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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길을 따라 산모퉁이도 휘돌아 간다
바람의 길을 따라 산모퉁이도 휘돌아 간다 ⓒ 김선호
김장이다 뭐다 해서 바쁜 11월 동안 산행을 자주 다니지 못했다. 산에 가지 않은 동안에도 산이 자주 생각났다. 특히, 주말이면 산에 대한 생각이 더욱 간절해지곤 했다. 매번 주말이면 가족산행을 나선 지 어느덧 세 해를 훌쩍 넘겼다. 주말이면 당연히 산행에 나서곤 했으니 산에 가지 않은 동안 산행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 있었던 내가 이상할 것도 없었다.

12월의 첫째 일요일, 거의 한달 만에 산행에 나섰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가까이에 산이 있어 얼마나 행복한가 싶어 오랜만에 찾은 천마산 입구에서 한참동안 주변을 살펴보았다. 지난 가을에 오고 이제는 겨울, 그새 한 계절이 바뀌어 있다.

굴뚝으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숲속의 쉼터
굴뚝으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숲속의 쉼터 ⓒ 김선호
해발 812m, 남양주에 위치한 천마산은 수도권과 가까운 탓에 늘상 사람들로 붐비곤 하는 산이다. 수도권과 가까운 탓도 탓이거니와, 무엇보다 산행의 맛을 골고루 전해주는 산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천마산을 찾는다.

@BRI@오늘(3일)은 유난히 추운 일요일이라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덕분에 고요한 겨울숲에 깃든 정적을 깨뜨리는 일도 없이 숲의 고요 속으로 몰입해 가는 산행이 될 것 같다.

등산로 초입은 널따란 계단길로 시작된다. 계단을 올라 산으로 들어가는 일은 그리 유쾌한 일이 못 된다. 계단에 대한 거부감은 나 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인지 계단 옆으로 작은 오솔길이 나긋하게 뻗어있다. 넓은 길 놔두고 옆길로 새는 엄마를 무시하고 아빠를 따라 계단길을 오르는 아이는 보란 듯 계단을 뛰다시피 오른다.

계단길이 끝나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을 걷다 보니 뽀얀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휴게소 건물이 보인다. 매점을 겸한 임시건물인데 여름철엔 비워두었다가 가을에서 봄까지 산행객들을 상대로 음료수와 간단한 먹거리를 파는 곳이다.

나뭇잎 대신 여백의 공간을 마련한 겨울 숲
나뭇잎 대신 여백의 공간을 마련한 겨울 숲 ⓒ 김선호
연통에서 품어져 나오는 참나무 연기에 이끌려 휴게소에 들어간다. 오늘은 유난히 추운 날이라 따뜻한 국물이 간절하기도 하였다. 된 추위에 볼이 빨개진 아이를 위해 라면을 시키고 남편과 나는 동동주에 감자전을 주문한다. 휴게소 안 작은 공간을 통나무 난로가 따뜻하게 데워주니 뭉툭하게 생긴 나무의자와 탁자에 앉은 사람들 모두 더 없이 편안해 보인다.

바깥주인이 드럼통을 열어 연료인 참나무 가지를 더 집어넣는 사이 안주인은 널따란 채반에 갓 부쳐온 감자전과 동동주를 내온다. 뜨끈한 라면 국물에 동동주를 한잔씩 나누며 오랜만에 나서는 산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이 마냥 푸근하였다.

양지엔 마을을 품고, 음지엔 눈을 품고...
양지엔 마을을 품고, 음지엔 눈을 품고... ⓒ 김선호
참나무가 타면서 내는 특유의 향기에 그만 온몸이 노곤하게 풀어지려는 걸 추스리며 휴게소를 나섰다. 산길에 눈이 쌓였다. 엊그제 내린 눈이 그대로 녹지 않고 쌓인 모양이다. 산행을 마치지도 않고 휴게소를 들른 이유는 휴게소의 마감시간이 5시이기 때문이다. 늦게 시작된 산행이 끝나면 5시가 넘어 있을 것 같다.

