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 문학사상사
처음 접했던 하루키는 놀라움, 신선함, 파격, 세련됨, 여유로움이었다. 그때까지 접했던 어떤 작가와도 다른 깔끔하고 세련된 세계. 하루키의 소설 속에서 나는 스스로 세련되어지고 자유로워지고 쿨해졌다. 지금보다 십년은 젊었던 시절, 책을 읽을 때마다 이제는 세상을 다 알아버린 것 같은 뿌듯함과 자만심에 사로잡히던 때였다.

그 이후 하루키의 모습은 여러 가지로 변모했다. 신선하고 깔끔했던 그의 세계가 어느날부터 허황되고 우습게 느껴졌는가 하면 또 어느날은 다시 그 누구보다 깔끔하고 아름다운 문체를 가진 천재작가로 여겨지기도 했다. 결국 내게 있어 하루키는 2, 3년의 시차를 두고 두 가지 모습으로 번갈아 나타났다. 쿨한 작가, 그리고 허영심에 가득 찬 유치한 작가.

많은 이들의 인생에 이런 작가가 한명쯤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읽을 때마다 다른 평가를 내리게 되는, 이를테면 인생의 이정표와도 같은 작가. 내게는 하루키가 그런 작가였고, 그러므로 하루키를 읽는다는 것은 일종의 오락과도 같았다. 어떤 느낌을 받게 될지 예측해보는 설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하루키 작품 중 가장 가슴에 남았던 책이었기 때문에 조금 더 설렜다. 3년 전, 그 잘 읽히는(하루키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쉽게, 잘 읽히는 문장) 문장을 쭉쭉 읽어 내려가면서 저절로 터져 나오던 탄성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하루키 작품 중 최고로 아름답다. 너무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다. 내가 읽었던 사랑 이야기 중 단연 최고다. 나는 하루키 팬들을 만날 때마다, 내 느낌에 약간의 과장을 섞어서 말하고 다니곤 했다. 그렇다면, 이제야 세상을 조금 알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 지금의 내가 읽는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어떤 색깔일까?

2006년 12월, 나이 서른둘의 한국 여자가 다시 읽는 하루키의 특성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1. 등장인물들은 맛있는 음식이나 좋은 술을 '맛'으로만 선별하여 찾아다니며 먹을 수 있다.

즉 이들은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가격'으로부터 언제나 완전히 자유롭다.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이 꼭 부잣집 자제들인 것만은 아니고 때로는 임금이 싼 파트타임잡을 갖기도 하는데 그런 순간에서조차 이들은 '경제적인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 하루키 소설의 특징인 '세련됨'과 '여유로움'은 근본적으로 주인공들의 이런 경제적 특성에서 출발한다.

2. 언제나 여자가 남자에게 먼저, 그리고 적극적으로 접근한다.

남자는 우유부단한 성격이고 비현실적인 공상을 즐기며 예술적으로 세련되었다. 남자에게 접근하는 여자는 평균 두 명인데, 한 명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섹시하며 섹스에도 적극적이다.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봤을 때 '퀸카'라 여길만한 쟁쟁한 여자다. 그런데도 남자의 마음은 이 여자만으로 다 채워지지 못한다. 이 여자와 사귀면서도 어딘가가 허전한 남자 주인공에게 굉장히 신비하고 특별한, 그러나 보통 사람들 눈에는 쉽게 매력적이라고 보이지 않는 그런 여인이 나타나고 남자 주인공은 이 여인에게 흠뻑 빠진다. 그리고 대부분, 새로이 나타난 이 여인은 굉장한 부자이다. 우아하고 깔끔한 옷차림, 그리고 값비싼 레스토랑에 언제든 출몰할 수 있는 부를 갖추고 있는.

3. 주인공들이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모두 '비생계형'이다.

그들의 대화는 대부분 예술적인 것, 관념적인 것, 인생에 관한 은유적인 회상이다. 현실에 기반 한 대화를 하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현실 자체가 화두가 되지는 않는다. 즉, 먹고 살기 어렵다거나, 남편과 갈등한다거나, 정치적인 일본의 사정이 어때서 분노한다거나 하는 문제는 하루키 소설 주인공들에겐 절대 주관심사가 되지 않는다. 그저 잠깐씩 등장하는 소재거리의 하나가 될 뿐. 하루키 소설이 쿨하고 깔끔한 느낌을 주는 것은 많은 부분 이런 조건에서 연유한 것이리라.

4. 주인공들은 자신의 인생에 일어난 현상들에 대해 절대 '집착'하지 않는다.

상처받고 아파하면서도 현실적인 미련은 애초부터 가지지 않는 것. 시마모토와 헤어진 후 거리를 거니는 남자주인공의 모습을 보자.

...하지만 그곳에서 혼자 가만히 않아 있는 것에도 지쳐, 시부야까지 산책을 하기로 했다. 나는 거리를 걸으면서 거기에 있는 다양한 건물과 가게를 바라보고, 다양한 사람들이 삶을 꾸려나가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했다. 내가 두 다리로 거리를 이동하고 있다는 감각 그 자체가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음울하고 공허하게 보였다. 모든 건물은 무너져 내리고, 모든 가로수는 그 빛깔을 잃고, 모든 사람들은 신선한 감정과 생생한 꿈을 버리고 떠나버린 듯이 보였다...

@BRI@이 장면은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너무 좋아서 열 번씩은 읽고 지나간 장면이다. 연락이 끊긴 애인을 그리워하며 거니는 남자 주인공의 눈에 비친 거리가 얼마나 공허한지, 독자의 가슴에 그대로 전해져 오지 않는가. 이별의 아픔으로 거리가 온통 쓸쓸하게만 비치지만 그는 결코 시마모토를 찾아가거나, 전화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그저 거리를 거닐 뿐이다. 현실에서는 결코 집착하지 않는, 하루키 소설의 전형적인 캐릭터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하루키가 세련되게 보이는 때가 언제이고, 허황되게 보이는 때가 언제인지. 내 생활이 여유롭고 만족스러울 때 하루키 주인공들은 낭만적이고 쿨했지만 내가 현실적인 문제들로 고통스러워하거나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으로 좌절하고 있을 때 만나는 하루키 주인공들은 우습고 허황되었다.

하루키라는 작가는 전적으로 '내 일상'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해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한 작가의 작품은 누구가의 '독서'행위로만 완성된다는 말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만큼 '문학성'을 놓고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작가도 드물 것이다. 어떤 이들은 하루키를 '국적을 초월한 세계인의 정서를 가진 놀라운 천재작가'라고 평하는 반면 어떤 이들은 그를 '문학성이 결여된, 인기 있는 대중문학작가일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프랑스의 한 TV 프로그램에서는 그의 문학성을 놓고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다가 참가자들이 흥분해서 싸우는 바람에 그 방송 자체를 일찍 종영시켜버리는 일도 있었다. 이 정도라면 한번쯤 그의 문학에 심취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의 문학성 유무야 시간만이 판별해 줄 것이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야 그저 그의 작품을 즐기면서 유유히 인생을 돌아보면 되는 것이다. 2006년 12월, 지금 당신에게 하루키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는가.

덧붙이는 글 | 하루키는 자기 작품에 대해서 그 후기랄까 작품의 의도 같은 것은 잘 밝히지 않는 작가입니다.'독자가 여러 번 읽을 때마다 새롭게 읽혀지고, 독자마다 감상이 다를 수 있는 작품이기를 바란다'는 게 그의 의도라고 하는군요.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문학사상사(2006)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