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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희 기자]제25회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을 맞아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여아 성폭력의 문제를 점검해 보았다. 여아 성폭력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원인과 피해 가족에게서 들어보는 해결 방안, 최근 아동 성범죄자 공개수배로 미국 내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오프라 윈프리 쇼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짚어 봤다.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 국내외 행사 다양

올해로 25번째를 맞는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을 맞아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다양한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달 26일 청계천 광장에서 열린 '여성폭력추방 한마당'을 시작으로, 12월 4일 '제2회 성 구매자 중심의 성매매 근절운동 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와 6일 '가정폭력 피해자 국가 손해배상 소송 토론회' 등이 개최될 예정이다.

@BRI@중국·일본·몽골 등 아시아 3개국에서도 각각 '가정폭력과 여성의 정신건강 및 아동폭력 심포지엄'(12월2일), '여성인권운동가상 야요리상 시상 및 심포지엄'(12월10일), '여성폭력에 대한 유엔 연구 소개 및 길거리 캠페인'(11월25일) 등이 열린다.

'세계여성폭력추방의 날'은 도미니카공화국의 세 자매가 독재에 항거하다 살해당한 것을 기념해 81년 11월 25일 제정됐다. 이후 91년 미국 여성국제지도력센터에 모인 세계 여성운동가들이 세계인권의 날인 12월 10일까지 16일간을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으로 정했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아빠 반바지 안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성기를) 움켜쥐더래요. 그래서 아빠가 하지 말라고 했더니 '씨익' 웃더라는 거예요. 엄마 가만히 있어봐, 그러면서 혀로 목 뒤까지 핥기도 하고…."

지난 6월께 경기도의 한 어린이집에 다니던 5살 전후의 아동 7명이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동생의 성기를 입에 넣거나, 갑자기 부엌칼을 들고 "어린이집 운전기사 아저씨를 죽이러 가자"고 나서기 일쑤라는 것. 산부인과 진료 결과 성추행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 나왔다. 하지만 경찰은 "엄마들이 아이들의 얘기만 듣고 사건을 확대시킨 것 같다"며 수사 2개월 만에 사건을 종결시켰다.

최근 논란이 된 국회 어린이집 성폭행 사건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다. 지난 4월 5살 여아 2명이 대낮에 국회에서 성폭행과 강제추행을 당했지만, 경찰은 "장소나 시간 등 아이들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며 사건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증거도 증언도 없는 아동성폭력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는 2004년 627건, 2005년 684건, 2006년 7월 현재까지 433건 등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증거가 없어 기소조차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강간이 주류를 이루는 일반 성폭력과 달리아동 성폭력은 (강제) '추행'이 많아 상처 등 외부 증상이 거의 남지 않는다. 유일한 증거는 아이들의 증언인데,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20명 중 19명꼴로 기소 없이 그대로 풀려난다는 것이 현장 활동가들의 전언이다. 그나마 기소된 1명도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받고 재판 즉시 자유로운 몸이 되고 있다.

실제로 국가청소년위원회가 지난 5년간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1만409명의 처벌 내용을 분석한 결과 집행유예로 풀려난 경우가 45.6%로 가장 많았고, 벌금형이 35.4%, 징역형은 단 19%에 불과했다. 5명 중 4명은 유죄를 선고 받고도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있는 것이다.

솜방망이 처벌...재범률 100%

이에 따라 재범률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아동 성범죄자의 경우 재범률이 100%에 달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실제로 올해 초 용산에서 11살 초등학생을 성추행한 후 살해한 50대 남성은 지난해 5월 5살 여아를 부모가 보는 앞에서 성추행했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난 전과 9범이었고, 지난 5월 초등학생 10명을 성폭행해 검거된 30대 남성은 아동강간치상으로 5년여 복역한 후 출소한 지 16일 만에 범행을 저질렀다.

이에 법무부는 지난 10월 27일 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유사강간 행위 처벌 기준을 1년 이상에서 3년 이상으로 강화했다.

