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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삶이 지치고 힘들 때가 있다. 자기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며 사는 것도 쉽지 않은 시대. 자기 자신보다는 타인을, 자기 가족보다는 다른 가족을 위해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더구나 부유한 이들보다는 가난한 이들,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보다는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해 산다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는 시대이다.
월요일(11월 20일) 사제의 쉬는 날, 노동자들의 연대와 전진이라는 목포를 세우고, 그 삶을 살아가기 위해 신학교 시절부터 준비한 밀알사제들의 모임이 담양에서 있었다. 전주에서 국도를 타고 순창을 돌아서 아우 신부와 함께 갔다.
'교회가 사회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밀알사제가 세상과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에 대한 정향자 소장(노동 실업 광주센터 소장)과의 간담회에 멀리 부산에서 광주에서 온 사제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사제들이 2007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대화를 나누었다. 원주, 부산, 광주, 전주에서 분기별로 전국 밀알사제 모임을 갖기로 하고 회의를 마쳤다.
그 동안의 삶을 나누는 친교시간은 사제들의 삶을 충전하는 시간이었다.
"신부로서 소신껏 살았으면 좋겠어요. 보좌신부로서 기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가능한 부유한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가 만났기 때문입니다. 어느 곳이든 가난한 사람들은 있기에 가난한 집을 찾아가 그들과 함께 점심도 먹고 때때로 막걸리 잔도 주고받고 수다도 떨고 고민도 들어주다 보면 금방 한나절이 지나갑니다. 서산의 노을이 번져가는 골목길을 걸어 나올 때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을 그렇게 지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보좌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본당신부님이 싫어하지 않나요. 지만 열심히 산다고 생각해서 눈치를 받는다고 하던데요."
"우리 삶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모범을 따라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적 선택해야 하는데 왜 눈치를 봅니까. 눈치를 주든 말든 자기 소신껏 살아야 하지 않나요."
"신부로서 대접이 아니라 사람대접을 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새로 부임한 곳에서 그렇게 힘들게 살고 있었어."(그동안 챙기지 못한 미안함에 전 그만 목젖이 뜨거워지고 말았습니다.)
"아니요. 전 잘 살고 있어요. 제 동기 하나가 무척 힘든가 봅니다. 삶과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아픔이겠지만, 직무나 주종관계가 아닌 한 인격체로서의 이해가 부족한 탓인가 봅니다.
건축위원회 회의를 마친 후배 신부가 홍어찜과 동동주를 사들고 늦은 밤에 찾아왔다. 동동주 한 잔에 코끝이 쐐한 홍어찜 한 점, '카- 마 죽인다!' 감탄사가 연쇄반응으로 이어졌다. '카 죽인다!' 추임새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동동주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쌓이고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아우 신부의 고백이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 같았다.
"사제로 산다는 것이 날이 갈수록 버겁게만 느껴집니다. 그저 교회건물을 관리하고 신자들 숫자만 늘리는 차원의 제도교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우선적인 선택에 대해 신자들이 먼저 반대하는 모습. 교회마저도 가난과 가난한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있는 현실에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 제도교회의 틀, 보호막 안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려는 제 자신의 모습을 볼 때가 가장 절망적입니다. 이렇게 제도교회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 예수님의 참제자라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지금 교회의 모습에 끊임없이 자문해 보지만 답은 참교회의 모습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고 맙니다.
어느 목사님처럼 제도교회에 목사직을 반납하고 시골에 들어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용기도 없기에 이따금 괴로울 때도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십자가, 내가 찾아가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를 잘 질 수 있도록, 그런 용기를 주시라고 기도하지만, 기도를 실천에 옮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제 자신 앞에 서고 맙니다."
라면을 끓여서 신학생 시절처럼 소주 한 잔씩 더 마셨다. 새벽 3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함께 미사를 드렸다. '세상을 향한 연대와 이 땅의 하늘나라를 향한 전진'을 확인하고 충전하는 시간이었다. 평화의 인사 시간에 서로 나눈 따뜻한 포옹은 모닥불에 새로운 장작을 넣는 연대의 극점이었다.
따뜻한 악수를 하고 각자 세상 속으로 출발했다. 멀리 부산에서 온 형님과 아우 신부와 백양사로 향했다. 오색 물감을 뿌려놓은 듯한 단풍나무들이 아직도 화려한 자취를 풍기고 있었다. 단풍나무 붉은 터널을 따라 첫 감탄사를 지른 곳은 첫 번째 연못이었다. 기암절벽의 산과 단풍이 수경 같은 연못 안에 고스란히 들어와 있었다. 기암절벽의 산이 연못에 앉아 면벽수도를 하고 있는 자태였다.
백양사로 오르는 길을 따라 연못에 비친 단풍과 나무는 무릉도원을 떠올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바지가랑이를 붙잡고 놓아줄 줄 몰랐다. 구수한 사투리도 단풍잎처럼 떨어져 연못에 누웠다. '카 마 죽이네요. 마 백양사가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 아닙니꺼!'
약수 한 잔 들이켜고 대웅전으로 갔다. 스님의 목탁과 불경에 맞추어 절을 올리는 불자들. 기도 삼매경은 백양사 절경의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마루 바닥에 엎드려 드리는 절이 인간이 피우는 가장 겸손한 꽃이 아닐까요?
우리 일행은 소를 휘돌아 나오는 계곡물처럼 백양사를 휘돌아 나왔다. 물이 흐르지 않는 징검다리를 건너 주차창으로 가는 길. 첫 번째 연못의 구름다리에서 정겨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마치 무지개를 타고 있는 소년들처럼 느껴졌다. 그 이야기들도 무지갯빛이리라.
천안 삼거리처럼 백양사 사거리면에 위치한 사거리 성당에 도착했다. 작은 언덕에 빨간 지붕의 작은 성당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앉아 있었다. 산상수훈의 스승 예수처럼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는 것처럼 눈에 들어왔다. 지팡이를 짚고 성당 마당을 가로질러 가는 할머니의 풍경에서 어떤 신자들이 모여 기도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우 신부가 쌀을 씻어 밥을 안친다. 그리고 식칼을 들고 텃밭에 가서 토종 배추와 갓을 안고 들어온다. 185cm의 꺽다리 아우가 주방에서 점심을 준비하는 모습이 어색하지만 참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삼겹살도 지글지글 프라이팬에서 익어갔다. 참으로 아름다운 점심이다. 엉덩이짝만한 배추잎 반을 잘라 삼겹살에, 된장 한 술에, 볼태기찜은 잊지 못할 추억의 맛이었다.
사과와 배를 깎아서 꽃과일 접시를 만들자, 부산 아우가 감탄사를 연발한다.
'아, 이 예술. 행님예-, 오늘 마 감동이네 예-. 몇 달 끄떡없이 살 수 있는 에너지 학실히 충전했다 아닙니꺼!"
덧붙이는 글 | 오마이 블러그에 가시면 노래마을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햇볕 한줌 될 수 있다면' 노래와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