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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지식인들로 구성된 '교과서 포럼'이 최근 발표한 역사교과서 시안이 논란이다. 이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교과서포럼은 일부 내용을 변경해 내년 1월 출간 공청회를 다시 개최키로 했다. <오마이뉴스>는 교과서포럼의 역사책 시안 파동에 대해 집중 기획기사를 내보낸다. <편집자주>
왜곡된 역사를 바로 쓰겠다며 내놓은 뉴라이트 교과서포럼(상임대표 박효종)의 '대안교과서 시안'은 결국 과거회귀일 뿐이었나.

1956년부터 시행된 1차 교육과정부터 7차 교육과정까지 나온 교과서들과 대안교과서 시안을 놓고 보면, 옛 권위주의 정권이 정권 찬탈의 정당성을 강변하기 위해 늘어놓은 주장들과 비슷한 점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박정희(2, 3차 교육과정, 64~81) 군사정권 교과서와는 관점만 다를 뿐 결론이 한 가지다.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고, 최악의 상황에서 최고의 성과를 얻어 냈다는 얘기다.

@BRI@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승만 정권에 대한 평가다. 박정희 정권은 군사쿠데타의 불가피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라도 이승만 정권을 깎아내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박정희 정권 시절 교과서는 이승만 정권에 대해 비판적이다. 하지만 대안교과서 시안은 이승만 정권의 '국제협력노선'을 대단히 높이 평가하고 있다.

아래는 옛 교과서와 대안교과서 시안을 비교해 본 예들이다. 아쉬운 것은 옛 교과서 원본을 구하기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옛 교과서의 내용은 지난 2004년 이인영(열린우리당) 의원실이 펴낸 <한국 근현대사 쟁점에 대한 1차~7차 국사 교과서 서술 비교>에서 부분 발췌했다.

[일제시대] 친일행위·종군위안부 언급 없어

▲ 전라북도 여자근로정신대(2003년 독립기념관 특별 기획전 사진자료)
ⓒ 독립기념관

1956년부터 시행된 1차 교육과정 이후 나온 근현대사 교과서들과 대안교과서 시안이 쓴 일제시대의 큰 차이점은 일제의 토지수탈에 관한 내용이다. 대안교과서 시안은 "일제에 의한 토지수탈은 없었다"고 결론 짓고 있다. 현행 국사교과서(7차 교육과정)만 해도 "조선총독부에 의한 토지수탈이 있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반면 대안교과서 시안이 옛 교과서들과 가진 공통점은 알려진 것처럼 친일행위나 종군위안부에 관한 내용이다. 일제하 친일행위는 박정희 정권 시절인 3차 교육과정(74~81)에만 잠깐 언급될 뿐 군사정권 시절 교과서에 등장하지 않는다. 김영삼, 김대중 정권 시절(6, 7차 교육과정, 95~02)에 가서야 친일활동 일부가 기록된다.

대안교과서 시안에도 친일행위에 관한 내용은 빠져 있다. 군사정권 아래서의 교과서와 차이가 없는 셈이다. 물론 교과서포럼은 "시안은 시안일 뿐"이라며 앞으로 더 보강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종군위안부와 관련해서도 과거 군사정권에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김영삼 정권 이후에서야 비로소 '위안부'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반면 대안교과서 시안에는 "여자정신근로대를 만들어 동원하였다"고만 나와 있다. '여자정신근로대'는 '위안부'가 아니라 전시체제 아래서 징발된 여성 노동력을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위안부 문제 역시 군사정권 시절 교과서와 대안교과서에 공통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

[표1] 교과서 분석

구분

1차
교육과정('56~'63)

2차
교육과정('64~'73)

3차
교육과정('74~'81)

4차
교육과정('82~'89)

5차
교육과정('90~'95)

6차
교육과정('96~'02)

7차
교육과정('02~)

대안교과서 시안

신간회

1927년 지도자층 대부분을 망라한 광범위한 조직

독립운동가를 총 망라한 신간회

민족운동자들은 신간회를 중심으로(76년) 민족주의계와 사회주의계가 연계되어 민족 단일 조직... 일제의 교묘한 탄압과 사회주의계열의 투쟁 노선 변개로...(79년)

민족주의계와 사회주의계가 합작... 일제의 교묘한 탄압과 사회주의계의 배신으로...

