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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은행이 VIP고객을 대상으로 진행한 뮤지컬 초청 이벤트(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 오마이뉴스 김시연
[사례] 이벤트 회사에 근무 중인 김아무개씨는 최근 한 은행의 VIP 행사를 기획하게 되었다. 기획의 큰 틀은 다른 은행에서 실시하는 보통의 음악회 초청이나 강연회 같은 것을 뛰어넘어 좀 더 차별화된 것을 요청받았다.

그래서 고객 당사자가 아닌 고객 자녀를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였다. 고객 자녀는 은행 입장에서는 미래 고객일 뿐 아니라 자녀 서비스가 고객에게 더 큰 만족을 주기 때문이다. 행사 내용은 VIP 고객 자녀들끼리 맞선 행사로 결정이 났다.

행사를 진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김씨는 지갑에 현금이 떨어진 것을 알고 은행 ATM기를 통해 현금을 인출했다. 은행 업무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천 원이 넘는 수수료를 부담했다. 현금인출 영수증을 들여다보면서 김씨는 마음속에 상실감이 들었다. 자신이 기획한 행사에서 부자 부모를 둔 젊은 친구들이 화려한 맞선 행사 서비스를 받는 모습이 영수증 위로 겹쳐졌기 때문이다.

@BRI@금융기관, 부자 떠받들기는 '무죄'?

보통 사람들의 머릿속에 심어져 있는 은행의 이미지는 대다수 사람들을 위해 돈을 불려주기도 하고 빌려주기도 하는 믿을 만한 준공공기관 같은 곳이다.

그런데 최근 금융기관의 자율경영이 자리 잡아 나가면서 은행은 수익을 위해 그간 은행의 오랜 친구를 외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듯 하다. 아주 작은 금융거래에도 수수료를 턱없이 높게 부과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수료를 부담하면서도 그만큼의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에 비해 일정 이상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자산가들에게는 놀라운 수준의 특별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은행도 이제 하나의 기업으로 평가하는 관점에서 당연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업으로서 평가한다고 치면 은행의 금융서비스에 대해서는 더 많은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유없이 수수료를 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금융상품 판매 과정에서 지켜야 할 원칙이 무수히 많다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

일반 기업이라면 당연히 평가받아야 할 많은 것들이 은행에서는 비켜가고 있다. 이것은 역으로 이야기하면 은행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비용을 내서 갖게 되는 자신의 권리를 너무 소홀히 한 탓도 있다.

경쟁력이 떨어지면 기업은 서비스를 강화해서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은행을 준공공기관으로 인식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은행에 지나치게 관대하다보니 은행 서비스는 자꾸만 뒤로 후퇴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의식부터 냉정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 자신이 부담하고 있는 여러 형태의 수수료만큼 서비스를 요구하고 원칙에 부합하는 금융거래를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결국 은행들이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거듭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수수료 백만 원 내도 서비스는 '열외'

샐러리맨 김씨가 내는 수수료는 적지않다. 김씨는 직업특성상 금융거래를 알뜰하게 하지 못한다. 늘 일에 쫓겨 하루를 보내다 보면 지갑은 비어 있는 건 저녁 때쯤 확인하게 되고 인터넷뱅킹도 하기 어려워 ATM기에서 타행이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김씨가 금융거래에서 부담하는 수수료를 따져보니 금융거래를 위해서만 월 2만원이 넘는다. 거기에 적립식 펀드를 주식형으로 월 50만원씩 붓고 있고 500만원 쌈짓돈을 채권형 펀드에 넣어 두고 있다.

금융상품을 위한 수수료는 월 1만2000원 이상, 갖고 있는 펀드 모두 3년간 10% 수익이 난다고 가정하면 3년간 60만원이 넘는 수수료를 부담하게 되어 있다. 거래 수수료는 3년간 누적되면 72만원, 둘을 합하면 3년간 132만원 이상의 수수료를 부담하는 것이다.

