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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도 빠짐없이 면봉이는 날 찾았다. 날 찾은 건지 내가 그의 집에 침입한 꼴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리 반가운 친구라도 매일 찾아오면 귀찮을 텐데, 이건 말도 못하는 막대 사탕 같은 놈이 매일 찾아오니 겁은 나지 않았지만 성가시긴 했다.
어떤 날은 내 앞에서 천장에 줄을 달아 목을 매기도 했다. 난 반쯤 눈을 뜨고 중얼거렸다.
"쑈를 한다, 쑈를 해."
또 어떤 날의 꿈에는 추근덕대는 껄떡이 괴한이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도통 뭐라고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워우워우우우웡…."
"얘 뭐래니. 이것들은 하나같이 말뽄새 하고는…."
이 껄떡이는 면봉이와는 다르게 기분이 나빴다. 뭐랄까, 위험하다는 본능적인 불안함과 사악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면봉이가 불쑥 달려들더니 껄떡이의 목에 줄을 칭칭 감아 질질 끌고나가는 것이 아닌가.
"저거는 살아생전에 로데오를 했나, 온갖 줄이란 줄은 다 들고 다니네…."
하지만 면봉이는 분명 나에게 원한이 있거나 괴롭히려는 놈은 아닌 것 같았다. 오히려 도와주거나 외로워서 찾는 것일 지도….
녀석은 장장 한 달 반 동안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타났다. 지 혼자 구석에 앉아 있거나 심심하면 목을 매달고 대부분 나를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혼자 놀기에 심취해 보였다. 난 그럼 또 면봉이를 구박했다.
"저런, 왕따 새끼…."
그마저도 재미가 없는지 어떤 날은 그 붕대감은 얼굴로 가만히 나를 들여다 보고 있기도 했다.
"어디가 얼굴이냐, 면봉 치워라."
그러면 또 목을 맨다. 저거 병이다, 병.
아무리 좋은 벗이라도 너는 너의 길이 있고 나는 나의 삶이 있다
실제로 이 시기에 난 몸무게가 7kg 정도 쫙 빠졌다. 겨울 내내 둥글둥글 미쉐X 타이어처럼 살이 불어 있던 터라 나름 고마운 일이기는 했지만, 이게 정상적으로 빠지는 것이 아닌 까닭에 온몸에 기운이 없고 피곤하기만 했다. 아무리 나에게 해를 끼치는 놈은 아니라지만 오래 있으면 나에게도 그에게도 좋은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주인 영감한테 물어는 봤니?"
"물어본다고 얘기하겠어?"
<여기자가 파헤친 조선왕릉의 비밀>의 저자이신 '파헤친 여기자'님과 me영준 기자님이 행차하셨다. 마치 '퇴마록'의 박신부와 현암처럼 방안 곳곳을 예리하게 훑어보시며 어딘가 숨어있을 면봉이의 존재를 쫓는 듯했다.
"태극기 떼! 미쳤어, 미쳤어! 저 태극기의 기를 니가 어떻게 당할라고 방안에다 저렇게 큰 태극기를 달아둬?"
그랬다. 군대는 아니갔지만 내 대한민국의 여아로써 애국심을 잃지 않고자 벽에 대형 태극기를 달아놓았었다. 그러나 나처럼 예민한 종자들에겐 좋을 게 없다는 것.
물론 믿지 않는 이들에겐 말도 안 된다는 소리를 듣겠지만 또 세상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기운과 또 그 기운을 유난히 잘 느끼는 이들이 있지 않은가. 꼬냥이가 그런 종자이니 삶이 폭폭할 수 밖에….
그날, 시장에 들러 막걸리 몇 병과 팥시루떡, 북어를 샀다. 이사를 오면 터주신에게 고사를 지내야 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살면서 한 번도 그런 절차를 밟은 적이 없었는데, 세렝게티처럼 기가 쎈 곳에는 한 번 정도 입주 신고를 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일치가 된 것이다.
옥상 사방에 떡과 막걸리를 놓고 터주 할배에게 인사를 드리고 면봉이에게도 안녕의 시를 읊어주었다.
"이 밤사 복댕이도 지새우는 삼경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면봉은 고이 말아서 나빌레라…."
고사를 지내고 들이켠 막걸리 맛이 어찌나 달짝지근하던지 내가 마시는 술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면봉이는 내 앞에 다신 나타나지 않았고, 그동안 밤마다 느껴졌던 알 수 없는 불안감도 사라지게 되었다.
배추도사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또 우리 폭폭한 배추 도사가 사실대로 털어놓을 리도 없고, 또한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해도 이미 면봉이는 세렝게티를 떠난 것 같으니 뭐, 묻어두어도 될 기억 아니겠는가.
다만, 바람이 있다면 면봉이가 이제 더는 구석에 머리를 박아대고 목을 매다는 등 궁상맞은 혼자 놀기는 그만 했으면 하는 것. 그래도 같이 죽자고 달려들고 광년이 널뛰듯 사람 괴롭히는 귀신들에 비해 우리 면봉이는 착하디 착한 순딩이 귀신이니까, 이 정도는 빌어줘도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