또 오는 1월까지 ▲교정시설 내 성범죄자 치료 프로그램 개발 및 강제 치료 ▲성도착증 성범죄자의 전문 치료시설 격리 치료 ▲지역사회 연계 치료 등 종합적인 재범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하지만 지난 2003년 하반기부터 시행하고 있는 '성범죄자 재범방지 교육'에도 불구하고, 같은 기간 오히려 재범률이 늘어나는 등 정부 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최경숙 해바라기아동센터 소장은 "초범이라 할지라도 잡힌 것이 처음일 뿐, 여러 명에게 같은 수법으로 범죄를 저지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특히 우리나라처럼 성폭력 가해자의 재범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나 아동 성폭력 피해를 조사하기 위한 전문 수사기관과 인력 등이 전무한 상황에서 재범률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뒷북 대책 허사... 첫 수사부터 성의를"
송기운 한국아동성폭력피해가족모임지원센터 대표

아동성폭력이 급증하고 있다. 더 심각한 건 가해자의 30% 이상이 미성년이며, 13세 미만 아동이 가해자인 경우도 늘고 있다는 것. 송기운(사진) 한국아동성폭력피해가족모임지원센터 대표에게 실질적인 해결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 아동성폭행 수사에 대한 신뢰가 높지 못하다.
"수사지침서에 맞게 수사하는 예는 극히 드물다. 또 전담 검사가 초동수사 단계부터 사건을 처리하지만 보통 1년 단위로 담당자가 바뀌어 전문성을 기대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 가해자의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대책은 없나.
"실제로 4~5세의 아동이 또래에게 성추행을 당하는 사례를 봤다. 현행법상 13세 미만은 처벌이 되지 않는다. 연령을 2세 낮출 것을 요구하고는 있다."

- 아동성폭행 처벌의 허점이 있다면
"센터 통계 자료에 따르면 손가락 삽입에 의한 성폭행이 성기 삽입을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손가락 삽입은 추행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처벌 수위도 낮다."

- 사건 발생 시 피해 아동의 부모들이 더 당황하기 마련이다.
"성폭력의 경우 '쉬쉬해서도 안 되고 용서해서도 안 된다'는 말이 있다. 피해 사실을 드러내기 꺼려하면 이는 피해 아동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 수사에 과감하게 참여해야 한다."

- 효과적인 예방 교육은.
"누군가 몸을 만지거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상대방의 옷 색깔, 머리 모양, 차 번호판 등을 정확히 기억하라고 가르쳐야 한다. 수사에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

아동 성범죄자 공개수배 나선 '오프라 윈프리 쇼'

▲ 오프라 윈프리는 아동 성폭력범 공개 수배를 위해 9세 때의 성폭행 경험을 털어놓았다.
ⓒ온스타일 홍보팀
러시아 고아로 5살 때 입양돼 5년여간 양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은 미샤는 '오프라 윈프리 쇼'를 통해 양아버지의 친딸 레이첼을 만났다.

레이첼 역시 5살 때부터 친아버지에게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이지만, 자신이 이 사실을 밝히지 않음으로써 미샤까지 희생됐다며 진심 어린 용서를 구했다. 양아버지는 FBI에 의해 아동 성폭력범으로 검거됐다.

미국의 인기 토크쇼 '오프라 윈프리 쇼' 가 지난해 말부터 방영하기 시작한 '아동 성폭력 퇴치' 시리즈가 최근 국내 케이블 온스타일에서 방영되면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이 시리즈는 아동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선 지역 공동체와 시민 등 온 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협력해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오프라 윈프리는 지난해 10월 자신의 홈페이지(www.oprah.com)에 미 중앙정보국(FBI) 수배 명단에 오른 아동 성폭력범의 얼굴을 상시 공개하고, 범인 검거에 기여한 제보자에게 10만달러(약 1억원)의 포상금을 걸었다. 그 결과 첫 방송(2005.10.4)이 나가고 이틀도 채 되지 않아 두 명의 성폭력범이 검거됐고, 그 후 다섯 번째 방송이 나가기까지 3명의 성폭력범이 더 잡혀 총 5명이 검거되는 성과를 낳았다.

'오프라 윈프리 쇼'는 피해자의 육성 증언으로 여아·남아·근친 성추행 등 아동 성폭력에 관한 다양한 사례를 보여주고, 성인이 되어서도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피해자와 가족의 모습을 다뤄 아동 성폭력의 심각성을 일깨웠다.

방송은 특히 가해자의 입을 통해 범행 과정과 심리 상태를 부모들에게 알리고, 피해자들의 치유를 돕기 위해 전문가들의 조언도 함께 제시하는 등 아동 성폭력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을 시도해 호평을 받았다.

한편, '오프라 윈프리 쇼'를 통해 검거된 첫 번째 아동 성폭행범 윌리엄 데이비스(33)는 올해 4월 26일 미국 포시 고등법원에서 징역 52년을 선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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