단일화된 민족운동을... 신간회가 결성... 일제의 교묘한 탄압과 내부의 이념대립으로...

신간회가 결성... 일제의 교묘한 탄압과 내부의 이념대립, 그리고 코민테른의 지시를 받은 사회주의계열의 책동에 의해...

신간회의 해소는 1930년대에 들어서 새로 구성된 집행부가 우경화된 것이 주요 계기가 되었지만 코민테른의 노선변화도 한 요인으로 작용...

1927년 1월 민족주의자들(이상재)의 주도하에 신간회를 창립... 중국에서 국공합작의 실패로 좌경화한 코민테른이 민족협동전선의 해체를 요구한 후 공산주의자들은 1931년 신간회를 해체...

동아, 조선 일제하 활동

동아, 조선 등의 신문은 일본의 약탈정책을 비판하고..

언급없음

동아, 조선, 그리고 많은 잡지가 민족의 성원리에 근대적 저어널리즘을 일으키어 근대의식을 크게 성장시켰다

언론기관의 다양한 활동은 근대적 저어널리즘을 일으켜 대중사회에 근대의식을 심어주었고 근대 정치의식을 키워...

문맹퇴치운동에 앞장을 선 것은 조선, 동아 등 민족 언론이었다.

앞장서서 문자보급운동을 전개한 신문사는 조선일보... 조선총독부의 탄압... 막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조선일보에서는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문자 보급운동을 벌여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동아, 조선, 시대의 3대 일간지 시대는 민족주의 언론의 증대... 민족언론은 ... 민족주의 의식의 정립과 고취를 추구...

일제하 사회주의자 항일운동

직접적 언급없음

언급없음

언급없음

언급없음

중국공산당과 함께 연안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던 조선독립동맹계열의 조선의용군은...

중국공산당과 함께 옌안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고 있던 조선독립동맹계열의 조선의용군은...

공산주의자들은 무장투쟁을 시작... 동북인민혁명군으로 편성... 해방구를 만들어 자치정부를 세우고 토지개혁을...

1925년 4월에 조선공산당이 창건... 노동자, 농민 대중 속에서 혁명적 노동조합과 농민조합을 조직하는 활동... 해방후 그들은 영웅이 되었다.

일제하 친일행위

언급없음

언급없음

친일파가 그들에 동조하여 이 운동에 앞장선 것은 민족적 불행이었고 그 해독은 해방이후까지 영향...

저항적이고 자주사상을 고취하는 문예활동이 활발... 이광수와 최남선은 새로운 소설과 신체시를 발표..

악조건하에서도 저항적이고 자주사상을 고취하는 문학활동... 이광수와 최남선은 새로운 소설과 신체시를 발표...

일부 문인 중에는 이광수, 최남선 등과 같이 일제에 동원돼 이용당하거나 일제에 협력하는 사람도...

친일활동에는 이광수 등 문은은 물론... 일제말기에 이르러 많은 종교단체와 종교지도자들이 친일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언급없음

종군위안부

언급없음

언급없음

언급없음

여자들까지 침략전쟁의 희생물로 삼기도 했다...

언급없음

여자들까지도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끌려가 일본군의 위안부로 희생...

여성들은 군위안부로 이용... 수십만으로 추산...

여자근로정신대를 만들어 동원하였다

ⓒ 오마이뉴스 김영균


[건국기~이승만 정권] 오랜 독립운동가이자 탁월한 정치가 이승만

▲ 이승만 전 대통령
이승만 정권에 대한 대안교과서 시안의 평가는 굉장히 후하다. 대안교과서 시안은 이승만 정권의 반공포로 석방에 대해 "가장 훌륭한 외교 업적 중의 하나"라고 꼽고 있다. 또 "한미상호방위조약체결은 성공적 대미외교"라고 치켜세운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는 "오랜 독립운동가이자 탁월한 정치가"라고 평가했다. 이승만 정권 말기의 '권위주의(독재) 정치'와 부정선거에 관해서는 대체로 평이하게 사실만을 기록했다.

반면 옛 교과서들은 이승만 정권의 치적을 기록하면서도 비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박정희(2, 3차 교육과정, 64~81) 정권 시절 교과서는 "대통령 이승만의 독재화 경향", "정치 파동을 일으켜 국회를 탄압… 종신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변칙 헌법을 만들고 3선되었다" 등으로 썼다.

