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하구 둑에는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자동차가 하구 둑을 쏜살같이 내달리는 그 아래 갯벌에는 민물과 짠물이 하나가 되는 바다에서 철새들이 노닐고 있었다.
바다와 강을 연결하는 갯벌을 따라 있는 시멘트 제방은 인간과 자연의 부조화처럼 버티고 있었고, 군산에서 유일하게 남은 300미터 구간의 습지에는 돌무더기들이 산만하게 널려 있었다. 습지를 제방으로 만드는 군산시의 정책이 0.01%를 남겨두고 그만 중단된 것.
@BRI@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철새를 상품화한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순간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수십억의 국가세금을 들여 금강하구 둑 철새 조망대를 세운 것도 그렇거니와 관청과 밀착된 몇 사람의 건설업자를 위해 혈세가 낭비되고 말았으니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정책인가. 멀리 제방 아래 갯벌에서 한 늙은 부부가 조개를 잡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늙은 부부의 주위를 하얗게 수놓은 철새들을 보고 있자니 상생의 진리가 뼈아픈 반성으로 다가왔다.
12월 7일(목) 오후 2시 철새조망대 학습실에서 '철새와 조류인플루엔자(AI)의 역학관계 정립을 위한 심포지엄'이 시작되었다. 유희영(익산YMCA 사무총장) 사회자의 진행으로 첫 주제 발표는 조류 인플루엔자의 발병 원인과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김재홍 박사(국립수의과학검역원 질병연구부장)가 말문을 열었다.
"익산지역 조류 인플루엔자(이하 AI 표기)에 대한 확실한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하루 빨리 원인을 알아내어 예방책을 세웠으면 좋겠다. AI는 야생조류에 문제가 되지 않지만 가금류에서는 큰 문제가 된다. 변이(진화)되는 인플루엔자 때문이다.
철새가 AI를 전염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 않다'는 아직 논쟁 중이다. 그러나 철새는 AI의 여러 감염경로 중 하나이지 결정적인 원인은 아니다. 가능성이 있다는 것뿐 과학적인 증거도 빈약하다. AI는 대부분 사람이나 차량에 의해 전염이 확산하는데 날아가는 철새의 배설물이 사람 머리에 떨어져 AI가 걸린다는 것은 억측이다.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닭과 오리, 돼지 등 가축을 함께 사육하는 과정에서 AI가 발병되고 있다. 감염된 가금류를 사고파는 과정에서 전염이 확산하고 있으며, 밀수나 세관을 통해 AI가 다른 나라로 확산하는 추세다. 철새들의 저병원성 AI가 가금류에 가서 고병원성으로 변이가 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지금으로서 최선책은 감염된 가금류를 살처분 하는 것이다. 하루빨리 질병의 원인이 밝혀지고 예방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다음은 일본과 한국에서 15년 동안 동남아 철새를 연구하는 닐 무어스의 발제가 이어졌다. 조국인 영국을 떠나 한국에 정착한 그의 발제에서 철새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AI는 가금류 산업과 농민들의 생계는 물론 야생조류 개체군까지 엄청난 위협이 되고 있다. 감염된 가금류나 관상조들과 가까이 접촉해야 하는 일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도 위협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질병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대처,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분야의 전문가까지 동참하는 열린 의견들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정확한 과학적 증거가 없는데도 야생조류는 바이러스 전파자로 끊임없이 지탄을 받아왔다. 문제는 많은 나라에서 야생조류에 관한 수없는 검사와 연구에도 AI가 야생조류에게 발견된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발발되었던 2003년과 2004년도의 HP H5N1(고병원성 H5N1)바이러스는 농장 주위(죽은 닭이나 쓰레기 등)를 자주 뒤적이는, 까치의 시체에서 발견되었을 뿐이다. 그 후 한국에서 5,000마리 이상의 철새를 검사했지만 어떠한 야생 조류에서도 AI를 발견하지 못했다.
바이러스는 많은 경우 철새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금류 거래장소를 통해 전염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UN 식량농업기구(FAO)의 2006년 11월 발표는 "야생조류는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H5N1의 전파에 있어 주요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나 한국에서 고병원성이 전파되는 가금류의 수입이나 이동, 종계나 품종, 부화장소와 양계장 등의 환경적인 요인에 대한 연구는 전무한 상태이다. 이러한 환경적인 요인에 대한 검사와 연구 없이 AI 확산을 철새에게 전가하는 것은 직무유기이다."
1부 발제를 마치고 토론자들의 발언과 질문이 오갔다. 발표한 순서대로 소개한다.
