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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은 산은 8848m 에베레스트이다. 그보다 높은 것은 비행기다. 비행기보다 높고 빠른 것은 없을까. 욕심일 것이다. 그러나 욕심보다 높은 것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사랑일게다. 가장 깊은 곳은 마리아나해구로 1만4000m이다. 그보다 깊은 곳은 없을까. 그 역시 사랑일게다. 가장 깊고 높은.
높고 깊은 것은 거리를 말한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짧은 거리는 머리와 입 사이이고, 가장 먼 거리는 머리와 가슴 사이라고 했다. 머리로 생각한 것을 입으로 말하기는 쉬워도 생각한 것을 가슴으로 느끼기는 어렵다는 말일게다. 그러나 머리와 가슴보다 더 먼 거리는 머리와 손, 머리와 발 사이의 거리인지도 모른다. 가슴으로 감동을 느끼기는 그리 어렵지 않지만 그 감동을 손과 발로 실천하기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감동은 현장이다. 손과 발로 찾아가서 연출하는 삶인 것이다.
@BRI@오늘(12월 13일)은 머리와 그 발 사이의 거리를 찾아가는 길. 한때 부산소년의 집 구호병원 외과과장이었던 의사가 <단팥빵>이라는 책을 출판했고 나는 이를 기념하는 자리에 가고 있는 중이다.
부산으로 가는 도로변의 한 찐빵 집에 이런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찐빵에는 방부제가 없지만 고객님을 위한 사랑에는 방부제가 있습니다." 문득 갓 구운 빵과 같은 '단팥빵' 신간서적이 떠올랐다. 단팥빵에는 방부제가 없지만 '단팥빵' 책에는 세상을 향한 사랑, 세상을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가 있었던 것이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지만 단팥빵에는 팥이 있는 것처럼 '단팥빵' 책에는 여러 가지 고물이 들어 있다. 구호병원에서 만난 노숙자, 독거노인. 병보다 치료비 걱정이 앞서는 가난한 이웃들과 소년의 집 어린이들, 그리고 미혼모 쉼터 아이들.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들, 달동네 사람들의 헐벗은 가슴 등 '단팥빵'은 청진기를 통해 만나고 가슴과 눈물로 기록한 의사의 일기이다.
"정신발육장애로 언제나 입을 벌리고 있어 '바보'라고 놀림을 받는 기창씨가 어느 날 병원 건너 교회에서 받아온 단팥빵을 건넸습니다. '사랑의 빵'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지요. 환자에 지친 나에겐 생명의 빵이요, 영원한 생명수였습니다.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이런 사연이 '단팥빵'을 구워낸 것이다.
출판기념회는 '노동자를 위한 연대'(사단법인) 송년회 자리에서 조촐하게 이루어졌다.
"효도라는 단어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것처럼 이 책 또한 한없이 부족합니다. 한 달 전 갑작스런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님의 영전에 이 책을 바칩니다"며 울먹이고 만 작가의 답사. 참가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 것처럼 세상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고백하고 있었다.
다음날 달동네 남부민동에서 함께 병원을 운영하는 후배 의사에게 근무를 맡겼다. 전주에서 온 나를 위한 배려였다.
"송도바다 옆 암남공원에 산책 갈까?"
"형, 구호병원에 먼저 갔다가 가면 안 될까?"
구호병원 복도에 들어서자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주고받는다.
"오늘 근무하시는 날 아닙니꺼!"
"오전만 후배 의사에게 맡겼대이."
"서점에 갔더니 곰보빵은 있는데 예, 단팥빵은 없대 예!"
"단팥빵 배달이 아직 안 되었나 보네!"
흰 가운을 입고 신생아실로 갔다. 갓 태어난 미혼모의 아이들이 새근새근 잠자고 있었다. 품에 안고 우유를 먹이는 보모의 눈빛과 아이의 눈빛이 영롱하다. 생명의 신비로 가득 찬 방에서 수녀님이 말을 건넨다.
"과장님 어쩌지요. 이 아이가 12일 됐는데 젖꼭지에 탈이 났습니다."
품에 안고 있던 아이를 침대에 눕히자, '으아--' 자지러지게 운다.
"이렇게 되도록 놓아두면 어떡합니까!"