전두환(4차 교육과정, 82~89) 정권 시절 교과서도 "일당의 정권 욕망을 채우기 위해"라고 비판했다. 노태우(5차 교육과정, 90~95) 정권 시절에는 "부정선거를 감행하여 정권의 연장을 기도했다"고 가르쳤다.

다만 4~5차 교육과정 교과서는 "이승만 대통령은 공산세력을 막고 반공포로를 석방하는 등 과감한 반공정책"이라거나 "반공제일주의 노선을 견지하면서 대한민국 체제 유지를 위한 적극적인 외교"라고 일부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김영삼, 김대중 정권 시절 교과서는 "장기집권을 추구하면서 독재정치를 강화… 부정과 부패가 심화…", "부패척결이나 친일파 청산 등 민중의 요구는 소극적… 권력을 강화하는데 힘을 쏟았다"고 비판적으로 기록했다.

4·3제주항쟁과 여순사건 관련해서 대안교과서 시안은 군사정권 시절 교과서와 비슷한 서술을 하고 있다. 여기에 양민학살에 관한 기록은 빠져 있다. 김영삼, 김대중 정권 시절 교과서는 "진압 과정에서 무고한 주민들까지도 희생", "수만명의 제주도민들이 함께 희생"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대안교과서 시안은 공산주의자들의 무장봉기에 초점을 맞췄을 뿐, 이미 드러난 현대사의 아픔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 박정희 이후 군사정권 시절의 교과서와 같은 맥락이다. 6·25 전쟁 중 양민학살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양민학살에 관한 가르침은 유일하게 김대중(7차 교육과정, 02~) 정권 시절에만 나와 있다.

반민특위에 관해서는 김영삼, 김대중 정권 시절 교과서와 대안교과서 시안이 모두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게 눈에 띈다.

[표2] 교과서 분석

구분

1차
교육과정('56~'63)

2차
교육과정('64~'73)

3차
교육과정('74~'81)

4차
교육과정('82~'89)

5차
교육과정('90~'95)

6차
교육과정('96~'02)

7차
교육과정('02~)

대안교과서 시안

4.3제주항쟁과 여순관련

언급없음

언급없음

북한은 남한의 공산주의자를 사주하여 제주도에서의 폭동과 여수 순천에서의 반란을 일으키게 하였다

남한의 공산주의자를 사주하여 제주도 폭동사건과 여수 순천 반란사건을 일으켰다... 북한 공산당의 사주 아래 제주도에서 공산무장폭도가 봉기하여.. 남한 교란작전 중의 하나였다...

제주도 4.3사건은 공산주의자들이 남한의 5.10총선거를 교란시키기 위해 일으킨... 여수 순천 반란사건은 새로이 수립된 대한민국을 혼란시키기 위한...

제주도 4.3사건은 공산주의자들이 남한의 5.10총선거를 교란시키기 위해 일으킨 무장폭동... 진압과정에서 무고한 주민들까지도 희생... 여수 순천 10.19사건은 군부대내의 일부 좌익세력이 반란을...

단독정부수립에 대해 가장 격렬한 반대투쟁이 일어난 곳은 제주도... 공산주의자와 일부 주민들은 무장봉기... 수만명의 제주도민들이 함께 희생...

좌파는 제주 4.3사건과 여순반란, 그리고 그 잔당들에 의한 빨치산 투쟁 등의 무장봉기를 통해 신생 정부의 안정을 위협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북한과 연결되어 있었다

반민특위

언급없음

언급없음

언급없음

언급없음

언급없음

친일파를 처벌하기 위한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 이승만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친일파를 처단하자는 움직임... 이승만 정부는 친일파의 처벌에 소극적... 노골적인 방해...

반민특위는 1949년 초부터 본격적인 활동... 이승만 대통령이 우려 성명... 경찰은 여러 방식으로 위원회를 공격...