"닭 사육 농가이다. 6만 2000마리의 닭을 살처분했다. 철새가 AI를 옮길 가능성이 있다 없다는 저병원성이 고병원성으로 변이되는 환경이 문제다. 서로 다른 두 의견에 대해 안타깝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사육농가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발병한 두 농가도 무창계사 최신식 설비의 양계장이다. 공통점은 종계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뿐이다.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고 하루빨리 예방책이 나왔으면 좋겠다."(조성규: 양계농가 )
"국내 철새에서 AI 고병원균이 발견되지 않았다. 철새가 원인이라는 2003년 농림부의 터무니없는 보고서에 의해 이런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사실을 추정만으로 철새가 원인이라며 몰아가는 형국이다. 철새가 AI 병원균을 전염시킨다고 하는데 그 병원균을 옮긴 철새는 왜 죽지 않는가. 국내에서 AI로 죽은 철새가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한성우: 금강철새 생태환경관리과 학예연구사)
"철새가 가장 억울하다. 양계 사육농가와 닭, 오리와 관련된 식당과 통닭집, 유통과 업자들, 지역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관계기관의 지속적인 연구와 국제적인 연대와 교류가 필요한 것 같다."(김은영: 익산YMCA)
"모든 상황을 점검하며 원인을 밝혀나가는 과정에서 지구 전체적인 국제역학관계가 필요하다. 지금 밝혀진 것과 밝혀지지 않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언론이 밝혀지지 않은 사실을 과장해서 보도하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인 것 같다.
역학관계를 연구하는 것은 예방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병원성에 대한 연구, 감염되는 대상인 조류와 가금류와 인간에 대한 연구, 환경적인 원인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또 가금류와 인간 백신의 개발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여러 감염 경로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철새의 배설물이다. 그런데 철새의 터전인 습지와 갯벌이 없어지고 있다. 그 철새들의 보금자리를 빼앗아 인간이 살고 있다. 그러니 철새들이 인간과 가까이 살 수밖에 없고, 집단 사육 농장과 인간은 병원균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이진헌: 공주대학교 환경교육과 교수)
"철새축제 자원봉사자다. 익산지역 양계들이 저병원성으로 밝혀지고 있는데 언론이 마치 고병원성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동아일보에서는 철새 배설물은 '날아다니는 폭탄'이라는 머리기사를 쓰기도 했다. 철새가 주범이 아니라 철새를 주범으로 몰아가는 오보를 일삼는 언론이 주범이다. 철새가 고병원성 감염자가 아니라는 것이 홍보되어 많은 사람들이 철새축제를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김창섭: 수의사, 철새축제 자원봉사자)
"인간의 치아구조는 송곳니가 4개뿐이다. 채식동물이지 육식동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채식보다 육식을 많이 하는 식생활문화가 가금류 발병의 주된 원인이다. 육식을 많이 하게 되니까 양계장에서 밀식사육을 하게 된다. 밀식된 공간에서 면역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동남아에서도 닭과 오리 등 가금류 소비가 높아져 가금류를 밀수하거나 사고파는 과정에서 AI가 감염되고 확산이 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육식 중심의 식생활문화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인간의 식생활 문화가 채식 중심으로 변화되지 않는 한 AI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최종수: 정의구현사제단)
철새는 AI의 여러 감염 경로 중 하나일 뿐인데도 AI 감염의 주범인 것처럼 몰아가는 언론의 횡포에 종지부를 찍은 뒤 심포지엄이 막을 내렸다.
산 위에 우뚝 솟아있는 조망대를 빠져나와 가창오리 대형 설치물이 있는 입구로 걸어갔다. 철새들에게 산 보다 더 높은 저 조망대는 얼마나 위협적일까. 가창오리 군무를 보기 위해 서둘러 차에 올랐다. 이슬비가 내리는 강을 따라 10여 분 달렸을까. 하늘에는 먹구름이 회오리바람처럼 춤을 추고 있었다. '가창오리 60만 마리의 군무'라고 철새 전문가 닐 무어스 씨가 귀띔해주었다.
노을이 강에서 출렁이듯 하늘을 출렁이는 철새들의 집단 공중비행. 꿍꽝거리는 가슴을 어쩌지 못해 카메라를 메고 달리기 시작했다. 슈퍼 자석에 빨려 들어가듯 황홀한 군무가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철새들은 거대한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부채처럼 춤을 추었다.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매스게임을 하는 것 같았고, 바람에 날리는 연기의 형상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여러 모형을 그렸다가 사라지는가 하면 마치 어깨동무를 한 것처럼 한 줄로 일제히 날아가기도 하는, 형언할 수 없는 변화는 카드섹션처럼 순식간에 바뀌었다. 한 번도 손을 맞추어 보지 않았으나 그 카드섹션은 완벽한 조화였다. 쌕-쌕-쌕, 수십만 마리가 한소리로 외치는, 60만 명이 연주하는 거대한 오케스트라 합주를 보는 듯했다.
상상해 보라. 60만 마리의 가창오리들이 한 사람의 머리 위를 돌며 춤을 추고 노래하는 환상적인 군무를! 누가 저 감미로운 합창을 멈추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누가 저 위대한 춤사위를 훼방할 수 있겠는가. 그 춤과 노래가 멈추는 날, 인간의 춤과 노래도 멈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철새들의 그 보금자리가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