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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다, 연말연시다, 세상이 온통 들떠 있다. 밤만 되면 거리마다 휘황찬란한 장식들로 요란하다. 연인끼리 팔짱에, 가족끼리 웃음에, 친구끼리 대화로 시내 중심가마다 시끌벅적하다. 거리풍경을 스치며 문득, 내게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행복하다. 가족과 함께 곤한 몸 눕힐 수 있는 구들장이 있다는 게 복에 겹다. 그러나 한편, 나만 너무 행복한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내가 이역만리 페루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한 남자 때문이다. 안양시 범계역 중심상가에서 4년 넘게 장신구 노점상을 하고 있는 토니(40). 동료 강사들과 회식이다 뭐다, 평촌 학원가에서 가까운 범계역 중심상가를 자주 드나들면서 보게 되었다. 술 취한 김에 아내에게 응석 부릴 장신구 한 개씩 사다보니 가끔 그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그가 한국말을 꽤 잘 한다는 사실도 말 붙일 빌미가 되었다.
"7년이나 한국에 살아서 정도 들었어요"
물론 그 역시 한국에 돈 벌러 왔다. 그러나 '코리아드림'은 공장생활을 하면서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처음 3년 동안 여기저기 이 공장 저 공장 전전하며 일했지만 월급을 떼이기 일쑤였고 나날이 힘들었다. 무엇보다 갖은 욕설과 핍박이 견디기 어려웠다.
"한국에 괜히 왔다 생각했어요."
그는 페루 시골 출신이다. 고향에는 부모형제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현재 한국생활 7년째다. 페루 여인과 결혼해 딸 하나를 두었다. 딸은 페루에 보냈다. 영구 귀국할 계획으로 그는 아내와 단 둘이 허리를 옥죄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래도 저는 운이 좋아요. 공장 안 다니고 이렇게 장사할 수 있으니까요."
장신구 노점상을 시작하면서 그는 비로소 한국 사람들이 참 정이 많구나, 하는 것을 느꼈단다. 공장생활 할 때는 한국 사람들이 무섭기만 했는데, 장사하면서 자유롭게 부딪치다 보니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한국이나 페루나, 세상 어디라도 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두루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하며 그는 씩 웃는다. 그의 우리말 구사는 참 정감 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장사하면서 숨통이 좀 트나보다 했는데 덜컥, 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친한 한국 사람에게 빌려줬다가 떼이고 말았다. 안 먹고 안 입고 모은 피 같은 돈이었다. 떼인 돈 얘기를 하며 그는 울먹울먹, 받을 수 있는 길이 없겠냐며 내 소매를 애처롭게 잡아끌었다. 그 목숨 같은 돈을 보충하기 위해 그는 아픈 날 아니면 연중 쉬지 않고 일한다.
고향이 늘…, 너무 그리워요
크리스마스와 연말로 그는 쉴 짬이 없다. 노점상에게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힘들 때마다 고향과 부모형제를 생각한다. 다행히 얼마 전에는 남동생을 한국에 데리고 와 외로움이 덜하다. 그러나 페루에 있는 딸 생각을 하면, 특히 한국의 가족들이 손잡고 가는 것을 보면, 딸이 너무 보고 싶어 미치겠단다.
"그래도 참아요. 계획이 잘 되면 내년 가을에 페루에 아주 갈 수 있어요."
고향에 가면 농사지으며 소도 키우고 싶다고. 부디 그의 소박한 희망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를 포함해 비공식 추산 25만 명이 넘는 국내 외국인 노동자들. 그들이 새해에는 제발 절망하지 않고 한국에서 꿈을 발견하기를 빌어본다. 그들 못지 않게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우리 사회 소외된 이웃들도 새해에는 작은 소망이라도 발견할 수 있는 세상이 열렸으면…. 두 손 모아 진심으로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