6.25발발

북한 괴뢰군의 불법 남침과 중공군의 침입으로 참담한 민족의 비극을 초래하였고...(이병도) 비겁하게도 1950년 6월 25일을 기하여... 가는 곳마다 살인방화를 일삼아 수라장을 만들었다

그들은 침략을 목적으로 한 오랫동안의 준비를 가지고 불의에 38선을 넘어 불법적인 공격을 감행하였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북한의 공산군은 소련과 중공의 후원 아래 일제히 남침을 개시하여 민족상쟁의 미국을 야기시켰다

급기야는 소련과 중공의 지원아래... 불법적인 남침을 개시하여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켰다... 소련의 사주를 받아 일으킨 전쟁이다

급기야는 소련의 지원아래... 38도선 전역에 걸쳐 남침을 개시함으로써 동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하였다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약속받았으며... 무력으로 남침을 감행... 정치적으로는 이승만 정부의 독재화에 이용되기도...

특히 소련은 북한의 군사력 강화와 전쟁준비를 도왔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전면적인 공격으로 전쟁은 시작되었다

6.25전쟁은 공산 북방 3국인 북한, 소련, 중국이 사전에 긴밀하게 협의한 이후 일으킨 전쟁... 소련군사고문단들이 북한에 들어와서 ‘선제타격작전계획'이라는 세부적인 남침 계획을 수립했다

전쟁중 양민학살

언급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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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학살도 곳곳에서 일어났다. 남한에서는 보도연맹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처형... 북한군도 대전 등지에서 많은 주민들 죽였다...

언급없음

이승만 정권 평가

해당사항없음

동란으로 폐허가 된 한국은 또 정치적인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그것은 대통령 이승만의 독재화 경향이었다

재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정치파동을 일으켜 국회를 탄압... 종신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변칙헌법을 만들고 3선되었다

전란 중 이승만 대통령은 공산세력을 막고 반공포로를 석방하는 등 과감한 반공정책... 재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계엄령 선포하에 국회를 탄압... 일당의 정권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제1공화국 정부는 반공제일주의의 노선을 견지하면서 대한민국체제 유지를 위한 적극적인 외교... 선거에서 부정선거를 감행하여 정권의 연장을 기도...

이승만 정부는 공산군의 남침을 경험했기 때문에 국가안보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 장기집권을 추구하면서 독재정치를 강화... 부정과 부패가 심화...

이승만 정부는 집권후 부패척결이나 친일파 청산 등 민중의 요구는 소극적... 권력을 강화하는데 힘을 쏟았다... 민심은 점차 등을 돌렸다... 결국 이승만은 대통령직을 내놓고...

반공포로 석방은 이승만 대통령의 가장 훌륭한 외교 업적 중의 하나,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은 성공적 대미외교... 오랜 독립운동가이자 탁월한 정치가였던 이승만 대통령의 권위주의 정치가...

ⓒ 오마이뉴스 김영균


[4·19혁명~5·18민주화운동] 5·16과 유신 치켜세우기

▲ 뉴라이트 측 '교과서포럼' 편 한국 현대사의 허구와 진실.
대안교과서 시안을 박정희 정권 시절 교과서와 비교해 보면 사뭇 비슷한 결론이 내려진다. 5·16을 비롯한 박정희 정권의 주요 정책(한일회담, 10월 유신)에 대해 대안교과서 시안은 당위성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우선 대안교과서 시안은 5·16군사쿠데타를 '혁명'으로 높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대안교과서 시안은 "5·16은 미시적으로는 군사쿠데타"라면서도 "거시적으로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주도할 새로운 대안적 통치집단이 등장한 계기"라며 "5·16은 혁명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소제목도 '5·16 혁명'이다.

앞서 박정희 정권 시절 교과서도 5·16에 대해 "박정희 장군을 중심으로 일어난 혁명군은 대한민국을 공산주의자들의 침략 위협으로부터 구출하고"라고 썼다. 이후 등장한 전두환 정권과 노태우 정권의 교과서도 "5·16 군사혁명"이라고 기록했다. 김영삼, 김대중 정권 이후에 와서야 교과서는 5·16을 '군사정변'으로 가르치고 있다.

한일회담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대안교과서 시안은 한일회담이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본과 기술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대외신용도가 크게 상승돼 외국자본을 안정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더 후한 것은 다음의 평가다. 대안교과서 시안은 "정부는 건국 이후 최대의 인원이 동원된 것으로 평가되는 (한일회담)반대운동에 단호하게 대처함으로써 반대세력과 국민들 사이에 통치 권력으로서 권위를 과시하고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의 주체가 되리라는 확신을 심을 수 있었다"고 쓰고 있다. 한일회담 반대시위를 진압한 게 통치 권력으로서 주체성을 세운 계기가 됐다는 얘기다.

