못한 연합뉴스의 뒤늦은 관심과 주민대책위의 호응이 손잡은, 나름대로 '사무실 취재'가 용인될 수 있는 결과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불과 수 분 뒤,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게재된 사진기사의 제목을 접한 대추리 주민들은 커다란 분노를 느껴야 했다. (물론 다리를 놔준 내가 느낀 당혹감은 제외한 채 말이다).
웃고 있는 주민들 모습에서 '마지막'을 읽은 <연합뉴스>
'평택 대추리, 마지막 운동회'
<연합뉴스>가 주민대책위의 호의로 전달받은 사진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보았는지는 알 수 없다. 쌀쌀한 가을 날씨 속에서 치러진 이 행사에서 어떤 애잔함을 느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내년 봄께 없어질지도 모를 대추리의 아슬한 한 때를 읽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진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적어도 사진 속 주민들과 지킴이들의 환한 웃음이 '마지막'보다 '희망' 쪽에 걸쳐 있는 것은 자명하다. (만에 하나 네이버 측이 제목을 잘못 설정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자신의 사진기사가 곡해되는 것을 방치한 것은 무책임하지 않은가!)
<연합뉴스>가 대추리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의 옳고 그름을 떠나 주민대책위가 "우리 '마지막' 운동회를 했어요"라고 사실상 패배를 자인하는 사진을 제공하지는 않았다.
팽성주민대책위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운동회의 의도를 분명하게 전달했는데, 연합뉴스가 제목을 행사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뽑은 것을 보고 황당했다"면서 "취재를 오지 않은 연합뉴스에 사진까지 제공했는데 너무 한 것 아니냐"며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취재원의 호의를 잘못 전달한 사진기사는 공영언론으로서의 위상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고, 나아가 무성의한 '무전 취재'란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
백번 양보해 '마지막'이란 <연합뉴스>의 수사가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는 가정에도 불편한 마음이 끼어들지 않을 수 없다. 어찌되었건 간에 대추리 주민들은 정부의 압력에 맞서 여전히 싸우고 있고, 미군기지확장문제는 그 싸움의 결과에 따라 미약하나마 변화의 가능성을 띠고 있다.
도대체 기자란 무엇인가. 비록 한 쪽으로 기울었을지라도 변화의 가능성에 끊임 없이 관심의 저울추를 올려놓는 것이 기자가 아니던가(보통 그 지점에서 특종이 나오지 않던가), 하물며 정부쪽에 기울어진 무게의 대척점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대추리 주민들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두 말 해서 무엇하겠는가.
덧붙이는 글 | 손대선 기자는 <경인매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