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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타르 사막의 낙타 경주장을 달리고 있는 로봇 기수
ⓒ K-TEAM

올림픽을 능가하는 화려한 개막식으로 아시아인의 눈길을 사로잡은 카타르 도하. 도하에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구경거리가 있다. 바로 로봇 기수.

섭씨 45℃에 육박하는 카타르의 낙타 경주장에서 낙타를 모는 기수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로봇이다. 낙타 주인들이 경기장 주변에서 모형비행기 조종에 사용되는 것과 유사한 무선조종기로 낙타 위의 로봇기수에게 명령을 내리면 로봇이 낙타에게 채찍을 휘둘러 경기를 벌이는 방식이다.

아랍 민중의 인기스포츠는 축구지만, 카타르를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바레인·아랍에미레이트 등 중동의 부호들은 자기들만의 낙타 경주를 즐긴다. 유럽의 귀족스포츠인 승마와 마찬가지로 경주력이 뛰어난 낙타 한 두의 값은 따라서 수백만달러를 호가한다.

열사의 사막 한 복판에서 로봇 기수가 낙타를 모는 희한한 풍경이 어떻게 벌어진 것일까.

낙타 경주를 즐기는 아랍의 부호들 사이에서 원래 최고의 조건을 갖춘 기수는 바로 4살박이 남자아이였다. 2004년 이전까지만 해도 이들 낙타경주에는 주로 아프리카 수단에서 유입된 3천여명에 달하는 소년들이 기수로 활약했다.

기수의 몸무게가 가벼울수록 낙타의 기록이 좋아지기에 낙타 주인들은 아이들에게 소량의 식사만을 제공했고 결국 깡마른 수단의 소년들이 카타르의 땡볕 밑에서 낙타몰이를 하는 모습이 오랜 세월 지속됐다.

2003년 말, 카타르의 이런 참혹한 실태가 서방세계에 대대적으로 알려지자 카타르 정부는 큰 곤경에 빠지게 된다.

두바이와 경쟁해 도하를 중동권의 주요경제허브로 변신시키려 애를 쓰던 카타르 지도부는 국제인권단체의 거센 항의에 직면하자 아동학대시비를 잠재우면서도 수천년의 역사를 지닌 낙타경주를 계속할 수 있는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결론은 바로 로봇 기수를 개발하는 것. 세계의 주요 로봇업체가 카타르 정부의 경쟁입찰에 초청받았고 결국 스위스의 'K-팀'이라는 업체가 로봇기수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이들이 오랜 시행착오 끝에 개발해 납품한 로봇기수가 바로 'KMEL'(사진)이다. KMEL은 컴퓨터와 GPS 수신기를 내장하고 있으며 낙타주인이 조작하는 무선조종기의 지시에 따라 낙타에게 채찍을 휘두르거나 고삐를 잡아당기며 기수로 활약한다.

낙타가 로봇에게 거부감을 느껴 저항하지 않도록 로봇은 4살 소년과 비슷한 몸무게를 지니고 있으며 인간의 모습을 본따 외형을 디자인했다.

결과는 대성공. 지금 카타르를 비롯해 아랍권의 낙타경주는 이제 KMEL이 수단의 어린 소년들을 급속하게 대체하고 있다.

수단에서 온 수천여명의 어린 소년들은 그러면 어떻게 됐을까? 로봇기수소식을 처음 전한 <와이어드>의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지금 아무런 대책도 없이 수단으로 돌려보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문제는 지금 수단의 다르푸에서는 금세기 최대 규모의 대량학살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로봇기수 덕에 낙타경주장의 열사에서 '해방'된 수단의 어린 소년들은 이제 더욱 참혹하게 변해버린 고국이라는 또 하나의 지옥 속으로 대책없이 버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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