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문제를 내주고 아이들이 글을 써오면 그것을 놓고 고쳐가면서 그때 그때 모자라는 점을 짚어주기로 했습니다. 글의 구조를 분석해오는 과제도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책과 글은 벽을 쌓고 살다가 갑자기 '논술'이란 것을 써대야 하는 아이들도 그렇겠지만, 삼십년 동안 글을 쓰면서 배운 것을 짧은 기간에 전수해 주자니 저도 고역이 말이 아니군요.
이 글을 읽는 분이 수험생이거나 수험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라면 저보다 더 답답하시겠지요. 논술시험에 대한 자료는 많이들 나와 있으니까 여기서 되풀이할 필요가 없겠고, 저 나름대로 생각한 요령을 몇 가지 말씀드림으로써 답답함을 덜어드릴까 합니다.
'많이 쓰기' 보다는 '고쳐쓰기'
글쓰기는 생각하기와 표현하기의 훈련입니다. 흔히들 '글을 많이 써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쓰면서 많이 생각해보라는 메시지가 들어있습니다. 저는, 많은 글을 쓰기 보다는 글 한 편을 여러 번 고쳐 쓰면서 모자라는 점을 보강하고 사고의 틀을 고쳐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요점 뿌리기
쓸 거리(요점이 되는 말)들을 나열해놓고, 우선 순위와 개념의 상하위를 정합니다. 이렇게 하면 빠진 점을 발견할 수 있고, 글이 주제를 벗어나 딴 곳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글쓰기에 들어가기 전에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면 보인다
논술은 개념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개념의 서술로 끝납니다. 이것을 단어(글자)로 정리하다 보면 나중에 그 단어를 읽을 때는 머릿속에서 다시 개념을 정리해야 합니다. 일종의 번역과정과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개념을 눈에 보이는 그림으로 정리하면 그런 불필요한 번역과정이 필요 없습니다.
예를 들어, '평화'나 '자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이지만 비둘기나 지폐는 형태를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간단하게 그림으로 그릴 수 있습니다. 예문을 읽을 때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때에 이 방법을 사용하면 오류도 적을 뿐 아니라 시간도 많이 절약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요점 뿌리기'에도 이 방법을 사용하면 효과적입니다.
분석력에 중점을
저는 특히 분석력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두는데, 이것은 글을 읽을 때 뿐 아니라 자기 생각을 정리할 때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으라고 하는데, 이것은 읽기를 통해 분석력과 독해력이 길러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3 수험생에게 많은 책을 읽으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힘 든 얘기지요. 학생 수준에서 소화할 수 있는 문학평론을 골라서 꼼꼼히 읽든지, 신문 사설을 놓고 구조를 분석해 보기를 권합니다.
긴 호흡과 간결한 끝맺음
사실 '호흡이 긴 글'은 글을 많이 써봐야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는 글의 재료를 많이 확보해놓고, 그 설명들의 열거하는 데 있어서 인과관계를 탄탄히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결론은 지금까지 전개해온 것을 함축적으로 정리하고, 맺는말은 논리에 치우치지 말고 읽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표현을 찾도록 하십시오.
만연체보다 못한 간결체?
흔히들 의사 전달에는 만연체보다 간결체가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긴 문장을 여러 개의 단문으로 토막냈다고 해서 간결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간결체는 문장과 문장 사이의 '간격'을 읽는 사람이 메우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읽는 사람의 상상력이 발휘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자세하게 쓰려는 욕심을 버리고, 불필요한 문장이나 표현을 과감하게 삭제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글의 유형
소설과 시는 형태부터가 다르기 때문에 구분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사실과 주장은 혼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광고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종종 있구요. 글의 유형을 잘못 판단하면 엉뚱한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특히, 독서 경험이 많지 않은 학생이라면 주어진 예문의 유형을 명확히 정의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뭐 그정도야" 하실지 모르겠지만, 유형을 명확히 정의한다는 것은 의외로 쉽지가 않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문제를 하나 낼테니 풀어보시죠(답은 내일 댓글로 달겠습니다).
[문제] 갑순이가 전화로 갑돌이에게 말했다. "사랑해요". 갑돌이가 대답했다. "응, 알았어." 이 대답을 들은 갑순이는 "뭐 이런 남자가 다 있어!" 하면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사랑한다고 해서 알았다고 대답했는데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그리고 갑순이에게 전화를 해서는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