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아침 10시께 베이징시 차오양취 르탄베이루에 자리잡고 있는 북한 대사관 앞. 일요일이라서 아무도 드나드는 사람이 없는 대사관 정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일반 시민들의 발걸음도 뜸한 이곳 앞에는 10여명의 취재진이 진을 치고 있었다.
북한 대사관 정문 앞은 지난해 6자회담 때와 약간 달라진 게 있었다. 굳게 닫힌 정문 앞 5m 정도 도로와 맞닿은 지점에 1m50㎝ 가량의 녹색 철책이 세워져 있었다. 집요하게 대사관에 접근하는 취재진을 차단하거나, 아니면 대사관을 상대로 벌어질 지 모르는 불상사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BRI@북한 대사관 앞 도로 건너편에는 6~7개의 ENG 카메라들이 있었다. 대부분이 NHK·TBS 일본 언론들의 것으로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북한 대사관의 사소한 움직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일본 언론들의 북한 대사관에 대한 이런 관심은 그들이 납치 문제 등 얽혀있는 문제가 대단히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 일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현 시점에서 북한이 일본에게 관심을 보일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북한 대사관의 정문이 열린다면 일본 언론들은 득달같이 뛰어가 납치문제에 대해 질문을 할 것이지만, 북 관계자의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북, 비핵화 않으면 유엔제재 여전히 유효"
일본의 납치문제 의제화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소 닭보듯 하는 것이라면 북한의 금융제재 해제 요구에 대한 미국의 현재까지의 반응은 '동문서답'이라고 할 만한다.
17일 낮 1시20분께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했다. 추은 날씨에 오들오들 떨면서 기다리던 수십명의 취재진이 그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으나 그가 허락한 시간은 채 5분도 되지 않았다.
질문 : 북한이 만약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를 장기적 관점에서 언급할 것이며 대신 '우리는 영변 원자로 가동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한다면, 미국은 '구체적인 조치'를 고려할 것인가?
답변 :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은 지난해 9·19 공동성명의 진전을 위한 것이다. 북한은 비핵화에 진지해질 필요가 있다. 만약 북한이 비핵화에 진지해진다면 좋은 일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않다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질문 : 금융제재에 대해 말 좀 해달라.
답변 : 나는 북한이 유엔 안보리 결의 1695호와 1718호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는 이상 유엔 결의는 여전히 유효하다. 만약 제재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북한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몇가지 아이디어가 있다. 우리는 회담 참가국들과 이번 회담을 주의깊게 준비했다. 우리는 상당히 준비가 되어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이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무엇인가 실질적인 것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북한에게 달려있다.
북·미 베이징에서 '동상이몽'
북한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16일 베이징에 도착해 "9·19 공동성명의 다른 공약들은 우리가 논의해볼 수 있다. 그러자면 우리에 대해 가해진 제재가 해제되는 게 선결조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핵무기는 미국의 침략에 대처하기 위해 억지력을 만든 것이다, 억지력이 필요한 한 우리는 계속 가지고 있을 것"이라면서 "지금 핵무기를 포기한다는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 6자 회담이 18일 시작되면 동시에 북·미 양국 사이에 금융제재 문제를 둘러싼 양자 협의가 시작된다. 김 부상의 발언은 9·19 공동성명의 이행에 대해 논의하려면 먼저 금융제재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힐의 17일 공항도착 발언은 이와는 방향이 상당히 다르다.
북한이 문제삼고 있는 금융제재에 대해 기자가 질문하자 그는 이에대해 대답하지 않고 엉뚱하게 유엔 제재 얘기를 꺼냈다. 유엔결의 1695호는 지난 7월5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뒤, 1718호는 핵실험을 한 뒤 나왔다.
북한이 받고 있는 제재는 유엔이 한 것이지 미국의 것은 해당되지 않거나 문제될 것이 없다는 식으로 들릴만한 발언이다.
김계관 부상의 발언을 죽 듣다보면 그가 6자 회담 자체가 아니라 이와 동시에 열리는 금융제재 문제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힐 차관보는 이번에 베이징에 온 이유가 6자 회담의 이행, 즉 '비핵화=북핵 폐기'를 위해서라고 다시 강조했다.
6자 회담 본회담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북한과 미국은 베이징에서 동상이몽을 꾸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