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인터넷 정보공개 절차를 까다롭게 규정해 사실상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알권리를 제한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보공개 청구 과정에서 금융거래에나 사용되는 공인인증서를 요구하고, 수수료는 반드시 '정부수입인지'로 받는 등 번거로운 절차 규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기관들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만으로 실명인증이 가능하도록 하고, 계좌이체와 휴대폰 결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수수료를 납부토록 하고 있는 것과는 대별된다.
우선 각 기관에 정보공개를 청구하는 방법은 크게 우편, 방문, 모사전송, 인터넷 신청 등 4가지가 있다. 헌법재판소가 2004년 12월부터 2006년 9월 21일까지 인터넷으로 정보공개 청구를 받은 것은 9건 뿐이다. 같은기간 우편 및 방문접수를 포함해 헌법재판소에 들어온 총 82건의 정보공개 청구 중 10.97%에 해당하는 수치다.
행정자치부가 지난 8월 발행한 '2005년도 정보공개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한해동안 인터넷을 통해 정보공개를 청구한 총비율은 약 34%이다. 헌법재판소의 인터넷 정보공개 청구 비율은 평균 수치에도 크게 못 미친다.
같은 사법기관인 대법원의 경우 2004년 11월 이래 현재까지, 인터넷을 통한 정보공개 청구 건수가 1289건에 이른다. 서울고등법원의 경우도 456건이다. 다른 공공기관과 업무 성격이 다르다고 해도 헌법재판소의 인터넷 정보공개 건수는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절차1] '공인인증서'로 실명확인을 해라?
대부분의 국가기관은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만을 입력하면 정보공개 청구가 가능하다. 국가기관인 국회, 법원, 열린정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의 사이트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만 확인되면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정보공개 청구를 위해 공인인증서가 필요하다. 공인인증서란 주로 온라인 금융거래시 신원증명을 위해 사용되는 전자서명의 일종이다.
공인인증서는 기존의 온라인 금융거래에서 신분이 도용되기 쉬웠던 단점을 극복하고자 만들어졌기 때문에 발급 절차가 까다롭다. 공인인증서 신청을 희망하는 사용자는 신원확인 서류를 들고 공인인증기관 또는 등록대행기관(은행, 증권사, 우체국 등)을 직접 방문해야 한다.
공인인증 및 등록대행기관은 발급신청자의 신원 확인 후 참조번호, 인가코드가 기재된 등록 확인서를 준다. 사용자는 자신의 PC에 응용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참조번호와 인가코드를 입력해야만 공인인증서를 발급·사용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에 정보공개를 청구한 경험이 있는 희망제작소의 안진걸 팀장은 "다른 기관에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만으로 실명인증이 가능한데 왜 헌법재판소에만 유독 공인인증서를 사용하는지 모르겠다"며 "공인인증서가 없거나 사용하기 싫은 개인은 정보공개 청구를 포기하거나 까다로운 (공인인증서) 발급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결국 '온라인 청구'를 위해 오프라인상에서 뛰어다녀야 할 판이다. 신분증을 들고 헌법재판소를 직접 방문해 정보공개를 청구하는 것이 오히려 편리한 것이다. 국민의 편의를 위해 만든 온라인 서비스가 오히려 접근성을 저해하고 있는 것.
이에 대해 이경미 참여연대 정보공개사업단 간사는 "정보공개 청구 시 공인인증서 사용은 법적 근거가 미약하다"고 주장했다. 이 간사는 "사실 정보공개 청구에 주민등록번호도 필요하지 않다. 이름과 연락처, 주소 정도만 있어도 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와 관련 헌법재판소측은 "정보공개 청구 시 요구되는 공인인증서는 본인 여부 확인을 위한 절차로, 타인의 주민등록번호와 성명을 도용하여 정보공개 청구를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답변을 했다.
[절차2] 수수료는 정부수입인지만 가능하다?
최근 헌법재판소에 정보공개 청구를 했던 희망제작소 안진걸씨는 답신으로 정보 결정통지서를 받았다. 결정통지서 마지막장에는 커다란 글씨로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결정통지서를 받은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1. 수수료는 반드시 '정부수입인지'로, 2. 우송료는 반드시 '우표'로, 우리 재판소에 제출하시기 바랍니다."
타 기관 정보공개 청구 시 계좌이체로 수수료를 납부했던 경험이 있는 안씨는 "계좌이체로 납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헌법재판소로부터 "계좌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반드시 정부수입인지만을 받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에서는 정부수입인지를 구입할 수 없다. 결국 안씨는 정부수입인지를 따로 구입해온 후에야 수수료를 납부할 수 있었다. 정부수입인지는 은행이나 우체국에서만 판매한다.
이와 관련 헌법재판소 측은 "현재 정보공개 청구 수수료 납부를 위한 계좌는 개설되어 있지 않다"며 정부수입인지의 경우 "판매 수요와 인건비를 고려하여 헌법재판소 내 판매 인력을 두고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사실상 국민들의 정보접근권 차단"
반면 800여개 행정부 산하 기관의 정보공개 청구를 담당하고 있는 열린정부(www.open.go.kr)의 경우 수수료 납부를 위한 통로가 다양하게 열려있다. 계좌이체와 휴대폰 결제, ARS, 전자화폐 등이 그것이다. 집에서 인터넷으로 정보공개 청구와 함께 수수료 납부까지 할 수 있어 번거로움이 적다.
이경미 참여연대 정보공개 사업팀 간사는 "계좌이체를 할 계좌가 없다는 것 것은 기관 편의를 위한 것"이라며 "본래 정부수입인지도 구입이 불가능한 경우 수수료를 현금으로 대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승수 제주대 교수(변호사)도 "정보공개법에는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정보공개를 쉽게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법이 시행된지 만 9년이 되어가는 데도 일부 사법기관은 절차나 시스템을 정비하지 않아 사실상 국민들의 정보접근권을 차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헌법에도 명시된 국민의 알권리를 누구보다도 먼저 충족시켜야 할 헌법재판소가 까다로운 절차를 통해 시민들의 정보접근권을 사실상 제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 6조 2항은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공공기관은 정보의 적절한 보존과 신속한 검색이 이루어지도록 정보관리체계를 정비하고, 정보공개업무를 주관하는 부서 및 담당하는 인력을 적정하게 두어야 하며, 정보통신망을 활용한 정보공개시스템 등을 구축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정연경 기자는 <오마이뉴스> 5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