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백산서당’에서 만든 <청년이 서야 조국이 산다>라는 책이 있었다. 1989년 3월에 나온 책이다. 조진경(가명)씨가 쓴 이 책은 80년대 말~90년대 초까지 운동권 필독서로 유명했다. 이적표현물 혐의를 둘러싼 법정 공방이 진행된 것은 당연한 일.
지은이가 이 책에서 지목한 '청년'은 당연히 펄펄 끓던 당시 운동권 학생들이었고, '서라'는 말은 곧 '떨쳐 일어나'라는 호소였다. '청년'이라는 단어에는 선도, 선봉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청년'은 그 자체로 군사독재와 반민주화시대 질곡의 현대사를 헤쳐나간 고유명사였다.
세월이 흘렀다. 강산이 두 번 변할 사이 정권도 세 번이나 바뀌었다. 그리고 2006년, 몇 년 전부터 청년이라는 단어가 다시 보통명사로 돌아오는 듯 하더니 이제는 정 반대 진영에서 다시 고유명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보수 청년집단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정부 시절, 남북정상회담을 둘러싼 보수층의 반발기류가 조성되는가 싶더니 참여정부 들어서 이들의 격한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여기에 청년 단체가 앞장섰다. 이들은 2002년 대선을 '2기 좌파정권의 등장'으로 규정하며 목소리를 높이다가 2004년 탄핵 찬성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면서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무한전진, 자유사랑청년연합, 자유개척청년단 등의 활동 및 창립과정도 맥을 같이 한다.
이들의 등장은 90년대 청년운동을 대표했던 한국민주청년단체협의회(한청협)의 퇴조,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의 부진과 맞물리면서 그 영향력을 더해가는 한편,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등 다른 보수계층과의 연대를 통해 나날이 그 외형을 넓히고 있다. 이들을 묶는 연결고리는 주로 '북한'과 '김정일' 그리고 '미국'이다.
이들의 구호는 '행동하는 청년보수'다. 그러나 이들은 조직력보다 상징력에 기대는 행동을 많이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토론회나 세미나 등 사회적 소통을 통한 조직력 강화보다는 길거리에서의 화형식이 더 익숙한 풍경이다.
보수우익 청년단체들이 연대해 설립한다던 대한청년본부, 선진자유연합 등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역시 비슷한 의미로 창립 계획을 밝혔던 구국청년협의회 역시 아직 그 존재를 알리지 못하고 있다. 청년과 보수가 만나기 위해서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것일까.
[무한전진] 북 <로동신문>과 맞짱
'무한전진'은 '자유진영 청년단체'라는 모토를 내걸고 있다. 지난 2004년 3월 12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온라인상에 개설된 탄핵찬성카페(http://cafe.daum.net/impeachroh)가 모태다. 같은 해 8월 28일 창립총회를 개최해 공식활동을 시작했다.
무한전진은 그 해 10월, 인천공항에서 한통련 방문단의 귀국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여 환영행사를 무산시켰으며 국가보안법 개폐 논란이 일었던 12월에는 옛 한나라당사 앞에서 '국가보안법 사수와 4대 악법 저지'를 위한 철야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김정일정권 타도없는 국가보안법 개폐 결사반대한다'는 펼침막을 들고 "의회권력을 장악한 반역도당의 국보법 폐지기도에 맞서 자유와 안보의 선봉 무한전진이 청년들의 국보법 사수 의지를 보여주겠다"는 성명서를 배포했다.
국회 앞에서 농성을 벌이던 진보단체 회원들과 충돌해 몸싸움을 벌인 적도 있다. 이 단체는 2005년 1월 12일 미 대사관 정치과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어 "미 대사관이 특정단체들에 각별한 지원을 하고 있다"는 뒷말을 낳기도 했다.
무한전진의 활동은 2005년부터 독자활동에서 연대활동으로 확산된다. 그 해에는 주로 자유개척청년단 등 다른 청년단체들과의 연대를 모색해 맥아더 동상 철거 논란과 북한 대표단의 현충원 참배반대 투쟁 등에 앞장섰다.