이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가르침 내용이다. "굴욕외교에 반대한 학생들의 시위"가 교과서에 등장한 것은 김영삼 정권 이후다.

10월 유신에 대해서도 대안교과서 시안은 박정희 정권 시절 교과서와 똑같은 평가를 하고 있다. 대안교과서 시안은 "행정적 차원에서 국가적 과제 달성을 위한 국가의 자원동원과 집행능력을 크게 제고하는 체제"라고 10월 유신을 높이고 있다. 박정희 정권의 교과서 역시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처하고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달성할 정치, 사회 풍토를 조성하고자 10월 유신을 단행"이라고 가르쳤다.

4·19혁명이나 신군부의 등장,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대로 평가가 조금씩 다르다. 특히 대안교과서 시안은 5·18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해 "발전과 중앙권력으로부터의 소외가 누적된 데다 그 지역 출신 김대중의 체포소식이 분노를 야기했기 때문"이라고 쓰고 있어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표3] 교과서 분석

구분

1차
교육과정('56~'63)

2차
교육과정('64~'73)

3차
교육과정('74~'81)

4차
교육과정('82~'89)

5차
교육과정('90~'95)

6차
교육과정('96~'02)

7차
교육과정('02~)

대안교과서 시안

4.19혁명

해당사항 없음

4.19의거는 민중이 독재정권을 타도하는데 성공한 한국사상최초의 의거였으며 그 주역은 학생... 학생들은 순진한 마음으로 충분한 이론적 준비와 하등의 전략전술도 없이 남북 학생회담을 제의... 억압되었던 자유가 풀리자 정치, 사회면에서 커다란 혼란...

학생들이 4월 의거를 일으키고 국민들이 이에 호응... 일부의 분별없는 정치세력이 등장하여 자유를 외치며 가지각색의 자기 주장을 요구하는 데모사태가... 사회혼란만으로 끝나지 않고 북한공산주의의 침략위험을 증대...

4월 의거 전후의 정치적 사회적 불안과 무질서... 일부 분별없는 정치세력이 책임이 따르지 않는 자유를 내세우며... 이러한 국내혼란은 북한이 호시탐탐 남침을 노리는 중대시국을 초래하기에 이르렀다

자유당 정권은 마산사건의 배후에 공산주의 세력이 개입됐다고 발표해 사태를 수습하려... 4.19의거 전후... 사회혼란이 심각해졌으나 민주당의 장면내각은 사회질서를 유지할 정치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4.19혁명은 학생과 시민들이 중심이 되어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민주혁명으로서... 자제할 줄 모르는 일부 국민들의 과도한 욕구분출로 시위가 계속... 무질서와 혼란이 지속...

4.19혁명 후 사회 각계 각층에서는 민주화의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났다.... 무엇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통일에 대한 열망... 민주당은 부정선거 책임자나 부정축재자의 처벌에 소극적...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나 사회운동을 억눌렀다... 미완의 혁명...

4.19학생운동... 권력을 붕괴시킨 학생운동조직은 견제되지 않는 권력으로 등장하기도... 좌파적 세력은 학생운동권을 장악... 사회적 불안의 요인... 진보와 사회주의를 내걸고 공산주의체제를 미화하는 단체들의 숫자도 급속도로 확산... 학생운동 반미주의로...

5.16군사쿠데타

해당사항없음

혁명은 박정희 장군의 영도 아래 추진되어 전격적으로 무혈혁명을 완성... 정치, 사회혼란을 수습하여 밝은 민주정치의 터전 마련...

박정희 장군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난 혁명군은 대한민국을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위협으로부터 구출하고 국민들을 부정부패와 불안에서 해방시켜 올바른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박정희 등 군인들이, 사태의 심각성에 비추어 국가를 위기로부터 구하고 국민을 부정부패와 불안으로부터 해방시켜 민주국가를 건설하자는 기치아래 5월 혁명을 일으켰다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군부가 5.16군사혁명을 일으킴으로써... 군부는 헌정을 중단시키고 국가재건최고회의를 구성하여 군정을 실시하였다...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일부 군부세력이 사회적인 무질서와 혼란을 구실로 군사정변을 일으켜... 국가재건최고회의를 구성하고 군정을 실시...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일부 군인들은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 반대세력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였다. 국회와 정당, 사회단체를 해산하고... 비밀리에 민주공화당을 만들고...