낙엽이 되어 떨어져 나간 나뭇잎과 낙엽 위에 쌓인 눈을 침묵으로 바라보고 있는 겨울나무들을 보며 산을 오른다. 오래 바라볼 것도 없는 휑한 겨울 산. 여름 한철 무성했던 푸른 잎들을 대신해 침묵과 여백의 공간이 겨울 숲을 대신하고 있다. 이젠 산에 와서 숲을 볼 것이 아니라 당신의 내면을 바라보라고 엄숙하게 타이르는 것만 같다.

바위을 타고 넘고 가파르게 뻗어간 산줄기를 올라 정상으로 향한다
바위을 타고 넘고 가파르게 뻗어간 산줄기를 올라 정상으로 향한다 ⓒ 김선호
산모퉁이를 휘돌아 다시 오르막길을 얼마간 걸으면 약수터가 나온다. 추운 날씨에 올라오느라 고생했다고 위로라도 건네는 모양인지 약수는 마시기에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천마산이 해발 고도가 그리 높지 않다고 얕보다가 된통 혼이 나는 구간이 거기서부터 기다린다. 약수터 위로 가파른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깔딱고개'까지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잠시 완만한 능선길이나 그것도 잠시 곧이어 암벽이 눈앞을 가로막는 험난한 코스가 다시 이어진다. 암벽과 가파른 오르막을 반복하는 길은 정상까지 이어진다. 그러니 천마산은 계단 길로 시작된 등산로 초입부터 정상까지 결코 만만치 않은 길인 셈이다.

조금 여유를 찾는 구간은 깔딱고개에 이르러 잠시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구간이 전부다. 게다가 지난번에 내린 눈으로 위로 오를수록 길이 미끄러우니 겨울산행은 특별히 조심해서 올라야 한다.

정상은 끝이 아니다. 천마봉에서 바라본 멸도봉
정상은 끝이 아니다. 천마봉에서 바라본 멸도봉 ⓒ 김선호
특히, 정상석 부근이 바위로 되어 있어 매우 미끄럽다. 눈이 내리고 추운 날씨가 이어지니 쌓인 눈이 그대로 얼어붙어 있다. '나 정상 찍고 간다' 누군가 눈 위에 새겨 놓은 글씨가 그대로 남아 웃음을 자아낸다. 장난기가 발동한 아이도 그 옆에 한마디 보탠다. "나도."

정상 주변에 까마귀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닌다. 눈이 쌓여 있어서 까마귀들의 검은 색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고 추운 날씨에 먹이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은지 오늘따라 까마귀가 시끄럽게 깍깍 댄다. 사실은 천마산에서 지난 얼마동안은 까마귀를 보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독수리 때문이다.

한동안 남양주시에서 천마산을 찾는 독수리를 위해 먹이를 공급해 주며 독수리떼를 유치(?)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천마산을 오르다 보면 독수리가 비행하는 보기 드문 장면을 심심찮게 목격하기도 했다. 그 많던 독수리는 다 어디로 갔는가. 그 독수리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들을 몰아낸 것은 조류독감 때문이었다.

하루를 마감하는 해가 서산으로 지고 있다.이제 하산을 서두른다
하루를 마감하는 해가 서산으로 지고 있다.이제 하산을 서두른다 ⓒ 김선호
조류독감이 유행하던 그 해부터 먹이를 뿌려주며 독수리를 유치하던 시에서 먹이공급을 중단했고 그러면서 차츰 천마산을 찾아오던 '겨울의 진객' 독수리는 모습을 감췄던 것이다. 까마귀만 어지럽게 나는 천마산 정상에 서 있자니 멋진 비행솜씨로 감탄을 자아내던 독수리떼가 갑자기 그리워진다.

'조류독감 물렀거라' 호통치듯 날아오르는 독수리떼를 천마산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원한다. 기온이 낮은 날이라서 그런지 오늘따라 서해를 물들이며 떨어지는 저녁 해가 유난히 붉어서 아름답다. 지는 노을을 배경으로 더 깊은 침묵의 시간으로 침잠하는 천마산을 뒤로하고 하산을 서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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