2005년 7월에는 맥아더 동상 철거를 두고 진보단체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당시에는 "친북반미세력이 소위 평화대행진 등 일련의 과격한 반미소요사태를 벌임으로써 한미동맹을 와해시키고 연방제 통일의 분위기를 조성하려 날뛰고 있다. 이는 북한의 지령과 사주에 의한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서와 행사참가 안내문을 발표했다.
무한전진은 북한 <로동신문>과 논평전을 벌이기도 했다. 무한전진과 자유시민연대 북한민주화포럼이 지속적인 반북집회 등을 열자 이에 발끈한 북한이 <로동신문>을 통해 비난하고 나선 것.
<로동신문>은 지난 2005년 3월 23일 기사를 통해 "미국의 모략가들이 21세기 아카데미, 무한전진 등 신보수주의 단체들을 조직하고 의도적으로 조작하는 방법으로 친미세력 지반을 다지기 위한 책동을 음모적으로 벌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3일 뒤 무한전진도 이렇게 원색적으로 북을 반격했다.
"통일은 김정일 정권을 타도하고 이룩하는 자유통일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확신을 지닌 가운데 북한의 위협 속에서 대한민국의 안보를 튼튼히 할 수 있는 장치들로서 한미동맹과 국가보안법 등을 유지 강화해 나가야 한다는 공고한 믿음을 실천을 통해 인식시켜 나갈 것임을 명심하라. 민족의 원흉 김정일의 주구인 노동신문은 악의적인 진실왜곡을 중단하고 진정한 진보인 자유민주주의 확산을 거역하지 말며 가까운 장래에 고조될 자유통일의 물결에 순응하기 바란다."
올해 1월에는 자유개척청년단과 '혈맹식'을 맺기도 했으나 활동은 상대적으로 부진한 편이다. 지난 10월 '김정일 정권 종식과 노무현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국가비상대책협의회'에 참여해 목소리를 내긴 했으나 1~2년 전의 '선봉' 역할에서는 한 발 빠진 느낌이다.
회원수는 5000여명으로 창단 초기와 비슷하다. 홈페이지는 현재 막혀 있는 상태이며 예전에 쓰던 탄핵찬성카페를 소통의 공간으로 삼고 있다. 류현태 공동대표는 스스로 무한전진 활동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정신을 남북한 수구좌파의 반역적 움직임에 맞서기 위하여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기존 우파진영에는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고 울분을 토하는 국민들에게는 적지 않은 위안이 되어왔다고 감히 자평한다.
무한전진은 자타 공히 '강성'이다. 자유주의연대 등 중도적 보수의 움직임과도 확실한 선을 긋는다.
"어설픈 중도를 추구하는 것에 반대한다. 중도란 기준이 상대적인 것이다. 방관자 혹은 방종자들이 평상시 중도를 외치고 있지만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의 대결에 중도란 있을 수 없다. 평화시, 안정적 시기, 일상 속에 안주해 있을 때나 중도가 가능하다. 최후 결단의 순간에 서면 그들은 어느 하나로 선택을 해야 한다"(박창규 공동대표, <미래한국신문>과의 인터뷰)
[자유개척청년단] 최대집 대표, 내과의사(醫師)에서 보수의사(義士)로
지난 2005년 상반기, 보수진영 집회가 열릴 때마다 군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착용하며 머리띠를 두른 청년들이 나타나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들의 손에는 늘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사진에 뭔가 비틀거나 비아냥대는 문구를 넣은 합성물이 들려있었다. 이들이 바로 '자유개척청년단'이다.
자유개척청년단은 10여명의 단원으로 지난 2005년 4월 17일 창단했다. 창단식을 치른 장소도 특이했다. 경기 파주시 통일공원 내 '육탄십용사충효탑'. 단원들은 단지식을 거행해 태극기 위에 '빨갱이 박살', '자유통일'이라는 글자를 쓰기도 했다. 창단식이 끝나고는 바로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로 이동해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에 참배했다.
자유개척청년단의 모토는 '조국사랑 피끊는 열정'. 자유개척청년단이라고 이름붙인 배경에 대해 최대집 대표는 이렇게 설명한다.
