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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6일 일본의 문부과학성 앞으로 긴급한 상황을 호소하는 편지 한 통이 날아들었다. 편지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문부과학대신 이부키 분메이께

나는 이지메로 인해 오는 11월 11일 토요일에 자살할 것을 증명합니다. 이 편지를 이지메 한 사람들, 학교 선생님, 교장, 교육위원, 이지메한 사람들의 보호자, 나의 부모에게, 내가 자살한 후 보여주세요. 그리고 매스컴 사람들에게도 전부 공개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이번에 편지를 쓴 이유는 살아가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이지메 한 사람들은 아무런 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에게 말했는데 선생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부모에게도 말했는데 "참아라"고 밖에 말하지 않습니다. 어렵게 부모가 학교 교장선생님이나 교육위원회 분들에게 연락을 하게 만들었는데 아무런 변화도 없습니다.

그런 데도 부모나 선생님들은 "네 성격 탓이다" "참아라"고 밖에 말을 안 하기 때문에 11월 8일 수요일까지에 아무 변화도 없을 경우, <이지메가 원인인 자살 증명서>대로 자살하겠습니다. 장소는 학교에서 하겠습니다.

모두 다 믿지 못하기 때문에 문부과학성 대신인 이부키 분메이대신에게 썼습니다. 나의 이름은 11월 11일 토요일에 자살의 뉴스를 보고 모두에게 알려주세요. 부탁합니다. 부탁합니다."


이 편지를 받은 문부과학성에서는 이 편지의 내용을 문부과학성의 홈페이지에 공개하였고, 도도부현의 교육위원회에 각 지역학교에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리고 이 편지와 관련된 이상한 징후가 발견되면 긴급하게 대처하라는 등의 공문을 내려보냈다.

@BRI@한 아이가 6일 날짜로 보낸 자살 예고편지의 수신자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지메는 누구 한 사람만이 원인이 아니며, 또 한 교실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특별한 상황도 아니며, 어떤 계기적 상황에서만 일어나는 우연한 사건도 아님을 아이들은 말하고 싶었던 것이라 여겨진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선택할 수 있는 모든 방법 중에 가장 유효한 수단으로서, 아이를 보호하고 양육해야 할 일차적 책임이 있는 부모들과 교육 관련 행정기관, 그리고 일본 정부를 향해 매우 공식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의 처지를 알렸고 어떤 특단의 조치를 촉구하기 위해, '자살'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긴급 구조요청을 하였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부과학성의 이부키 분메이 대신을 중심으로 한 교육행정기관은 11일이 되어서 편지의 원문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였고, 전국교육위원회에 이 사실을 통고하는 공문을 보내어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하였다.

하지만 문부과학성은 아이들이 처한 긴급한 상황에 대한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지 못한 채, 두 중학생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하고야 말았다.

문부과학성이 홈페이지에 자살 예고 편지를 공개한 것이 오히려 자살을 부추긴 꼴이 되었다고 비난하는가 하면, 이 편지를 공개함으로써 이지메를 예방하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하는 공방이 과연 이지메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특별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무책임한 공방만을 벌이고 있는 기성세대와 사회를 지켜보고 있던 이 편지의 주인공들인 잠재적 자살자들은 한 가닥 걸었던 기대들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지난 11월 1일 아힘나의 실무자들이 일본의 시민사회단체인 '도쿄네트'를 방문했을 때, '어린이의 권리조례 도쿄시민포럼'과의 미팅이 있었다. 이때, 이 포럼은 도쿄도의 각 시의회에 어린이 권리조례를 제정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 활동을 소개하였고, 한국에서의 어린이·청소년들의 인권상황과 개선을 위한 다양한 시도들에 대하여 서로 공유하자고 하였다.

분명, 이러한 움직임은 교육주체들에게 '학교 내에서 대부분 생활하고 있는 어린이·청소년들도 어른들과 같은 동등한 권리와 책임이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고, 각종 이지메와 교내 폭력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어른들의 책임 있는 행동일 것이다.

살기 좋은 경기도 안성의 모 중학교에서 비교육적인 체벌과 입에 담을 수 없는 거친 욕설이 학생들의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주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있다.

우리의 아들딸들인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6년 동안 자신들의 대부분의 기본적 인권을 유보당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각종 규제에 묶이고, 이런저런 제재를 감수해야만 한다. 학교에 다니는 우리 청소년들의 인권은 수십 년 동안 학교 정문 앞에서 정지되어왔다.

학교는 아이들의 전인적 성장을 돕는 교육기관임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입시에서의 좋은 성적만이 학교를 평가하는 기준일 수는 없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한 여중학생이 떠오른다.

이러한 아이들을 그저 '성격이 나약한 요즘 애들'로 나무라기에는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입시 억압과 성적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리고 지극히 일부라고 믿지만 교사들의 소위 '교육적'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하는 그들의 폭언과 폭행을 학교 내에서 거르고 조절할 능력을 상실한다면 결국 이제는 사법적 심판대에서 가려져야 할 상황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밖에 교육할 수 없다면, 그것이 학교의 학생통제를 위해 최선의 방법이라고 고집한다면 조용히 교사는 교사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학교는 교육에 대한 기본철학을 다시 한번 새겨보길 바란다.

일본에서의 이지메 문제로 인한 자살사건과 안성 모 중학교의 교내 폭언과 폭행으로 인한 학생들의 가슴앓이는 더는 방치할 일이 아니다. 모든 상황들을 학교에만 맡겨두기에는 우리 아이들의 상황이 너무 애처롭다.

도쿄도의 모든 구(區)에 '어린이의 권리조례'를 입법화를 위해 노력하는 시민사회단체 '도쿄시민포럼'의 노력과 최근 최순영 의원(민노당)이 발의한 '학생인권법안'에 대해 각 지역의 시의회와, 시민사회단체와 교육주체들 모두 진지하게 관심을 둬야 할 때가 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긴급함을 호소하는 편지의 발신자가 자살한 학생과 동일한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편지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있었던 학생들이라는 점에서 이 상황의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위 사진은 문부과학성 홈페이지에 실렸던 것으로서, 아힘나 운동본부 일본지부에서 보내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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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평화를 위한 1923역사관 관장 천안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 공동대표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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