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신무용 선구자 조택원 타계 30주년을 맞아 무용전문지 '춤'지가 펴낸 화보집 표지
신무용 선구자 조택원 타계 30주년을 맞아 무용전문지 '춤'지가 펴낸 화보집 표지 ⓒ 춤
일제 강점기를 지나며 한국무용계는 자연스럽게 기존 무용과는 다른 새로운 흐름을 받아드리게 된다. 당시를 기록하는 남녀 두 거물이 신무용의 물결을 주도했는데 여자는 그 유명한 최승희이고, 남자로서는 조택원이라 할 수 있다. 이승만 정권에 비판적이란 이유로 원치 않는 바깥 생활을 13년간 해야 했던 조택원은 1960대에 고국으로 돌아와 1976년 타계할 때까지 한국 무용의 발전을 견인했던 핵심 인물이다.

함흥 명망가의 삼대독자로 태어난 조택원은 휘문고보 시절 러시아에서 온 박세묜을 우연한 기회에 만나 춤을 배워 16세에 토월회 무대에 서 선풍적 인기를 얻게 된다. 이로써 조택원이 춤과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을 받아드리게 되었다. 보성전문 법과에 진학하고, 상업은행 정구선수로 취직되었지만 춤에 대한 열망을 묶어둘 수는 없었다. 그는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춤에 매달렸다.

국내 무용극의 개념을 처음 도입한 조택원의 춤은 신무용이라 해서 전통무용과 서양무용의 가교적 의미를 갖는다. 지금이야 서양춤이 오히려 우리들에게 익숙하지만, 전통시대를 막 벗어나는 때에 신무용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세월이 지난 현재에 이르러 단지 그를 신무용의 선구자라는 말로 덤덤히 말할 수 있으나 막상 그 장본인에게는 가시밭길을 걷는 일이었다.

@BRI@조택원이 애초에 러시아 무용수 영향으로 춤무대에 선 것처럼 그의 무용에 지대한 영향은 끼친 사람은 최승희와 마찬가지로 일본인 이시이 바쿠였다. 그러나 조택원은 이시이 바쿠에 머물지 않고 본격적인 서양무용 탐구를 통해 현대무용과 한국 전통춤이 조화되는 그만의 춤세계를 구축했다. 그는 가사호접(袈裟胡蝶)」「만종(晩鐘)」「신노심불노(身老心不老)」「춘향조곡(春香組曲)」 등 주옥같은 명작을 남겼다.

그는 1973년 자서전 <가사호접(袈裟胡蝶)>을 집필하였고, 그 이듬해인 74년에는 대한민국 문화훈장(제1호)를 수상했다. 그리고 76년 6월 향년 69년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최승희와 함께 공연한 사진
최승희와 함께 공연한 사진 ⓒ 조택원 화보집
해외공연이 쉽지 않던 시절, 유럽에서는 유네스코와 <미시>라는 카톨릭 잡지로부터 수년간 후원을 받은 조택원은 해외에서 그 예술성을 먼저 인정받았다. 세계무용사에 남은 미국의 현대무용가 루스 세인트 데니스, 인도 근대무용의 선구자 우다이 상카르, 프랑스의 안나 리카르다 등과 교류하며 어깨를 나란히 했다.

젊은 시절의 조택원
젊은 시절의 조택원 ⓒ 조택원 화보집
그가 타계하던 해에 우리나라 무용계에는 ‘춤’이라는 무용전문잡지가 태어났다. 그때만 해도 ‘춤’지와 조택원이 어떤 인연을 맺게 될 지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96년, 조택원 타계 20주기에는 ‘춤’지의 주도적인 노력으로 국립극장 숲 속에 조택원 춤비가 서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10년 후 창간 30주년을 맞은 ‘춤’지는 춤자료관 연낙재 성기숙 관장이 수집한 조택원 사진과 기록을 하나로 묶은 화보집을 펴냈다. 지령 30년의 ‘춤’지는 떠들썩한 축배 대신 무용계의 의미있는 책 한 권을 통해 전문지로서의 진면모를 보였다.

근래의 기록은 잘 정리되고 있지만 전대의 것은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 문화계의 실정이다. 이번 조택원 화보집을 펴내는 데는 성기숙(춤자료관 연낙재 관장, 한예종 교수)씨의 노력이 컸다. 성 씨는 지난 4월 일본을 찾아가 조택원의 연인이자 예술의 동반이었던 오자와 준코가 소장하고 있던 사진과 자료를 수집하였다. 이는 조택원의 전성기 기록들로 근대 신무용의 미학을 근거해주는 귀중한 자료들이다.

이 책은 ‘춤’지 외 또 다른 무용전문지인 ‘댄스포럼’의 김경애 발행인이 기획편집의 큰 줄기를 잡았다. 일본 자료들과 함께 ‘춤’지 조동화 발행인이 평생 모은 자료와 가족인 원로무용가 김문숙 선생이 소장한 자료를 보태어 타계 30주년에 조택원의 춤인생이 700여장의 사진이 실린 화보집으로 탄생하게 됐다.

조택원의 농악무
조택원의 농악무 ⓒ 조택원 화보집
조택원 화보집을 펴낸 성기숙 씨는 “조택원선생의 영혼과 소통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한동안 이 작업에 빠져 있었다. 빛바랜 사진 속에 존재하는 조택원선생의 또렷한 모습도 그러하거니와 수십 년 전에 기록해 놓았을 사진 뒷면의 흐릿한 필체의 흔적, 특히 친필로 된 여러 편의 글과 어록을 대하면서 마음이 저절로 숙연해짐을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조택원 화보집 펴낸 무용전문지 '춤'지

‘무용전문지가 발간되는 나라는 영국, 미국, 프랑스,독일 그리고 우리나라 정도로 생각보다 많지 않다. 순수문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적은 한국 실정에서 30년 동안 단 한번의 결호없이 30주년을 맞은 ‘춤’지는 순수문화 중에서도 특히 열악한 무용을 예술사회에 드러내는데 공헌을 해왔다.

‘춤’의 가치는 책만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현재 무용계 평론을 주도하는 많은 평론가들이 이 잡지를 통해 등단시킨 평론가 사관학교 역할을 맡아온 것이다. 평론가 배출을 통해 비평에 앞장 선 ‘춤’지는 지난 96년 한국문인협회가 뽑은 ‘가장 문학적인 예술잡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 김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