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자주파의 선봉' '왕의 남자' '북한의 세작(간첩)' 등으로 보수진영에게 불리며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던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11일 퇴임했다.
이 장관은 이날 이임사에서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북한과의 대화를 결코 포기할 수 없다"며 "오늘의 안정을 유지하고 내일의 통일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북한 정권의 성격에 대한 판단과 관계없이 그들과 대화하고 화해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6자회담에서 한국이 주도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좁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북핵 문제의 해결없이 한반도 평화정착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우리는 최대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북한 미사일 발사 때 대내외적 여론과 국제협력을 감안해 북한에 대한 쌀과 비료 지원을 중단한 것은 불가피한 조치였다"며 "잠정 중단된 제반 지원이 조속히 재개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북 쌀·비료 지원, 조속히 재개될 여건 마련되길"
@BRI@지난 2월 10일 취임한 이 장관은 통일부 장관으로서는 10개월을 근무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 2003년 현 정부 인수위 멤버로 참여한 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을 3년간 역임하면서 외교안보 정책을 좌지우지했다.
그는 NSC에 발을 들여놓을 때부터 보수 진영의 집요한 공격에 시달렸다. 그가 학자시절 북한에 대한 내재적 접근을 시도하는 등 재독 학자 송두율 교수와 똑같은 입장이라는 것이었다.
지난 2003년 9월 미국의 이라크 파병 요구에 대해 당시 김희상 청와대 국방보좌관은 '다다익선'을 주장했으나 이 장관은 3000명 재건부대안 파병안을 관철시키면서 '자주파의 선봉'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그가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하던 동안 남북관계와 한미관계에는 그 어떤 정권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현안이 발생했다.
용산 미군기지 이전, 주한 미 2사단의 병력 감축, 개념계획 5029 개편 논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논란, 전략적 유연성 합의,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6자 회담 및 북한의 핵실험 등 하나같이 보혁의 대립이 첨예한 문제였다.
보수 진영은 노무현 정권의 친북반미 정책을 수립하는 핵심으로 이 장관을 지목했다.
보·혁 양쪽에서 십자포화 맞아
그러나 진보 진영의 상당수도 이 장관을 '무늬만 자주파'라고 맹공했다. 이 장관은 보혁 양쪽으로부터 십자포화를 맞았던 셈이다.
이들은 이 장관이 ▲결과적으로 미국의 요구대로 들어주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항상 진행 과정을 국민들에게 숨기고 있다가 나중에 다른 경로를 통해 공개된다 ▲한미간에 작성된 문서가 애매모호해 나중에 얼마든지 미국에서 다른 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되어있다는 것 등을 들었다.
한 예로 주한미군 기지의 오산·평택 이전에 강력하게 반발했던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은 올 2월 이 장관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회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전면 허용한 실질적 책임자인 이종석 통일부 장관 내정자를 철저히 검증하라"고 주장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교안보 전문가 A씨는 "현재 북핵 문제는 북한·중국·미국에 의해서 좌지우지되고 한국은 발언권이 거의 없다"며 "이것 자체가 북핵 문제의 주도적 해결을 내세웠던 이 장관이 부끄러울 정도로 참담하게 실패한 증거"라고 비판했다.
외교안보 전문가인 B씨도 "이 장관은 북핵을 막지 못했고, 또 조지 부시 행정부의 대북 압박 정책에 결과적으로 동조해 남북 관계를 핵 문제와 연계시켜 축소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뒤 쌀과 비료 등 인도주의적 지원까지 끊어 남북 대화를 완전히 단절시킨 것은 이 장관의 책임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장관은 공직에 들어온 뒤 진보 진영 학계 인사들과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진보진영 학자인 C씨는 "이 장관은 일부 관료들과 특정의 소수 인맥만으로 폐쇄적으로 정책을 수립했다"며 "외부 진보 진영 인사들의 제언과 고언을 거의 듣지 않아 현재 관계가 상당히 좋지않다"고 밝혔다.
북에서도 쌀쌀맞은 대우... 재기용 여부 관심
이 장관은 보수 진영은 물론 진보 진영쪽에서도 비판받는 것에 대해 상당히 신경을 썼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교·안보 쪽의 한 인사는 "일부 진보 진영 학자와 언론이 자신을 얼치기 자주파라며 공격하는 것에 대해 이 장관이 대단히 섭섭한 감정을 사석에서 토로했다"고 전했다.
이 장관은 퇴임을 앞두고 지난 5~6일 금강산을, 지난 8일 개성공단을 방문했다. 비록 퇴임을 앞둔 장관이라고 하지만 북쪽의 대우는 상당히 쌀쌀맞았다. 통일부는 애초 이 장관에 대한 북한의 초청장(방북 허가증)이 나올지 장담하지 못할 정도였다.
올 2월 통일부 장관을 시작하면서 북한에 대한 대규모 경제적 지원을 조건으로 납북자 문제 해결, 경의·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등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것에 비교할 때 상당히 씁쓸한 모습이었다.
이 장관은 퇴임 뒤 학계(세종 연구소 연구원)로 돌아간다. 요직에 재기용될 것이라는 관측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그는 부인하고 있다.
이임사에서 그는 "조국이 제게 베풀어준 혜택에 보답하기 위해 그동안 이론적 연구와 현실경험을 잘 살려서 다가올 통일시대를 실사구시적으로 준비하는 데 힘을 보탤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초 관가에는 이종석 당시 NSC 사무차장이 통일부 장관을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아무리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 해도 그 젊은 나이에 통일부 장관은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올해 2월 통일부 장관에 임명됐다. 이 정도로 대통령의 신임이 컸다.
그러나 한 외교안보 소식통은 "이 장관은 북 미사일 발사, 북핵 실험 등의 사태 뿐 아니라 이전의 각종 한미동맹 현안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책임까지 겹쳐 경질된 것"이라며 "'이종석의 남자'라고 불리던 상당수 인물들도 자리를 잡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 정부의 보은 인사 패턴으로 보면 어떤식으로든 이들에게 어떤 자리든지 줘야 한다"며 "내부 역관계로 볼 때 이 장관의 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임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이 장관이 천거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김만복 국정원장도 이종석계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임사에서 이종석 장관은 "대통령이 이런 거 해보라 하면 도와드려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해 복귀에 대한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