"과거 서북청년단과 대한청년단 등 공산주의자들과 맞서 싸우는 청년들의 정책과 정신을 계승하고자 했다. 또 우리나라가 형식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체제가 갖춰져 있다지만 진정한 의미에서는 아직도 체제와 의식이 성립되지 않았기에 남한을 비롯한 북한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건설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런 이름을 짓게 됐다."
자유개척청년단을 이끌고 있는 최 대표는 서울대를 나온 소아과 의사다. 현재도 병원 일과 청년단 일을 병행하고 있다. 조대원 부대표는 미국서 대학을 나온 증권애널리스트로, 장기정 부대표는 뉴질랜드 유학파 프로골퍼라고 알려져 있다.
특히 최 대표는 전남 목포생으로 과거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지지자였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97년 대선 당시 자신을 보수주의자라고 말해 DJ가 쓴 책도 많이 봤지만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행태를 보니 그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다. 알고 보니 김대중은 사회주의자였다"고 말했다.
자유개척청년단은 많은 진보단체들과 마찰을 빚는다. 장기정 부대표의 경우 지난해 12월 평택역 앞에 걸려있던 진보단체의 현수막을 철거해 재물손괴 및 절도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며 지난 5월 북한 혁명열사릉 참배로 논란이 됐던 민주노총 관계자들을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2005년에는 허리케인 '카타리나' 피해복구성금 250만원을 모아 미 대사관에 전달하기도 했고 창립 초기에는 탈북자를 보호하지 않는 중국에 항의하는 뜻으로 베이징올림픽 보이콧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자유개척청년단의 주장 역시 '세다'. 우선 이들에게 2000년 6월15일은 '국치일'이다.
"국민 대다수가 알고 있듯이 탐욕스런 김대중이가 노벨상에 눈이 멀어 4700만 국민들의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세계10대 경제대국 대한민국을 인민 350여만명을 아사시키고 40여만을 수용소에서 처형 감금하는 1인 세습독재왕조와 동일선상에 놓고 지 멋대로 해괴한 남북통일방안을 선언한, 대한민국으로서는 국치일이다."
광주 해방구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김용갑 전 의원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도 독특하다. 인명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비판한 지난 11월 23일 성명서 제목은 '인명진 위원장은 김용갑 의원께 사죄하고 당은 당교란세력을 경계하고 투지와 맹성을 촉구한다'이다.
"지금 정체모를 타락한 일부 목사들이 세력화하여 현실 정치판에 뛰어들고 한나라당을 뒤흔든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목사가 우국 의원에게 반역(징계)의 칼을 들이대도 한나라당 의원들으 수수방관하고 있다… 일개 목사가 어찌 자기 멋대로 국민이 뽑은 충정스런 국회의원에게 이래 가지고 어떻게 대한민국을 지키겠다고 의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최 대표는 현재 도덕성, 윤리성 재무장을 위해 한나라당이 최근 설치한 참정치운동본부 산하 민심수렴위원회 위원직을 맡고 있다.
[자유사랑청년연합] '16대 대선은 무효' 주권찾기시민모임이 모태
자유사랑청년연합(자사청)은 2004년 9월 발기인 대회를 열고 창립한 단체다. 2002년 대선 당시 '창사랑'에서 활동한 이기권 운영위원장을 주축으로 설립했다. 이기권씨는 지금은 '창사랑'을 떠나 이회창 전 총재의 또 다른 팬클럽인 '대한민국 창사랑'에서 활동하고 있다.
자사청 역시 위 두 단체의 정체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이 운영위원장의 행보에 눈이 간다.
이씨는 2002년 대선 직후부터 '선거 무효'를 주장해 왔다. "누가 봐도 명확한 불법선거"라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전자개표기 작동에도 여러 의혹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씨는 자신의 주장을 전파하기 위해 대선 직후 '주권찾기시민모임'(주시모)이라는 단체를 결성하고 2003년 9월에는 한나라당 옛 당사 외벽에서 '16대 대선 무효' 고공시위를 벌이기도 했으며 2004년에는 삭발까지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주시모가 선관위를 상대로 낸 선거 무효소송에서 원고청구 기각판결을 내렸다. 이씨는 그 해 9월에 자사청을 주도적으로 창립한 뒤 주로 '반북투쟁'에 앞장섰다.
