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만 아삭한 김치 먹는다는 죄책감에 부모님도 김치냉장고 사드리려 적금 들다
그 이후로 이 놈의 김치 먹을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꽉 막힌 듯하면서 그렇게 맛있던 김치가 맛있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나만 맛있는 김치 먹는 것이 영 마음이 편치를 않았다. 그래서 며칠 후에 내가 부모님 김치냉장고 사드리자고 하자 아내도 그동안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면서, 김치 먹을 때마다 꼭 죄 짓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면서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래서 작년부터 조금씩 돈을 모아 사드리기로 했는데, 이놈의 돈이라는 게 주머니 돈이 쌈짓돈이라고, 조금 모아두면 쓸 일이 생겨서 홀딱 쓰고, 또 모아두면 또 쓸 일이 생기고... 돈 모은 지가 1년이 다 되가는데도 모은 돈이 10만원을 채 넘지 않았다.
이래서는 김치냉장고 살 돈 못 모을 것 같아서 올해 1월부터는 아예 3만원씩 따로 통장을 만들어서 돈을 모았다. 돈이 많다면야 언제고 사 드릴 수 있었지만, 솔직히 몇 십 만원 하는 돈을 턱 허니 한 번에 쓸 만한 형편이 못 되기에 조금씩 조금씩 모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올해 1월부터 매달 3만원씩 모아 36만원을 만들고, 엊그제 매달 15만원씩 5년간 들었던 적금을 탔는데, 그 돈에서 일부를 보태 장모님에게는 전자레인지를, 어머니 생신 선물로는 김치냉장고를 사드렸다.
그런데 어제 점심시간 조금 지나서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지금 택밴가 뭔가 왔는디, 한푼 두푼 모아서 살 생각을 해야지, 쓸데없이 이런 건 뭐하러 사 보내내. 아버지나 엄마나 1년 가야 김치 한 포기 먹을까 말까 하는데, 김치냉장고가 무슨 필요 있어. 물릴 수 있으면 당장 물리거라"하시며 역정을 내셨단다.
아버지랑 전화 통화할 때는 잠깐이지만 솔직히 역정을 내시는 아버지께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안다. 자식 걱정하는 마음으로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그래도 우리 아버지 마음 속으로는 '자식이 커서 이런 것도 사 주는구나'하시며 좋아하실 거라는 생각을 한다.
"아버지! 제가 나중에 후회될 것 같아서 샀어요. 제가 언제 아버지 엄마 뭐 사드린 적도 없고... 나중에 아버지 어머니 안 계시면 아무것도 못 해드린 게 마음에 남을까봐 샀어요. 아버지 어머니 위해서 산 게 아니라 저 위해서 산 거니까, 자식 마음의 짐 덜어주셨다고 생각하고 그냥 받으세요."
덧붙이는 글 | 미디어 다음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쓴 기사에 한해 중복 송고가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