"한 이틀 사이에 이렇게 크게 곪았습니다."
"당장 수술해야겠는데 예. 준비하이소."
자지러지게 우는 가은이를 수녀님이 품에 안고 달랜다. 금방 울음을 멈춘다. 따뜻한 품을 본능적으로 아는, 미혼모의 뱃속에서 태어나 '소년의 집'에 맡겨진 가은이. 그 엄마 품을 그리워하다가 그만 젖꼭지에 염증을 앓고만 것은 아닐까.
형과 나는 수술실로 올라갔다. 녹색 수술복을 입고 모자를 쓰자 형이 다가와 마스크 끈을 묶어준다. 수술실 침대에서는 생후 12일된 가은이가 울고 있었다. 수술이 뭔지도 모르는 아이. 엄마도 없이 수술대에 눕혀 있었다. 한쪽 가슴 전체가 부풀어 오른 부위에 포타딘 소독을 한다. 수술 부위만 뚫린 수술포를 씌우고 아이 머리도 덮는다.
"아이와 수술을 위해 기도합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이름으로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생명을 주신 신을 향해 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의사와 수녀와 간호사들. 한 생명을 향한 경외가 이처럼 거룩한 것일까?
"이 어린것이 얼마나 아팠을까?"
"쨈만 참으라…."
"으아-으아……."
두 간호사가 가은이의 발과 손을 잡고 수녀님은 어깨와 머리를 잡고 있었다. 형은 유방농양이 생겨 부풀어 오른 왼쪽 가슴 피부에다 리도카인 국소마취제 주사를 놓는다. 주사가 피부를 찌르는 순간, 아이의 울음소리가 곧 숨을 멈추어버릴 것처럼 울려 퍼졌다.
피고름이 쏟아져 나왔다. 환부를 누르면 누를수록 피고름이 흘러나오고 그 피고름보다 높이 아이의 울음소리가 천장으로 솟아올라 귓전을 때렸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에밀레종보다 거센 또 다른 종소리였다. 가슴을 후비는 종소리처럼 내 영혼을 후비는 영혼의 울음. 생후 2주도 안된 가은이에게 너무도 큰 시련이 닥친 것이다. 엄마는 떠나고 아빠도 모르는 아이의 험난한 역경을 보는 것 같아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말았다.
환부의 고름을 짜낸 뒤 주사기에 생리식염수를 넣어 환부를 세척한다. 벌써 시련과 고통에 적응한 것일까, 아니면 더 이상 울 기력이 없는 것일까.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고 있었다. 그 울음이 더 깊이 가슴을 후비는 것은 왜 일까? 연민의 마음일까?
환부 소독이 끝나자 환부 속으로 염증이 빠져나오도록 드레인을 한 가닥 넣고, 짼 피부를 바늘로 꿰매 고정시킨다. 울음이 다시 솟아오른다.
"응아! 응아!"
"이제 마 다 됐다! 니 참 애썼대이!"
"춥제~. 옷 입자! 어이! 어이!"
수녀님이 수술 받느라 애썼다며 아이를 어르면서 안아주자 금방 울음을 그친다. 그러고 보니 사랑의 품이야말로 슈퍼 진통제였다.
다시 침대에 눕히고 붕대로 감자 다시 울음이 터진다. 가슴 전체를 붕대로 돌리며 싸맨다. 옷을 입히고 이불로 감싼 아이를 한 손으로 안고 한 손엔 링거를 들고 수술실을 나가시는 수녀님. 매일 아침저녁으로 성당에서 드리는 거룩한 기도가 아이를 품에 안고 신생아실로 총총히 걸어가고 있었다. 순간 마더 데레사 수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수술복을 벗고 안내실로 갔다. 복도에서 기다리는 환자들, 그 속에 또 한 분의 마더 데레사 수녀가 있었다. 한 아이는 두 손으로 품에 안고 다른 아이는 포대기로 등에 업고 있었다. 수녀님이 품에 안긴 아이를 어르자 까르르 웃는다. 아니다, 아이가 웃으면 더 크게 웃는 수녀님을 아이가 어르고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보호자 한 사람 없이 홀로 수술을 끝낸 가은이도 저 수녀님의 품에서 자랄 것이다.