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한반도 평화포럼-민주당 정국 주도하에서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 전망'이란 제목으로 열린 이 토론회는 게리 애커먼(Gary L. Ackerman) 하원의원과 김원웅 열린우리당 의원이 기조연설을 하고, 셀리그 해리슨(Selig S. Harrison) 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데이비드 스트라우브(David Straub) 존스홉킨스대학 교수가 주제발표를 했다. 또 서재정 코넬대 교수, 캐서린 문(Katharine Moon) 웨슬리대 교수 등 두 사람의 코리아-아메리칸이 패널로 참여했다.
이 행사를 주관한 한인유권자센터의 김동석 소장은 "코리안 아메리칸(미주 한인)은 한국과 미국을 더욱 더 좋은 관계로 만들어야만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다"면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한반도의 급박한 상황을 모른 체 한다면 그 위기가 결국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의 위기가 된다"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의 취지를 말한 것이다.
그는 또 "민주당의 선거 승리로 현재 미정계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는 이라크 철군 문제가 되었는데, 민주당이 이 문제를 관철할 것이고 북한 핵 문제는 상대적으로 부시의 입장대로 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코리안 아메리칸의 입장에서는 지금 시기 미국의 대북 정책이 독립적으로 중요한 문제임을 부각시키는 의미가 있는 행사"라고 전한다.
이날 토론회에서 관심을 끈 것은 발제자로 나선 데이비드 스트라우브(David Straub) 교수의 발언이다.
스트라우브 교수는 "일반적인 기대와 달리 민주당의 선거 승리에도 불구하고 남은 2년간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망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신랄하게 부시 행정부를 비판하기는 하겠지만 북한 문제에 대한 실제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또 "민주당이 북한과 미국간의 직접 대화를 요구하고 이라크에서의 실패가 북한에 대한 실용적인 정책을 채택하도록 만들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만, 그같은 희망은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은 부시나 체니의 매우 강한 도덕적 가치관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실리주의적 접근법에 대한 양보는 매우 미약할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부시는 6자회담을 실제로 주고 받는 협상의 장으로 생각하기보다 북한에 대한 압력의 장으로 생각해 왔고, 그 입장이 특별히 변할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셀리그 해리슨 "북한의 방코 델타 아시아은행 계좌 풀어줘야"
그러나, 최근 미 의회가 대통령이 미국의 대북정책을 검토하고 조율할 고위직을 임명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만약 부시 대통령이 매우 명망 있는 고위 인사를 임명한다면 정책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2008년과 2009년 양국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서 새로운 전략을 세우기 전까지 그 어떤 경우라도 부시 행정부가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정책을 채택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
앞으로 부시 집권 2년간 북한이 핵물질 생산을 계속하고 미국의 정책변화가 미미하다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협할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미국에 살고 있는 유권자들의 지속적 관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했다.
스트라우브 교수가 부시 행정부의 국무부 한국과장을 지낸 실무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주장은 상당히 '현실적'인 것으로 보인다.
다른 발제자인 셀리그 해리슨(Selig S. Harrison)은 부시 행정부가 북한 문제를 풀어 가는 과정에 대한 제언을 주로 했다. 그는 특히 현재까지의 정보에 의하면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은 아직 초기단계이므로 실용적인 외교노력으로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포기하게 할 시간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용적인 외교노력이 없으면 북한의 핵을 없앨 수 없고, 이는 일본, 남한, 대만의 핵 무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노력을 전개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북한의 방코 델타 아시아은행의 정상적인 계좌를 풀어주는, 대북 금융제제를 완화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해리슨은 향후 6자회담의 전개과정에 대한 자신의 예측도 내놓았다. 최근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의 대화한 것에 근거해 보면, 북미간 국교정상화 논의가 된다면 북한은 더이상 핵이나 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 국제원자력감시단의 감시활동도 허용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금융제재조치를 완화하고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뺄 것으로 보인다는 예측이다.
해리슨의 예측대로 6자회담이 전개될 지 알 수 없지만 스트라우브 교수의 냉정한 현실인식 촉구가 더 귀에 들어온다.
이번 토론회의 취지에 걸맞게 열정적으로 주장을 펼친 또 한사람은 패널로 참여한 캐서린 문 웨슬리대 교수였다. 문 교수는 "강의마저 연기하고 온 자신을 포함해 특히 장내를 꽉 채운, 주로 코리안 아메리칸인 청중이 일해야 하는 시간에 이런 토론회에 나선 이유가 무엇이겠냐"며 코리안 아메리칸의 역할을 특별히 역설했다.
문 교수는 "지금 당장의 문제 뿐 아니라 미 행정부의 한반도 문제에 대한 장기적 정책에 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치적 노력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코리안 아메리칸들의 지속적인 정치적 노력의 필요를 열정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와그너 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예정된 토론회 시간을 넘겨 한쪽에서는 대학 직원들이 의자를 치우는 가운데에서도 발제자와 패널들을 상대로 질문이 이어졌다.
미국 대북정책의 변화 가능성과 그에 대응하는 코리안 아메리칸들의 노력의 필요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는 마음으로 발제자나 패널들도 시간을 넘겨가며 질문에 빠짐없이 답했다. 청중들은 의자가 없어서 일부는 선 채로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진지함이 가득찬 그런 토론회였다. 오랜만에, 한반도 문제에 관한 인상적인 토론회를 미국에서 경험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