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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15일, 염창동 한나라당사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유족.
2004년 10월 15일, 염창동 한나라당사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유족. ⓒ 학살규명범국민위
며칠 전까지 계속된 한국전쟁기 민간인 피학살자 유족들의 절규와 호소는 이들에겐 아마 남의 국민들의 고통과 바람이었던 모양이다. 그토록 적은 인력과 예산으로 어떻게 그 많은 사건들을 다 조사하여 어느 세월에 진실을 밝힐 것이며 또 어떻게 뒤집히고 비틀린 정의를 바로 세워 민족통합을 꾀하고 새로운 미래를 기약하겠느냐는 유족들의 한 맺힌 외침이 다른 나라 이야기로 들렸던 모양이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진실이다. 어디에든 진실을 은폐 왜곡하려는 이가 있고 밝히려는 이가 있다. 그래서 인간 사회에서는 진실을 둘러싼 싸움이 끊이질 않는 것이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한번 따져보자. 거짓임이 밝혀지면 깨끗이 승복하고 적극 협력하는 것이 상식이다.

우선, 한나라당과 일부 신문들은 과거사 진상규명에 해마다 예산을 늘려가 2007년도에는 무려 3957억 원이나 되는 예산을 배정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연간 예산 총 238조원 중 약 4000억 원이면 0.17%쯤 된다. 민족사의 왜곡되고 은폐된 진실들을 밝히고 그 상처를 치유하며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기틀을 잡아보자는 취지의 역사적 과업에 그 정도의 예산을 쓰는 것이 과연 낭비일까?

비교삼아 몇 가지 수치를 들자면, 교통시설특별회계로 10조원 이상이 잡혀 있고, 외국환평형기금 누적 결손만도 연간 17조 8천억원이며, 단일 사업으로 계획이 부실한 것으로 알려진 부산신항 개발비만도 5288억원이 책정돼 있는 것이 우리 예산안의 현실이다.

더 중요한 것은 3957억원 가운데 과거사 진상규명 예산은 사실 얼마 안 되고, 후속조치 예산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실질적인 과거사 진상규명 예산은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저들도 그 사실을 알면서도 뭉뚱그려 사실을 왜곡 전달하고 있다.

예산안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한나라당과 언론들의 주장의 잘못된 점을 짚어보자.

가장 많은 부분이 일제강제동원 피해자지원 예산으로 1505억원이다. 징병·징용으로 끌려가 죽거나 봉급도 떼인 채 겨우 살아돌아온 강제동원 피해자들, 한일협정 때 대한민국은 마땅히 그들에게 급료로 지급됐어야 할 돈을 헐값으로 넘겨받아 경제개발비로 투입했고 그 토대 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섰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인데, 한나라당은 22만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모른척 할 셈인가?

다음으로 많은 것은 특수임무수행자보상심의위 예산 1015억원이다. 오히려 한나라당이 앞장서서 만든 북파공작원 피해보상심의위의 예산이다. 지금은 생각을 바꿔 이에 반대하는가?

그 다음은 삼청교육피해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 예산 210억 원이다. 한나라당이 함께 만든 법에 따라 만들어진 위원회다.

그밖에 진상조사 후 후속조치 예산들이 상당액 있다. 국회가 법을 만들고 국가가 나서서 진실을 밝혔으면 그에 합당한 후속조치를 취하는 것은 당연하다. 제주4.3 유해발굴과 평화공원 조성사업과 노근리 평화공원 조성사업, 민주화기념사업회 지원이 그렇게 부당한 것인가?

차 떼고 포 떼고, 위의 후속 조치 예산들을 모두 빼고 나면, 실질적인 과거사 진상규명 예산은 3957억원의 10%밖에 안 되는 400억원 수준으로 대폭 삭감된다.

진실화해위 121억원,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 82억원,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 83억원, 일제하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 49억원, 군의문사위 42억원이 사실상 전부고, 그밖에 국정원과 국방부(13억원), 경찰청(6억원)의 기관별 과거사위 예산이 일부 책정돼 있다. 국가 총예산의 0.017% 정도다.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올해 9월 12일, 올바른 과거청산, 신속철저한 조사를 위해 조사인력 증원을 요구하는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
올해 9월 12일, 올바른 과거청산, 신속철저한 조사를 위해 조사인력 증원을 요구하는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 ⓒ 학살규명범국민위
위의 진실규명 국가위원회들은 하나같이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주어진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특히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등 통합적 과거사 진실규명 임무를 띠고 있는 진실화해위의 인력과 예산 부족 상황은 심각하다.

한나라당이 민족의 미래의 담지자를 자임한다면, 이들 위원회가 제 기능을 발휘하여 대한민국이 과거의 질곡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민족의 새로운 내일을 열 수 있도록 지원을 하는 게 맞다.

더욱이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들은 관련법의 범주까지 혼동하고 있다. 진실화해위를 비롯한 모든 과거사위원회가 자신들이 함께 만든 법에 의거하여 만들어진 엄연한 법적 위원회임에도 진실화해위를 제외한 모든 과거사위가 마치 임의로 구성된 기관별 과거사위인 양 설명을 펴고 있다. 게다가 국정원·국방부·경찰청 과거사위도 자신들이 함께 만든 진실화해법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엄연한 법적 기구다.

이와 함께 진실화해위 해외조사비 6억원에 대해 딴지를 걸고 있는 한나라당과 동아일보에 묻고 싶다. 6억원이면 교통비, 여비 빼고 나면 해외조사요원 몇 명 체류비도 채 안 된다. 백년 이상 묵혀온 민족사의 해묵은 숙제(미국 등이 깊숙이 개입한 100만 민간인학살·의문사의혹·해외동포사·독립운동사)를 푸는 데 해외조사비 6억원이 과연 지나친가?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들은 위의 물음들에 답해야 한다. 특히 국회 예결위를 좌지우지하는 한나라당의 정책위원장 출신 이한구, 전 민주화 투사 박계동, 80년 '서울역 회군'의 주역이자 학생운동 출신 심재철, 행자위에서부터 과거사 관련 예산을 문제 삼았던 권경석 의원은 분명하게 답해야 한다.

한 번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해 그 상흔과 앙금과 찌꺼기가 우리 사회 곳곳에 배어 있는 각종 과거사의 진실을 밝혀 새로운 미래의 주춧돌을 놓는 작업이 너무 늦었지만 이제야 시작되었다. 만일 합리적인 이유 없이 과거사 진실규명 작업에 계속 딴지를 건다면 이는 역사의 죄인이 되는 길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춘열 기자는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사무처장을 맡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경남도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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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문제의 실상을 널리 알리고, 장기적으로는 한국사회의 제반 문제를 심도 있게 짚어보고 싶습니다. 글쓰기 분야: 사회평론 일반, 민간인학살, 시민사회운동 주요 이력 (필명 이무열) - 고양시민회 대표, 민간인학살진상규명범국민위 사무처장, - 저서 <러시아사 100장면> <그래도 사람은 하늘이다> <세계사 작은사전> <현대역사 100> - 역서 30여 권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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