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사람이 지나가면 개가 짖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밤새 우는 것은 발정 때문이라고 한다. 암놈이 주기적으로 발정을 하면 수놈들이 찾아가야 하는데 갈수 없으니 밤새 짖어댄다고 현지 주민이 일러준다. 정부에서 개를 거세할 것을 권장하고 있으나 주민들이 잘 지키지 않는다고 했다.
집주인이 낮이면 개를 풀어놓으니 골목마다 떼지어 다니는 개들 때문에 아내는 무서워서 거리를 나서지 못한다. 이곳 개는 낮선 사람이나 여자들에게 달려들어 가끔 사고가 일어난다. 얼마 전 옆집에 이사 온 미국인 교수 내외도 개 짖는 소리에 잠을 잘 수 없어 할 수 없이 사격선수들이 사용하는 귀마개를 사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기도 했다.
개 천국이 아니라 동물천국이래!
이곳은 개뿐만 아니라 동물천국이라 해야 맞을 것 같다. 필리핀은 닭싸움이 유명하다. 우리 동네도 닭싸움 경기장이 있을 정도다. 거기서 매일 오후에 경기가 열린다. 일요일엔 챔피언 경기가 열리니 경기장은 항상 문전성시다. 그러니 집집마다 싸움닭을 기르며 자기 가족보다 소중히 여긴다고 한다. 이놈들이 우리에게는 또 다른 소음공해로 밤잠을 설치게 한다.
이 닭들은 우리네 시골 닭과는 달리 새벽 1시만 넘으면 울어 된다. 아침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한밤중을 알리는 셈이다. 개소리 닭소리에 밤잠을 설치고 나면 이제 또 다른 소리가 늦잠을 자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아침 여명을 알리는 이름 모를 새들의 소리다. 이놈들은 그래도 싫지 않다. 숲이 우거진 마을이다 보니 창문에 붙어 앉아 끝없이 노래를 한다. 동물의 천국은 이렇게 또 하루가 시작된다.
사계절 여름이다 보니 생태계가 우리와 달라 이곳은 도마뱀이 부엌, 거실 어디고 안 다니는 데가 없다. 불만 꺼지면 활동한다. 사람을 해치지 않고 모기나 벌레를 잡아먹는 유익한 동물로 이곳사람들이 신성시 한다.
몇 년 전 태국의 한 기숙사에서 잠을 자는데 얼굴에 무엇이 떨어져 깜작 놀라 일어나 불을 켜 보니 도마뱀이 곡예를 하다 떨어져 도망가고 있었다. 나는 지금 도마뱀에 잘 적응하고 있지만 아내는 지금도 도마뱀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태풍피해 많은 나라, 하지만 자연과 공존하는 나라
태풍이 지나간 뒤 모처럼 주말이라 야외로 나갔다가 하마터면 뱀 요리를 먹을 뻔 했다. 필리핀의 유명한 전통음식점을 소개해 줘서 찾아갔는데 이곳은 민물달팽이 요리로 유명한 곳이다. 우리로 말하면 민물우렁이 정도 된다. 그래서 '스내일(snail, 달팽이)'를 달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종업원이 자꾸 스네이크(snake) 요리냐고 되묻는다. 함께 간 기사에게 물어보니 이곳은 뱀 요리를 잘 한단다. 살펴보니 이곳에서 수집한 뱀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고 많았다.
관광객을 위해 바깥에 내놓은 뱀의 길이가 3m 정도 되고 지름은 30cm가 넘어 보였다. "골프장 주변이라 골프를 즐기고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뱀을 우리네 장어처럼 잘 먹는다"고 한 종업원이 귀띔을 해준다.
동물의 천국 열대의 나라 필리핀. 태풍이 1년에 평균 25회 이상 지나가면서 수천 명의 인명피해가 나지만, 이들은 순응하며 살고 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이들의 순박한 미소 속에서 나는 또 다른 천국을 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