김씨는 이렇게 적지 않은 수수료를 내고 있지만 정작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받고 있지 못하다. 김씨가 주최한 은행 VIP 행사에서는 자녀 맞선 서비스 외에도 음악회 초청, 뮤지컬 관람, 재테크 유명강사 초청 강연회 등 다양한 것들이 있었다. 게다가 이미 자산가들은 김씨가 매월 부담하는 금융거래 수수료를 대부분 면제받고 있다.

금융상품에 투자할 자산이 이미 많기 때문에 서비스를 받는 것이 당연한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화려한 수준의 서비스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펀드 가입 시 30분 이상 기다려서 10분 상담하고 돌아오는 불편함은 없길 바라는 것은 무리한 것이 아니다. 최소 3년간 100원이 넘는 수수료를 부담하지만 김씨가 은행에 방문하는 경우는 1년에 고작해야 한두 번 정도이기 때문이다.

▲ 은행 근무시간 외나 타행이체시 ATM기를 이용하면 적게는 몇 백원에서 몇 천원에 이르는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
ⓒ 오마이뉴스 김시연

철새전략이 금융서비스 끌어올린다

당당해지자. 그리고 맘에 안 들면 바꾸자. 금융기관 철새전략이 금융서비스를 끌어올린다.

모 종금사에서는 최근 CMA계좌가 인기를 끌면서 갑자기 몰린 상담인원을 감당하지 못해 인터넷 예약을 받고 있다. 즉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방문을 하게 되면 기다리지 않고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더불어 PB실까지 전부 개방해서 월급통장을 바꿔주고 있다. 거기에 연봉에 따른 차별은 없다.

증권사와 종금사들은 이참에 은행의 고객들을 빼앗아가고자 이처럼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실제로 CMA계좌 돌풍으로 은행은 월급통장 고객들을 빼앗기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은행도 이전과 다르게 CMA계좌를 겨냥한 경쟁력 있는 서비스를 하나 둘씩 내놓기에 이르렀다.

은행에서는 돈이 별로 안 되는 평범한 고객이 대단히 중요한 고객이라는 것이 금융기관별 서비스 경쟁으로 새롭게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김씨는 통장만 바꿔도 3년간 거래 수수료를 절반 이상 아낄 수 있다. 인터넷 예약제도를 이용해서 30분 기다리는 불편 때문에 꺼렸던 금융기관 방문횟수를 늘려 금융상품 정보를 더 얻을 수도 있다.

이렇게 그때그때 유리한 쪽으로 자꾸 비교해서 교체해주는 철새전략만 있어도 금융서비스는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아직 금융거래에 있어 은행이 독점하고 있는 제도가 몇 가지 있어 다소 불편함은 있어도 은행에서 기다리고 차별받는 불편함에 비할 수 없다.

서비스 양극화? 서민이라고 무시하면 혼날걸

김씨처럼 거래 금융기관을 서비스의 질에 따라 바꿔주는 고객이 늘어난다면 당연히 금융기관들은 서비스경쟁을 더 치열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소수의 부자 고객들만 갖고 경쟁해서는 안 될 것이 뻔하다. 서민들을 무시한 경쟁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소수의 부자들에게 주어지는 지나친 서비스, 그에 비해 수수료를 내고도 은행직원의 친절한 웃음 외 실질적인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서민의 금융거래 현실은 당연히 개선될 것이다.

서비스 양극화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금융소비자의식으로부터 극복될 수 있다. 유난히 까다로운 소비자로 '얼리어댑터 강국'이라고 평을 받는 우리가 유난히 금융기관에 대해서만큼은 관대하다. 아마도 금융산업을 소비한다는 개념이 자리잡지않은 탓일 것이다.

금융기관이 수익을 추구하는 기업들이라면 우리는 상품의 겉과 속을 다 뒤집어 따져보고 최고의 것을 잘 골라내는 소비자 노릇을 톡톡히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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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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