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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리 가는 길은 단풍도 고왔습니다. 투명하고 맑은 빨간색이 너무나 고운 옻나무는 단연 단풍의 왕이었지요. 노란 싸리잎, 더 샛노란 참나무 이파리, 화려함의 극치 단풍나무는 별로 없었지만 그래서 더욱 다정했습니다. 수더분한 시골처녀의 노란 저고리, 다홍치마처럼….
아, 그리고 이게 웬일입니까. 복스러운 계집아이 볼처럼 앙증맞은 '용담'꽃을 보았습니다. 게다가 계곡 아래쪽으로 군락지도 있었습니다. 남색의 복주머니 꽃이 매우 예뻐 흡사 만 원짜리 복권에 당첨됐을 때 그 기분이었습니다(그 이상 당첨된 게 없었거든요^^)!
곱게 늙는 인간은 그리 드문데, 나이 들수록 젊음이 따르지 못하는 품위와 멋스러움이 어우러진 사람을 만나기는 하늘의 별 따기인데, 자연은 어째 그리 젊고, 늙고 가리지 않고 모두 아름다운가요.
수몰마을 '산성리' 자리가 내려다보이는 곳입니다. 저 건너편에 추월산이 보이고 높고 낮은 산자락이 산수화 한 폭이더군요. 그러나 저 물속에 태자리가 있었고, 조상님 묏자리도 있었고, 납작 엎드린 초가집 쾌쾌한 단칸방에 배 쭉 깔고 엎드려 군고구마 까먹던 추억도 있을 텐데, 그 그리움은 어찌하나요.
1974년 수몰될 때 가구수는 53가구, 그리고 300명의 주민이 정든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답니다. 고향을 등지며 마지막으로 동구 밖 성황당 터에 모셔졌던 신단만 모셔왔더군요. 수령 600년 마을 지킴이 느티나무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물과 함께….
1974년, 지적부에서 영원히 사라진 산성리의 역사가 여기 있습니다. 차가운 회색 대리석 한 조각에. 그 대리석 한 조각이 고향이 되어 수몰마을 이주민들의 쓸쓸한 가슴을 달래주겠지요?
돌아오는 길, 잔자갈을 의지 삼아 깜찍한 자태를 한껏 뽐내는 쑥부쟁이꽃의 연보라색이 어찌나 투명한지 한동안 내 발걸음을 잡았습니다. '작은 것이 더 아름답다!' 삐쭉 키만 큰 다른 것들 보란 듯. ‘아! 나도 쟤를 닮고 싶다!’
하늘, 하늘엔 뭉게구름이 두둥실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내일모레 비 소식이 있더니, 그 준비작업이 시작된 모양입니다.
도반이 앞서 갑니다. ‘도반(道伴)’, 먼 길을 함께 가는 짝입니다. 비 오고, 바람 불고, 눈보라도 치고. 험한 길 함께 가려면 허구한 날 좋기만 하겠습니까? 밉기도 하다, 없으면 못살 것 같기도 하다, 귀찮아 어디 당겨버리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어디 가 이만한 도반을 다시 구하겠습니까? 소설을 쓰다 마지막엔 원점으로.
우리네 인생이 그렇게 살다 가게 돼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