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초당파적 기관인 이라크연구그룹(ISG)은 6일(현지시각) 보고서를 내고 조지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결론짓고 오는 2008년 초까지 미군 철수를 권고했다.
이라크연구그룹은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과 리 해밀턴 전 하원의원 등 공화·민주 원로 인사 5명씩으로 구성된 중립 기관이다. 또 이들의 권고는 의무 사항은 아닌 참고사항이다. 따라서 이라크에서 미군 철군은 "테러리스트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던 부시 대통령이 ISG의 제안을 받아들일지는 아직 판단할 수 없다.
@BRI@이날 ISG가 발표한 160쪽의 보고서는 이라크 정책과 관련, 모두 79개의 항목을 권고했다. 크게 나눠보면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현재 이라크 상황에 대해 대단히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ISG는 보고서를 통해 "현재 이라크 상황은 엄중하고 악화되고 있다"며 "만약 상황이 계속 악화된다면 그 결과는 심각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ISG는 "혼란으로 갈 수 있는 단 한번의 실수로도 이라크 정부가 붕괴될 수 있으며 (이라크 국민들에게) 인도적인 재앙이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ISG는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기존 접근법을 고수하는 것은 더 이상 실행가능하지 않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둘째 ISG는 오는 2008년 1분기 말까지 경비에 필요한 필수 병력을 제외하고 이라크 주둔 14만명의 미군을 철수하라고 권고했다.
ISG는 철수와 동시에 미군의 역할은 이라크 군에 상주하면서 이라크 군을 훈련하거나, 일부는 신속기동군으로 임무를 수행하며, 수색 및 구조, 정보 제공 등을 하라고 권고했다.
현재 이라크 군 부대에 상주하면서 이라크군을 훈련시키고 있는 미군 병력은 3000~400명인데 이를 1만~2만명 수준으로 늘리라고 ISG는 권고했다.
막대한 미군 사망자 고민
ISG는 "이라크의 미래와 관련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제 이것이 이라크인들의 책임"이라며 "미국은 이라크에서의 역할을 이라크 국민들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ISG는 "미군이 계속 대규모 주둔하면 이라크 정부가 종파분쟁을 끝낼 정치적 행동을 해야 함에도 이를 미룬 채 미군에 의존할 것"이라며 "이라크 정부의 정치적 행동을 자극하기 위해서"라는 말도 했다.
또 아프나기스탄에서 알 카에다와 탈레반 세력의 부활에 대처하기 위해서 미군을 증파할 필요성과, 이란과 북한을 포함해 다른 지역에서 안보관련 유사시에 대비해야 할 필요성도 언급됐다. 현재 미군 가용 지상군의 70%가 이라크에 있는 상황에서 다른 지역에서의 유사 상황에 대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미군 철수를 권고한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우선 이라크에 미군이 주둔하는 것 자체가 이라크 국민들의 대외 저항감을 격화시켜 저항세력의 힘을 더 크게 하고 있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계속 나왔었다.
이라크 주둔 미군 사망자 숫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점도 고민거리다. ISG가 보고서를 발표한 날 미군 10명이 죽는 등 이제까지 사망자 숫자는 2910명에 이른다.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1~2달 안에 3000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막대한 군비도 문제다. 지난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 이후 전쟁비용은 4000억달러에 이른다. ISG는 "현재 매달 800억달러의 전비가 소모되고 있다"며 "제대 병사에 대한 각종 보장 및 장비 교체 등을 감안하면 전비가 최대 2조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라크에서 미군이 철수하고 최소한의 병력만 남게 되면 전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부시 행정부 중동 정책 변화 촉구
ISG의 보고서에 가장 눈에 띄는 대목 가운데 하나가 이라크 안정화를 위해서 주변 국가인 이란 및 시리아와의 적극적인 협상을 권고한 점이다.
ISG는 "이란과 시리아의 능력 및 이라크에 대한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미국은 건설적으로 이들과 관여(engage)해야 한다"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중동사태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으면 미국의 목표를 이룰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이제까지 북한은 물론이고 역시 악의 축으로 지목했던 이란 및 시리아와의 대화도 거부해왔다. 특히 이란은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들어 유엔 안보리를 통한 제재를 추구해왔다. 시리아 정부에 대해서는 테러리스트들이 시리아-이라크 국경 지대를 마음대로 이동하는 것을 방관하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ISG가 이란 및 시리아와의 적극적인 협상을 권고한 것은 미군 철수 이후의 이라크 안정화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일단 이란의 경우 이라크 국민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시아파 국가다. 특히 유전 지대인 이라크 남부는 대부분이 시아파다.
미군 철수 뒤 이란이 이라크 안의 시아파를 노골적으로 지원하거나, 시리아가 저항세력의 배후지 역할을 한다면 이라크 안정화는 이뤄질 수 없다. 결론적으로 ISG 보고서는 부시 행정부의 대 중동 정책 전반을 바꿀 것을 요구한 셈이다.
전 미 국무부 관리였던 존 알터맨은 6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ISG의 보고서는 (부시 행정부) 패러다임을 바꾼 것으로 대단히 정치적인 영향이 클 것"이라며 "보고서는 바그다드보다는 오히려 워싱턴에 훨씬 더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