5.16은 미시적으로는... 군부쿠데타... 거시적으로... 한국사회의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제인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주도할 새로운 대안적 통치 집단 등장의 계기... 경제발전의 획기적 계기가 된 5.16이 혁명적 사건...

한일회담

해당사항없음

오랫동안 끌어오던 한일국교를 타개하여 경제외교면에서 새로운 국면을 전개하였다

자유당 정부이래 현안이었던 한일문제를 타결하여 우호수교관계를 수립하였으며...

자유당이래 추진하던 한일간의 국교도 정상화시키는 등 우리의 국제적 지위를 향상...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함으로써 한국, 미국, 일본의 3국 관계에 새로운 장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위해 한일회담을 추진하였는데 이는 시민과 대학생들의 대일 굴욕외교반대에 부딪혀 이른바 6.3시위를 유발시켰다. 이에 박정희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여...

한일회담에서 국민들은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차관을 비롯하여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데만 치우쳤다. 이에 많은 학생과 시민, 언론들은 ‘굴욕적인 대일외교'에 반대하였다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본과 기술을 안정적으로 공급... 대외신용도가 크게 상승되어 외국자본을 안정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 건국이후 최대의 인원이 동원된 것으로 평가되는 반대운동에 단호하게 대처함으로써 반대세력과 국민들 사이에 통치 권력으로서 권위를 과시하고 일관성있는 정책추진의 주체가 되리라는 확신...

10월 유신

해당사항 없음

해당사항 없음

대한민국은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대처하고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달성할 정치, 사회풍토를 조성하고자 헌법을 개정하고 10월유신을 단행...

정부는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한다는 명분 아래 헌법을 개정하고...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적 징후를 보였다

유신체제는 능률을 극대화하고 국력을 집약한다는 명분 아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변질시킨 권위주의 체제였으며 민주헌정체제로부터의 이탈을 의미... 유신체제는 권위주의적 체제의 경직성과 각종 역기능이 심화됨으로써 국내외의 많은 도전을 받았다...

강력하고도 안정된 정부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세워 장기집권의 길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국가 행정의 능률을 극대화하고 국력을 집약해서 사회를 조직화한다는 명분으로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 정치활동을 제약한 독재체제였다

박정희 정부는 정치적 안정이 중요하다는 구실을 내세워 강압적인 통치에 나섰다...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민주주의가 아닌 독재체제로 나간 것이 유신체제였다

유신체제는 권력구조적차원에서 영도적 권한을 지닌 대통령의 종신집권을 보장하는 체제이다. 그러나 동시에 행정적 차원에서는 국가적 과제 달성을 위한 국가의 자원동원과 집행능력을 크게 제고하는 체제이기도 하다.

신군부와 5.18민주화운동

해당사항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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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사태가 일어났다... 북한공산군의 남침위기에서 벗어나고 국내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정부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 과감한 개혁을 추진...

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12.12사태가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제5공화국은 복지사회의 건설, 정의사회 구현 등을 통치이념으로 내세우고 특히 정치풍토 쇄신에 노력하는 듯 하였다. 그러나 민주화운동의 탄압과 여러 부정사건 및 비리로 인해 국민의 비난을 면하지 못하였다.

신군부세력이 일부 병력을 동원해서 군권을 장악하고 정치적 실권도 장악하였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의 요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무고한 시민들도 살상되어 국내외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신군부세력은 이미 1979년 12월 병력을 동원하여 군대내의 온건파를 제거하고 군사권을 장악... 미군은 이미 계엄군의 광주진압을 위한 병력이동에 동의... 5.18민주화운동은 이전 민주화운동을 계승하면서도 시민이 하나가 되어 군부독재에 저항하였다는 점에서 한층 높은 민중의식의...

광주에서 격렬한 저항이 발생한 것은 그 동안 발전과 중앙권력으로부터 소외가 누적된데다 그 지역 출신 김대중의 체포소식이 분노를 야기했기 때문... 국가권력이 특정지역에서 5일간이나 무력화 되었다는 면에서도 유례가 없는 이 사건은 200여명의 사망자와 수많은 부상자를 낳았다... 4.19학생봉기와 더불어 민주화 역사를 장식하는 중요한 사건...

ⓒ 오마이뉴스 김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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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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