2005년 6월 15일에는 인천공항에서 남북회담 정부대표단 출국저지 집회를 벌였고 22일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비난 홍보물이 붙은 차를 몰고 북측 대표단 차량에 접근했다가 양화대교 부근에서 연행되기도 했다. 8월에는 북측 대표들의 현충원 참배에 반대하며 역시 기습시위를 벌였다.
이씨는 아직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대통령감'으로 생각하고 있다. "두 번의 대선을 통해 충분히 검증된 분"이라는 주장이다. 팬사이트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내년 대선 정국에서 보수청년세력간 '후보논쟁'이 예고되는 지점이다.
회원은 200여명. 최근에도 각종 집회에 단골로 참여하고 있지만 독자적 행보는 뜸한 편이다.
대학생은 진보적? 편견을 버려...꿈틀대는 보수
올해 대학 총학생회 선거에서도 운동권 출신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경희대·외국어대 등 수도권을 물론 강원대·전북대·동아대·경상대 등에서도 비운동권 후보들이 줄줄이 당선됐다. 2000년 초반까지도 운동권이 세를 형성하던 대학들이다. '확실히 넘어갔다'는 비아냥이 들릴 법하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 대학의 보수화 논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조금씩 다른 움직임이 펼쳐지고 있다. 이른바 NL(민족해방)-PD(민중민주) 계열의 사투 경연장이었던 대학이 이후 운동권-비운동권 식의 학생회 쟁탈전으로 이어지며 단순하게 구분됐으나 이제는 내부에서도 진보-보수 논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보수성향 대학생들이 뭉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서울대와 연세대·고려대 등 서울지역 20여개 대학 재학생 200여명이 지난 11월 17일 서울 청계광장에 모였다. 이들은 '비상시국대학생연합'을 발족하고 '간첩단 사건'의 엄정한 수사와 퍼주기식 대북정책 중단을 촉구했다.
이 단체는 성명을 통해 "개성공단 철수, 금강산 관광 중단을 촉구하는 한편 일심회 사건과 관련 민주노동당이 국민에게 사과하고 해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복과 인민군 복장의 퍼포먼스 등도 진행됐다. 대학생 집회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소품들이다. '비상시국대학생연합'은 지난해에 발족한 '한민족인권수호대학생위원회' 회원 중 일부가 주축이 돼 구성됐다.
이들의 움직임은 아직은 미진하고 게다가 이들을 아우르는 큰 연대체가 없는 것이 한계이긴 하지만 앞으로 대학내 이념적 대립지형이 확산될 경우 정치판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보수 대학생을 겨냥한 인터넷 사이트도 늘어났다. 세계화와 시장경제, 북한의 인권실현과 민주화 지향이라는 편집방향을 펴고 있는 대학생 웹진 바이트(www.i-bait.com)와 뉴라이트계열 '자유주의대학생네트워크'(www.jayou2006.net)이 대표적이다.
뉴라이트대학생연합 역시 뉴라이트전국연합의 하부조직으로 만만치 않은 세과시를 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회원 확보에 박차를 가하던 지난 11월 일부 대학 선대본부에 금품 제공 등을 약속하며 선거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나 대학생연합은 물론 전국연합에 상처를 입혔다.
이른바 '두 차례의 좌파정권'을 거치며 어느 정도 본 궤도에 진입한 듯 보이는 보수 청년대학생 그룹. 그러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선례도 적지 않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대학생 중심의 보수단체를 표방했던 미래한국연구회는 지난 2003년 결성돼 1000명 가까운 가입자를 확보했지만 단명했다. 같은해 출범했던 자유청년연대(옛 청년우파연대)나 청년한국운동연합회도 유명무실하다. 2002년 8월 결성된 보수주의학생연대(보학연) 역시 이렇다할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주력단체들과 투쟁방식과 수위의 차이만 있었을 뿐 그 기치와 목표가 크게 다르지 않았던 단체들. 이들의 쇠락이 지금 왕성하게 활동하는 청년 보수세력들에게 연대와 결집의 단초가 될 수 있을까. 앞으로 이들의 행보가 주목되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