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으로서 짜증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온다. 대표적인 법률이 '사학법'이다.
문제의 사학법은 작년 이맘때 한나라당의 반대로 홍역을 치르다 열린우리당이 주도해 가까스로 통과시키자, 집권 야당 대표가 반대투쟁을 위해 거리로 나섬으로써 국회의 파행을 초래했던 바로 그 법률이다.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나온 그 사학법은 지난 7월 시행령이 개정됨으로써 드디어 법률로써 효력을 발효하는가 싶었다. 이에 따라 일부 사학에서는 이 법률과 시행령에 따라 교수(원), 직원, 학생, 동창회, 기성회 등이 참여하는 대학평의원회의 구성 근거를 법인정관이나 학칙에 두는 등 착착 준비를 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BRI@그런데 법률과 시행령을 인쇄한 종이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집권야당 한나라당은 이 법률의 문제점을 지속적이고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법률의 위헌성을 묻는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이 법률에 대한 한나라당의 반대하는 입장은 그야말로 불굴의 정신 그 자체였다.
물론 이들의 뒤에는 종교단체를 포함한 사립학교 재단들의 끈질기고 집요한 로비가 있다. 인적 물적 토대를 바탕으로 한 이들의 협박, 회유는 사학법을 둘러싼 한나라당의 지금의 입장으로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집권야당이 올해 예산안 통과에 연계시키면서까지 개정안의 통과를 반대하고 나서는 바로 그 문제의 사학법의 내용은 과연 무엇인가.
핵심은 첫째, 법인의 이사 중 4분의 1을 대학평의원회가 추천하도록 한 것(개방형 이사), 둘째, 이사장 친인척은 학교장이 될 수 없도록 한 것, 이 둘이다. 이 중 두 번째는 한나라당의 집요한 문제제기로 이사회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을 하면 이사장의 친인척이라 할지라도 학교의 장이 될 수 있도록 개정안이 상정됐다.
현행 사학법은 민주노동당이나 열린우리당의 원안보다도 엄청나게 후퇴한 것이고, 개정안은 거기에서 더 후퇴한 것이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이 정도의 개정도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자세다.
사학법인이나 학교를 설립 운영하고 있는 종교단체나 이를 지지하는 한나라당은 철저히 학교를 설립자의 개인 사유물로 생각하고 있고, 개인적 이재의 수단으로 보고 있다. 물론 이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시장주의의 존중, 설립자의 건학이념의 존중이다.
설립자의 건학이념, 법 테두리 안에서 투명하게 운영돼야
학교의 설립을 위해 개인의 재산권을 출연한 설립자의 숭고한 뜻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일단 학교는 설립자가 자신의 재산 출연으로 설립하고 나면 학교는 교육이라는 공적 기능을 담당하는 '공익법인'이다. 설립자의 건학이념은 존중되어야 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법의 테두리 안에서 공정하고 객관적이며 투명하게 운영돼야 한다.
그래서 법률은 사학법인의 설립이나 정관에 대해서는 국가의 인가가 필요하고, 만일 법인이 청산이 되더라도 그 재산은 국고에 환수되도록 하고 있다. 일단 설립된 학교의 운영이 재정적으로 어려울 경우에는 국고가 지원되고, 법인이사회에 큰 문제가 발생한 경우에는 관선이사가 파견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학교가 교육이라는 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사학은 법인의 전임금으로 운영되기보다는 국고지원이나 학생들의 등록금 수입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교법인이 법적 의무는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권리와 자유는 방종에 가까울 정도로 보장하라는 생떼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설립자가 법인 이사장과 학교 총장을 돌아가며 맡고 이러한 과정에서 수많은 비리가 노정되어왔던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러한 모습을 뻔히 알면서도 애써 무시하거나 적극적으로 지지 내지 방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한나라당의 공당으로서의 태도도 이해되지 않으려니와 열린우리당이나 다른 야당들이 현재 침묵에 가까운 소극적 태도를 취하는 모습 역시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자녀들을 사학에 맡길 수밖에 없는 이 땅의 많은 학부모들의 무관심 또한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거대한 집권 야당의 반발로 개혁법안들의 국회통과가 어려운 현실이지만,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의 소극적인 자세는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올바른 길이라면 당당하게 논리로써 정책을 홍보하고 국민에게 호소해야 할 것이다. 수많은 당위적 논거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야당에 이리 밀리고 저리 치이는 집권 여당의 태도가 바보스럽고 갑갑할 뿐이다.
결국 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은 오로지 집권여당의 몫으로 돌아오지 않겠는가. 더구나 사학법 개악의 폐해는 오롯이 국민에게로 돌아온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현재 인제대학교 교수평의회 의장을 밑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